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교 인근에서 제중의원이란 한약방을 경영하는 이동하는 재산깨나 있는 집안을 찾아다니며 명처방(名處方)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악산(嶽山)이든 평원이든 말을 달리며 살(矢) 날리기 좋아 하는 민치호(閔治鎬)가 두 해 전에 낙마해 허리가 고장나자 이동하는 옥인동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치료에 열을 올렸다.

이동하의 처방엔 지네나 부자를 사용하지 않고 그만의 처방으로 치료에 나섰다. 불개미 한 홉을 소주에 담가 두었다가 고운 체에 술을 받아 조금씩 먹고, 그 불개미는 불에 잘 볶아 분말하여 불개미를 담갔던 술에 먹는다. 이것은 몸에 맞지 않은 사람도 있으므로 먼저 한 홉을 먹어본 뒤에 이상이 없으면 나을 때까지 먹었다.

한편으로 민치호는 허리가 약해지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 도마뱀 처방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민간 처방을 해오다 제중의원에 사람을 보내 의원을 불러들여 침을 맞았다.

비가 줄기차게 내린 그날은 민치호가 고통을 호소하여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사연을 들으니 기가 차 말도 안 나왔다는 것이다. 몸이 웬만큼 좋아지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활을 꺼내 크게 시위한 게 병이 도진 원인이었다. 그때부터 허리에 불침을 놓듯 뜨끔하더니 움직이지 못한다는 다급한 전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병이 아니라 허리가 약간 놀랐을 뿐이었다.

놀란 곳은 주무르거나 마찰을 통해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동하가 병을 키운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날 민치호의 사랑채를 나와 대문을 나서기 전 별당에서 일을 하는 계집아이의 전언을 받았었다.

“아씨께서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별 생각 없이 따라간 이동하는 방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요동치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별당 아씨의 용모는 도발적이었다. 특히 눈은 ‘합안(鴿眼)’으로, 새 중에서 가장 음탕하다는 비둘기 눈이었다. 그 눈에 촉촉하게 물기가 배어 있다면 얼마나 도발적이겠는가.

이날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비밀 하나를 만들었다.

‘이의원이 그 집을 빈번하게 출입한 것은 민치호의 병치료가 목적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장율하를 비롯하여 정문원이 생각하는 의혹은 그런 것이었다. 그것이 정문원의 걸음을 민치호의 집으로 향하게 만든 이유였다.

셋째 날 - 그림자 같은 사연들

“어느 때 오시나 했더니 이제야 오셨습니까. 자, 어서 올라오십시오. 빗발이 날릴 것 같으니 움직이기는 뭣하고···, 자, 이곳에서 술이나 한잔 하십시다.”

민치호의 호방한 웃음 소리에 놀라워하며 정문원은 사랑채를 들어섰다. 사냥을 좋아하는 무부다운 냄새가 물씬거릴 정도로 벽에는 물소 뿔로 만든 활(弓)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의 머리가 박제되어 있었다.

“내가 그랬소이다.”

민치호는 상대의 속셈을 알고 있다는 듯 다짜고짜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수원에 사는 매파가 평소 자신의 집을 출입하였는데, 본처가 세상을 뜬 지 세 해가 지나 별당의 혼처를 들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본시는 양반집의 무남독녀였는데 어찌된 셈인지 무가(巫家;무당 집안)의 피가 흐른다고 털어놓았다. 사내의 기개가 단단하여 날뛰는 색귀(色鬼)만 잡을 수 있다면 혼사를 진행시키겠다는 뜻을 전해오자 평범한 일에 진력을 내던 민치호였기에 이 일은 당연히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두해가 지나는 동안 별일 없었는데 사냥을 나간 그가 낙마한 후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불행한 일이 다가왔을 때라지 않습니까. 허리를 다쳤다고 민방(民方;민간 처방)을 하고 의원을 부르자 별당의 눈초리가 달라지더군요. 가끔은 이곳에 들러 내 몸을 살피는 것 같았으나 별다른 기미가 없자 무척 낙망하는 모습으로 돌아갔어요.

해서, 생각해둔 말을 별당에게 넌지시 전한 겁니다. 북한산 어디 암자에 해공이라는 장인이 있는데 그 분이 만든 신물을 가져오면 병을 쉽게 잡을 수 있다 했소이다. 물론 그 분의 불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비로소 얽힌 부분이 조금씩 드러난다는 의미였는지 정문원이 희미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이의원이 이민우를 만난 것은 모두 민치호의 부탁 때문인가?’

다시 민치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어지럽게 노닥거리던 잔생각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내가 허리가 아프다며 약재를 쓴 것은 별당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의도도 있었지요. 혼사를 중매한 매파가 그런 얘길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어요. 별당은 공을 들인다고 북한산 암자를 찾아가더니 급기야 목걸이 하나를 가져왔어요. 병든 지아비를 위해 그만큼 수고 했으니 내쪽에서 상이라도 줘야지요. 해서, 별당의 본가에 백미 열 섬과 육고기 스무 근을 보냈습니다.”

예전에는 믿지 못했으나 지금은 믿을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날 오후. 보고를 받은 장율하는 제중의원으로 이동하를 찾아가 목걸이를 입수하게 된 경위부터 따졌다. 주변 사람에게서 들었던 증언으로 보면 이민우가 가져온 목걸이는 하나인데 그것을 어찌 했느냐였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전에 민치호에게 통박을 받았지 뭡니까. 내가 구해 온 목걸이가 가짜라는 겁니다. 분명히 ‘수(壽)’라는 글자가 써 있고, 해공 스님이 만든 게 분명한데 가짜라고 다그치니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목걸이를 구하기 위해 민치호에게 재물은 받았는가?”

“백미 쉰 가맙니다.”

“그것참 이상하지 않는가. 민치호는 무슨 일로 별당아씨와 자네에게 같은 부탁을 했는가. 이상한 일이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만···.”

“가만···, 그러고 보니 이의원은 별당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게로구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민치호가 낙마하여 사람을 보냈다는 말을 듣고 그 집에 두 번인가 들렀을 때···, 별당이 대문을 나서는 내 걸음을 붙잡았습니다. 북한산 어딘가의 암자에 해공이라는 장인이 있는데 그에게서 목걸이 하나를 구해 달라는 부탁이었어요. 물론 비용은 넉넉히 줄 것이란 말을 듣고 그 날은 별 생각없이 돌아왔었지요.

며칠 후, 내가 목걸이를 구해 부인에게 연락했더니 북한산으로 오르는 중도의 묘각에서 만나자는 전갈이 왔어요. 별당과 약속한 그날은 비가 몹시 내렸는데 이날 이상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런데 벌거벗은 우리의 행위를 처음부터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이민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