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대부분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명례방(명동)에 자리한 취선루(醉仙樓)란 유곽을 찾아갔을 때 ‘모란’이라는 기생이 흥미로운 말을 내놓았다.

“여기 오신 손님 중엔 오다가다 우연히 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같은 망할 놈의 팔자가 아니라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에 지쳐 염병지랄 떠는 작자들도 있어요. 얼마 전 홍진영(洪眞永)이란 젊은이가 술에 취해 밤늦게까지 난리법석을 떨었거든요.”

“누가 같이 있었는가?”

“누군 누굽니까, 장순호죠. 하긴 그리 말해서는 안되죠. 우리 집 언니도 남편이 두해 전 세상을 떠났잖아요. 음식점을 했는데 본전까지 거덜 날 형편이었어요. 왜놈 음식을 만들면 잘 될 거라 하여 ‘아따미(熱海)’라는 횟집을 열었는데 조금만 지났으면 아예 이 바닥에서 떠났을 거예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참에 그 얘기꾼···, 거 뭐라드라 책사(冊肆)라 했든가···, 그 얘기꾼 덕분에 취선루란 유곽을 차렸거든요. 덕분에 지금은 장사가 잘 되잖아요.”

모란의 말에 따르면, 취선루의 주요 상품은 ‘세 가지의 술’로 오로지 이곳만의 유일 품목이라는 장담이었다. 즉, 메추리와 뻔데기, 그리고 새우였다.
물론 이 세 가지는 그것을 이용한 사람의 특성이 있었다. 메추리를 이용하여 술을 담가 먹는 방법은 장량(장자방)이었고, 뻔데기는 공자님이 잉어와 함께 뻔데기 술을 마셨고, 새우는 당나라 제국의 여황제 측천무후가 애용했었다는 품목이다.

이곳 취선루에선 남자에겐 메추리와 뻔데기술을 권했고, 여성에겐 새우를 정제한 술을 권했다. 모두가 정력 강정에 최상의 효과를 나타내지만 술의 종류에 따라 마시는 이들이 확연히 구분했다.

“그날은 비가 좀 왔거든요. 홍진영이라는 사내가 언성을 높이며 따지더라구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얼핏 들은 얘기가 ‘당신 누이의 눈을 봐!’ 하잖아요. 깜짝 놀라 귀를 기울였더니 홍씨가 하는 말이, 당신 누이는 세상에서 가장 음탕한 비둘기 눈이야! 하더라구요. 그 눈으로 얼마나 많은 사내들을 잠자리에 불러들였는지 아느냐고 따졌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고놈의 이가(李哥)를 죽이지 못해 한이라고 악담을 퍼붓잖아요.”

이날 술에 취한 홍진영의 악담은 남들이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심했다는 것이다. 홍진영은 악을 버럭버럭 쓰며, 당신 집안은 그년으로 인해 거덜 날 것이라며 침을 퇘퇘 뱉었다는 것이다.

넷째 날 - 사내를 홀리는 비둘기 눈(鴿眼)

경위원에 돌아온 순검들은 시장(屍帳)을 펼친 채 저마다 생각들을 내놓았다. 그들은 물에 빠져 죽은 자의 몸에 난 상처들을 검지 끝으로 가리키며 여러 측면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물에서 건져낸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 정도가 심해질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평소 장율하가 몇 번이나 주지시켰다. 그래서인지 장순호의 물에 빠진 사건에 대해 탁일환 순검이 의견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나타난 여러 정황으로 보아 장순호는 타살이 분명합니다. 뭣보다 그들과 함께 노닥거린 칠공자인가 강변칠우들을 잡아들이면 윤곽이 드러날 터인데 어찌 망설입니까. 장순검께선 사건을 달리 보십니까, 아니 그리 보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장순호가 살아서 물에 빠진 거라면···, 정황으로 보아 누군가가 주위에 있었을 것이다. 상대가 술을 마셨건 그렇지 않건 장순호는 술을 마셨을 것이다.”

“사체의 시형(屍形;죽은 모양)에선 그런 정황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술을 마셨다고 하루종일 술기운이 남아있는 건 아니네. 진눈개비가 내리는 날엔 술기가 빨리 깰 수도 있었을 터! 만약 다른 사람에게 구타를 당해 물에 넣어졌다면 물이 깊으면 복부가 팽창하고 얕으면 그렇지 않지.
장순호가 빠진 곳은 비교적 얕은 곳이야. 상투가 단단하고 눈 코 입에서 물이 흘러나왔으니 당연히 살았을 때 빠진 것이네. 더구나 구타로 보이는 상처가 검질 않으니, 내 생각엔 상대가 밀었든 실족했던 간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네.
자, 일어서게!”

사체로 발견된 장순호의 집은 동대문에서 손을 펼치면 갈 수 있는 숭인동 한옥 지역이었다. 흥성했던 사대부가의 잔영이 남아있는 집은 사랑채를 비롯하여 몸채와 별채가 있었고, 약간 턱이 있는 중문이 그 사이에 있었다.
집안을 둘러본 후 장율하는 별채에 있는 여인에게 말했다.

“장은하(張銀河) 씨가 시집에서 이곳으로 와서 머무는 동안 외형상으로 밖에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장은하 씨를 본 사람이 있어요. 전남편 홍진영 씹니다. 그분은 장은하 씨를 따라다니다 어떤 사실을 당신 오라버니에게 따지듯 말했고, 그로 인해 당신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 마포 강가에서 오라버니를 만났습니다. 왜 밖에서 만났습니까?”

“우연이었어요. 마음이 답답해 그 옛날 토정(이지함) 선생이 만들어 둔 움집을 볼 생각으로 그곳에 들렀다가 오라비를 만났어요. 좋은 얘기야 있었겠습니까.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진눈개비가 쏟아지고 주위가 소란스러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한동안 시달림을 받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뿐이에요.”

“토정엔 무슨 일로 갔습니까?”

“오라버니가 나오라고 해서죠.”

“집에서 얘길 하면 되는데 왜 그곳으로 불렀을까요? 더구나 거긴 칠공자들이 이따금 술을 마시며 시회를 여는 곳이 아닙니까. 그곳에서 오라버니를 만났다면 그건 우연의 일이고, 장은하 씨가 만난 건 다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오라버니를 만나기 전, 누굴 만났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