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 부인은 목을 매달고

다음날 오전 10시쯤. 경위원으로 급한 연락이 전해졌다. 남편이 변사체로 발견된 후 심한 우울증을 앓던 장순호 부인이 대들보에 목을 맸다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장율하는 숭인동으로 가는 길에 정문원에게 귓속말로 몇 마디 주문해 어디론가 떠나보내고 다인과 현장을 찾았다. 먼저 온 순검들이 금줄을 쳐 일반인들의 접근을 멀리한 탓인지 인접거리엔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니 대들보에 걸린 부인의 사체는 이미 방바닥에 내려져 하얀 광목에 덮여 있었다. 감초 즙으로 몸을 닦아내던 다인(多仁)은 여인의 가슴 쪽에서 검붉은 흔적을 발견했다.

“나으리, 가슴에 있는 이 흔적은 구타로 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곳뿐이냐?”

“다른 곳은 없습니다.”

“내가 듣기엔 관내의 순검이 초검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작성한 시장을 살펴라. 죽은 자가 어떤 상태였다고 적혀 있느냐?”

“입과 눈이 열리고 손이 흩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혀는 나오지 아니하고 이에 닿지도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하면, 네 생각은 어떠냐?”

“가슴에 멍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타를 당한 후 자액(自縊 ; 스스로 목을 맴)으로 위장된 듯 싶습니다. 끈을 맨 주위의 상흔이 어지럽게 짖물려 있는 것으로 보면 목을 매달 때 요동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죽은 여인의 방에서 이런 게 발견됐습니다.”

다인이 내놓은 것은 선추(扇錘)였다. 선추에는 여러 모양이 있지만 여인의 방에서 나온 건 윤도(輪圖)라 부르는 도구였다. 풍수쟁이나 점쟁이가 지닌 크나큰 것이 아니라 선비들이 쥘부채끝이나 고의춤에 멋깔스럽게 달고 다니는 선추였다.

“허나, 추운 날씨에 부채를 가져왔을 리는 만무다. 선추를 옷고름에 매달기도 하지만, 진눈개비가 날리는 날 부채 끝에 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건 훨씬 전에 떨어뜨렸을 것이다. 이게 어디 있었느냐?”

“사체의 몸을 닦기 위해 몸을 숙였는데 장롱 아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저건 유서가 아니냐? 유서를 남겨 자살한 것으로 꾸몄다만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런 것으로 보면 전문가는 아니나 만만히 볼 자도 아니다. 너는 이것을 별당으로 가져가 ‘선추’를 본 적이 있느냐 묻기만 하고 오너라.”

다인이 방을 나가자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고가 난 방에 금역을 설치하고 사체는 경위원으로 옮긴 후 현장엔 두 명의 순검을 배치했다.

이날 오후 늦게 경위원으로 돌아온 정문원은 마흔 두엇으로 뵈는 여인과 들어섰다. 잔뜩 두려움에 깃든 여인은 몇 달 전까지 장순호의 집에서 부엌살림을 도맡은 가정부였다. 그녀는 기가 질린 낯으로 주섬주섬 입을 열었다.

“저야 잘 모르지요. 우리 아가씨와 이씨 도련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요. 총각 처녀 때부터 워낙 가까이 지냈으니까요. 하지만, 영감님의 반대가 심해 도련님은 덕석몰이를 당한 채 매를 맞고 쫓겨났어요. 그 후로 아가씬 홍씨 집안으로 시집 갔거든요.”

“홍진영이라는 선비가 술만 먹으면 이씨에 대해 한이 맺힌 듯 말을 했다는 데 홍선비는 그 일을 어찌 알았는가?”

“아마···, 풍설가가 꾸민 얘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제가 보기엔 이씨 도련님이 자기와 시집을 간 아가씨 문제를 교묘하게 얘기로 꾸몄나 봐요. 그런 다음 홍선비가 잘 다닌 음식점 근처에 쫘악 뿌렸답니다. 그런 얘길 우리 서방님(장순호)이 한 줄 알고 난리를 쳤다지 않습니까. 그 후 아가씬 집으로 쫓겨 와 별채에 계셨습니다.”

장율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내 실눈을 뜬 채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알기론 용인댁이라 들었네만?”

“아, 예에. 맞습니다.”

“그 댁에서 10년을 산 것으로 아는데 갑자기 그만 둔 이유가 뭔가?”

“사실은···, 제가 봐선 안 될 것을 보았거든요. 그 날은 일기가 고르지 않고 무척 사나웠어요. 부엌에서 감주 두 그릇을 아가씨 방으로 가져갔는데 도란도란 들려오는 소리가 이상했어요. 시집에서 돌아온 아가씨가 하루만 방을 바꾸자는 것이었어요. 그날 밤 두 분은 방을 바꾸었는데 새벽참에 방을 빠져나가는 사내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자네 입을 막으려고 용인에 있는 열 마지기 논배미를 주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문서는 이씨 성을 쓰는 자에게 받았겠다?”

“아, 예에.”

아낙은 사색이 된 낯으로 눈을 내리깐 채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이날 오후, 경위원으로 소환된 장은하와 뒤쪽 조사실에는 이종구(李鐘仇)라는 젊은이가 나무 책상을 앞에 두고 장율하와 대좌했다. 젊은이는 모든 걸 선선하게 풀어나갔다.

“내가 은하를 좋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혼인을 했다면 이런 저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저 역시 인간 쓰레기라는 소쩍새들을 따라다니며 수발을 드는 데 지쳤습니다. 고향에 내려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넋이 극락왕생하길 빌며 살아겠습니다.”

“그렇습니까. 한데, 몇 가지 확인해 둘 게 있습니다. 장은하 씨가 시가에서 쫓겨 온 후 다시 출입한 건 언제였습니까?”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동안 장은하 씨에게 받은 토지 문서는 어찌 했습니까?”

“그건 그 여자가 준 겁니다.”

“주었다? 하긴 그렇소. 주었으니까 받았겠지요. 장안의 유명한 풍설(風說 ; 야담)은 죽은 장순호가 만든 게 아니라 당신의 솜씨가 아니오!”

장율하가 내놓은 것은 한 뼘이 채 못되는 조그만 수첩이었다. 그 안엔 시중에 흘러다니는 온갖 얘기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좀더 눈여겨보면 이것들은 한결같이 장순호의 입을 통해 장안에 퍼뜨린 해묵은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