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얘기는 그런저런 소란을 떨며 가라앉고 오랜만에 이민우가 내놓은 걸쭉한 술상에 희희낙락 권주가 부르며 음담패설로 요란을 떨었다. 장율하는 그날의 일을 상기시켰다.

“그날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얘기론 술 한잔 마시고 돌아갔다 했네. 물론 투전목은 만지지도 않았고 술판이 벌어지기 전 이의원이 잠시 문밖으로 이민우를 불러내 귓속말을 주고받았으니 좌중 사람들 눈엔 별다르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야. 이후를 들여다보면 일주일 안에 이민우 사건이 일어난 것인데-.”

얘기는 다시 이어졌다.

“시장(屍帳;검험서)을 살피니 풍지(風池)라는 혈자리가 이상이 있는 것으로 정순검이 소견서를 써 놓았어. 그건 검시의도 같은 의견이었네. 자, 여길 보게. 정리된 일람표를 보며 설명 하겠네.”

일람표가 넘겨지고 설명이 떨어졌다.

“사체가 발견된 산자락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가 이곳 묘각(廟閣)이네. 또한 마포 객주집에서 투전판이 벌어진 지점과는  떨어진 거리지만 샛길로는 삼각형이네. 여기에서 인근 북한산 산자락에 위치한 인근의 가옥까지는 어느 누구나 통행이 자유로운 지점이야.

한데, 사건이 난 산자락 인근에 여인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면 평소 그 길로 통행하였다는 걸 볼 수 있네. 여인의 몸으로 이곳을 지나갈 때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불공이네. 여기에서 반대쪽 산자락으로 쭉 이어가면 그곳에 암자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닌가. 탁일환 순검을 보냈으니 근자에 머문 사람과 어떤 이가 찾아왔는지 알게 될 것이네.”

다시 일람표를 넘기자 다음 장엔 염주 목걸이를 비롯해 옥팔찌와 옥가락지가 엉성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 해공(海空)이라는 스님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해공 스님은 앞을 보지 못하시는 분이네. 세상 사람들은 부처님의 법력이 비구니인 그 분에게 내린 것을 대단히 영험히 여기네. 나 역시 만난 적은 없지만, 불력이 대단해 명승들의 사리를 보관할 사리함을 조각하거나 염주 안에 부처의 상을 조각한 조선 제일의 장인으로 알고 있네.

그 분은 자신을 찾아와 뭔가를 만들어 달라는 보살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네. 대수롭지 않게 답을 하면 미소 짓는 것으로 그만일 터이지. 그래서인지 이제껏 해공 스님의 조각품을 받은 보살이 없었다네.”

장율하의 입가에 종달새마냥 실없는 웃음이 물든 것은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얼마 전 해공 스님이 이민우에게 목걸이 하나를 주었는데 그것은 일람표에 그려진 모양이었다. 그것을 지시봉으로 가리켰다.

“이상한 일이잖은가. 앞을 못 보는 스님이었지만 법력이 뛰어나 이민우같은 한량들은 가까이만 와도 신상을 훤히 꿰뚫는 분이네. 소문엔 이민우에게 목걸이 하나를 조각해 주었다는데 그게 쉽게 납득할 수 없단 말이야.”

말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탁일환이 경위원에 돌아오고서야 전말이 밝혀졌다. 흐트러진 주변 얘기를 정리하는 데엔 그의 말이 절대적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은 일이었기에 직접 스님을 찾아뵈려 묻기 위해 그곳 암자에 들렀습니다. 거기 계신 다른 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탁일환은 노스님이 들려준 말을 끄집어냈다. 당시 해공 스님은 북한산 암자에 계셨는데 지금은 합천 해인사 쪽으로 출타했다고 털어놓았다.

“얼마 전 이민우가 찾아간 모양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루만 가는 게 아니고 몇 날 며칠 동안 스님의 거처에 머무르며 졸라댔습니다만, 이민우를 만난 스님은 별다른 말이 없이 목걸이를 만들어 줬답니다.”

물론 당시에 알려진 소문은 약간 군살이 붙었지만 해공의 결정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이민우는 그날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스님, 제가 부탁드릴 말이 있어 왔습니다. 너무 외람된 일인 데다 스님이 즐겨하시던 게 아니라서 시생이 암자에 열 가마니의 쌀을 시주하고 말씀드립니다. 저에겐 노망이 든 어머니가 계시는데 시생의 죄업이 하늘에 닿아 그리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나를 길러주신 어머닌데 병마가 침입했다 하여 어찌 모른 척 하겠습니까.
스님, 하실 수만 있다면 제 어머님을 위해 목걸이 하나를 만들어 주십시오. 목걸이에 ‘수(壽)’자 하나만 새겨 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나서 해공은 선선히 허락하였다. 이틀 후에 암자로 오라는 말과 함께-.

물론 이 얘긴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직접 얘기하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었다. 스님 가까이 있던 보살들이 돌아간 뒤의 일이니 소문은 무성하게 가지를 치며 이민우의 능력에 대해 여러 말들이 흘러 다녔다. 그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화타의 반지로 일컫는 ‘해공의 반지’를 얻을 수 없다는 풍설이었다.

일람표 앞에서 돌아서며 장율하는 미심쩍은 부분을 건드렸다.

“해공 스님이 만든 목걸이는 하나야. 소문대로라면 하나를 만들고 스님이 합천으로 떠난 후 이민우가 살해당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야. 그런데 문제는 쌀 열 가마니야. 쌀 열 가마니를 암자에 시주했다고 탁순검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습니다만···.”

“객줏집에서 이민우가 목걸이를 내놓고 해공의 목걸이라 했네. 그땐 목걸이가 하나야. 한데, 당시엔 쌀 열 가마가 없었지. 그 말을 들은 이민우가 스님을 찾아가 목걸이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두 개가 되어야겠지. 그러나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목걸이는 하나일 수밖에 없거든. 앞뒤가 안 맞아!”

이런 문제는 생각 여하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었지만 장율하의 뇌리엔 또 다른 생각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이동하 의원에 대한 행장(行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