속이 타는지 유천기가 신경질적으로 부채질을 하며 마뜩찮은 기침을 ‘커험, 커험!’ 쏟아내는데 누군가 감영으로 들어섰다. 먼 길을 달려온 듯 말 위에서 내린 두 사내의 얼굴은 땀과 먼지로 범벅을 이룬 채 발그레 달궈있었다.

경위원 신패를 내비친 두 사내는 듬직한 체구에 패랭이를 쓴 쪽이 탁일환 순검이고, 푸른 천으로 이마를 질끈 동여맨 것은 신임순검 오치환(吳致煥)이었다. 이곳 전주가 고향인 탓에 오치환이 파견된 것이지만 그들이 예를 차리고 주검이 있는 뒷마당 사체 검안소로 향하자 초검과 복검 시장을 든 형방이 곁을 따랐다.

“근자엔 비가 오지 않아 저수지엔 물기가 많지 않았습니다. 들어가 봐야 허벅지 어림인데 그곳에 코를 박고 떠올랐으니 가족들은 누군가 손을 쓴 것이라고 이르지 뭡니까. 힘깨나 쓰는 한양 상전에게 애걸한 탓에 복검관으로 전라도 관찰사까지 뛰어들었습니다만 이렇다 할 소득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시장을 살피던 탁일환이 우뚝 걸음을 멈춘 것은, 초검과 복검기록이 어느 한 곳 차이 없이 겹친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건의 정황이나 현장 사정은 단순할 때 느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기록을 작성하는 초검관(유천기)이나 복검관(이유성)의 사건을 보는 시각이 글자 한 자 다르지 않는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초검과 복검 기록이 일치하는 건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 아닌가. 하면, 죽은 자는 달리 의심살만한 일도 없다는 얘기 아닌가. 물론 목격자는 없을 것이고?”

“그렇습니다.”

탁일환 순검이 표준화된 물음을 던진 것은, 이곳에서도 올바른 검시(檢屍)를 통해 시장이 작성되었는지를 재삼 확인하는 절차였다. 조선의 법의학 제도인 [중수무원록]은 내용 전체가 검시의학에 맞춰진 게 아니었으므로 전체적인 조사과정과 집행할 때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기준을 마련한 것은 무엇보다 정확성과 엄격함에 있었다.

사체가 발견되자 이곳 감영에선 관련자들을 찾아내 공초(供招 ; 범죄 사실을 기록하는 일)를 받아내는 과정에 엄격한 지침들이 제시되었다. 초검이나 복검의 검험관들은 자기 혼자 조사에 나선 게 아니고 검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 가령 서리와 노속(奴屬 ; 하인), 그리고 사건에 관련된 증인이나 시친(屍親 ; 죽은 자의 친구) 등을 대동했었다.

이때 검험관이 주의해야 할 것은 죽은 자와 친분 있는 관원이나 선비, 또는 술사나 중 · 도사 등을 만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을 만나면 구면인 점을 이용당하거나 술사들의 간사함이나 속임수에 넘어가는 법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주감영의 감사 유천기는 검시에 관련된 항인(行人)과 이인(吏人)들에게 한시도 검험관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감독을 받게 했다. 이것은 힘 있는 자의 속삭임이나 뇌물에 연루되는 걸 사전에 차단시키려는 현명한 배려였다.

말을 하는 중에도 신임순검 오치환은 코 밑에 진마유(참기름)를 바르고 악취의 진동을 차단시키려 주위에 창출(蒼朮 ; 한약 제품의 하나)을 뿌린 후 옷가지를 찢어냈다. 왈칵 밀려든 악취에 형방은 몇 발짝 물러나며 코를 감싸 쥐었다. 이레가 지나서인지 시신엔 구더기가 들끓고 배가 팽창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죽기 전 술을 마신 것으로 판단되었다.

눈길은 사체의 곳곳으로 향했지만 물음은 뒤쪽에 엉거주춤 서 있는 형방에게 날아갔다.

“익사체를 발견했을 때 어떤 모양새였는가. 검안 기록엔 사체가 누워있다 했는데 물의 깊인 주검이 잠길 정도가 아니었는가?”

“그렇습니다.”

형방은 약간 놀라워하는 기색으로 답했다. 탁일환은 주검을 감초 즙으로 닦아내는 것을 곁눈질하며 다시 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에 빠져 죽은 자의 몸에 상처(외상)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 물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을 나타냈다.

그러나 형방의 지적처럼 성격이 흉악한 자니 스스로 물에 뛰어들었을 리 없는 데다 사고 현장은 대략 아홉 자 가량의 높이가 있는 둔덕으로 그 아래 크고 작은 바위가 돌기되어 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익사자 가족들은 자살이나 실족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만약,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면 당연히 몸에 상처가 있어야 합니다!”

몸에 한군데 상처가 없이 발견됐다면,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저수지에 유기되었다는 얘기였으나 초검에 이어 복검을 마쳤어도 타살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신임 순검 오치환이 발목 쪽을 감초 즙으로 닦아낸 후 그 주변을 백매(白梅)의 과육을 짓이겨 덮어두었다. 대략 한시각이 지나 걷어내자 탈골이 되어 무엇에 부딪힌 흔적이 나타났다. 탁일환은 앞가슴과 등을 살피고 나서 결론을 내렸다.

“이 자는 언덕에서 미끄러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발목이 탈골된 것은 미끄러질 때 생긴 상처이고, 특별한 외상이 없다는 건 농사를 짓기 위해 저수지 위쪽에 자리한 보(湺)의 수문을 열어둔 게 이십 일 전이므로, 추락할 때엔 수위(水位)가 바위의 윗부분까지 올라왔기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 하루 다르게 물이 증발해 주검은 가라앉지 않고 바위에 걸려 물가로 밀려 온 것이다!”

남제인(南齊人) 저언도(褚彦道)의 주장을 근거 삼아 탁일환 순검은 결론을 내렸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은 경우, 사내의 시체는 당연히 엎드리고 여자는 눕기 마련이다. 양기가 얼굴에 모이는 사내는 얼굴이 무거워 엎드리고, 여자는 음기가 등에 모이므로 드러눕는다. 이것이 포태(胞胎) 원리다.

검안 기록을 살피면 익사자가 드러누웠다고 했는데, 익사자는 추락할 때의 여파로 몸이 포태의 원리를 따르지 못한 것에 불과한즉, 익사자는 타살이 아니라 추락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