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屍帳)을 다시 점검하고 그 동안 조사해온 피해자 주변인물부터 만나는 게 순서일 것 같아 다모 다인을 대동하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부인 장씨와의 사이엔 일점 혈육이 없고 혼인한 지 두 해 동안 집구석이라고 편히 들어와 쉰 것은 손을 꼽을 정도라고 한숨부터 쏟아놓았다. 몰락한 가문이지만 옛 자취는 있는 편이어서 군데군데 획이 뜯겨나간 주련(柱聯)의 글씨가 빛바랜 채 걸려 있고 그 곁엔 반쯤 치매 현상이 있다는 팔순이 다 된 시어머니가 무릎걸음으로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민우 씨가 요즘 들어와 달라진 건 없었습니까? 부인께서 보실 때 달라 보인다거나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느냐 그 말입니다.”

“그런 점은 없고···.”

“뭐든 상관없습니다. 부인께서 느끼신 점이라든가···, 또는 평소와 다른 어떤 점이라든가···, 보시기에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평소의 남편과 다른 점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장씨의 낯빛이 붉어졌다. 시어머니가 반생반사의 처지다 보니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낯선 사내 앞에서 부부간의 은밀한 얘길 한다는 게 여간 남세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어설픈 분위기는 때마침 다인이 들어오는 바람에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부인께 물은 것이 있다. 네가 듣고 내게 말해라!”

장율하는 헛기침을 크게 뿌리며 문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주위에 사람이 있었다면 부부 사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물어볼 참이었으나 한사람도 보이지 않자 입맛만 쓰게 다시며 집 주위를 살폈다. 이때 집안에서는 얼굴이 상기된 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남편)은 한 번 집을 나가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들어오질 않습니다. 그래도 문밖에 나가 기웃거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쌍히 여긴 탓에 뜬소문을 전해 주더군요. 어느 곳 투전판에서 횡재하여 기생년을 놀잇배에 태우고 흥청망청 돈을 쓴다거나···, 어떤 때는 상갓집에서 부랑배와 싸움이 붙어 걷지 못할 정도로 늘씬하게 맞았다고도 했고요.

그래도 그 사람 마음은 따뜻했어요. 어쩌다 돈이 생기면 먹을 걸 챙겨 잊지 않고 보내줬으니까요. 술에 곤죽이 되어 들어왔다가 술이 깨면 횅하니 나가버렸으니 언제 겸상(兼床)으로 부부의 정을 나눌 이유가 있었겠어요.”

참으로 불행한 부부라고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 짓누르고 있을 때였다. 부인이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아름답고 행복에 겨운 생각이 환영처럼 마음 자락을 어지럽힌 탓일 것이다. 그런 얘기가 조용조용 새어나왔다.

“그러니까···, 열흘전 쯤 됐을 거예요. 낮에 비가 좀 쏟아졌는데 해가 거의 질 무렵 돌아온 그분은 좋은 일을 만난 듯 즐거운 기분이었어요. 그날 오랜만에 사랑을 나눴고요. 평소와는 다른 열정이 흘러나왔거든요. 그리고 며칠 지나 단약(丹藥;알약)을 들고 왔어요. 먹으면 몸이 상쾌해 질 것이라 하여 두 알인가 삼켰는데, 어찌나 몸이 뜨거운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답니다.”

“이를테면 사랑의 묘약이었나요.”

부인은 소리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빈자리만 만든 남편이었지만 이날은 사랑을 꽉 채운 ‘사랑의 방’이었다. 그것이 약을 사용하든 독을 사용하든 곁에 있어 준 것만으로 행복했다. 이날 사랑을 나눈 남편은 그녀에게 108개의 구슬로 엮은 목걸이 하나를 내놓았다.

“이것은 선물로 받은 것이오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지 않아도 되네. 부인 마음대로 해요. 이 목걸이를 만든 장인(匠人)은 불국사가 있는 경주에서 이름을 날리던 비구니인데 ‘염주알에 부처를 새긴다’고 소문이 난 유명한 분이라네. 그 분이 북한산 암자에 마음의 때를 씻고자 수양하고 있다 하여 찾아갔는데 마침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하여 그걸 내게 선물했다네. 그 목걸이에 무명장수하라는 뜻의 ‘수복(壽福)’을 새겨 기원하다는 말을 들었네.”

부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었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능히 성인군자의 반열에 들고도 남을 사람이었으나, 술이 한 방울만 들어가면 본래의 그가 아니었다.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미친개처럼 날뛰었다. 무과(武科)에 응시하려 무예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어지간한 사내들은 그의 솜씨를 당하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이후로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헐뜯었다. 집안이 빈한하니 돈냥이나 있는 작자들의 눈밖에 나면 ‘상갓집 개’가 되었다가도 난장판의 잡것들을 만나면 ‘일대의 호걸’로 되살아났다. 그의 말대로 참으로 엿가락 같은 세상이었다.

셋째 날 - 강정비약과 목걸이

외출에서 돌아온 장율하는 ‘목걸이’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마포의 어느 객주집에 이민우가 자주 들르는데 어느  날 목걸이 하나를 내놓고 호언장담을 했다는 것이다.

“이건 시중에서 자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여기엔 부처님의 오묘한 섭리가 깃들어 있어. 재물로 따진다면 쌀 열섬 값은 받을 수 있네.”

“미친놈 넋 떨어진 소리 하고 자빠졌네.”

투전꾼들은 실소를 깨물며 비웃었다. 때맞춰 내리는 빗발을 피하려 객주집에 들른 이동하(李東河)라는 의원의 한마디가 분위기를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외람된 말씀 같습니다만···, 선비님께서 가지고 계신 게 그분의 것이 틀림없다면 쌀 스무 가마에 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가뜩이나 어려운 때니 쌀 스무 가마면 눈이 번쩍 뜨이는 액수다. 그러나 이민우는 냉소를 쳤다.

“보아하니 의원인 듯 싶소만 어디서 듣긴 들었나 봅니다. 이건 당신한테 팔 물건이 아니고 누굴 갖다 줘야할 거요. 내가 일러드릴 테니 그분을 찾아가 부탁을 해보시오.”

이민우는 손을 내저으며 겸양했다. 의원 차림의 사내는 자신이 백번을 찾아가도 그 분은 꿈쩍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담부터 쏟아놓았다.

“사실을 말씀 드리면 그렇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부처님을 믿으셔서 그런 부탁을 드립니다. 선비님께서 목걸이를 팔기 싫으시면 그와 같은 물건을 하나 만들어 주십시오. 같은 글자인 ‘수복(壽福)’을 넣어 만들어 오시면 쌀 서른 가마를 드리겠습니다. 그리해주신다 약조하시면 쌀 열 가마 값은 선불로 드리겠습니다.”

순식간에 이뤄진 계약이고 보니 좌중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빗발이 뜸해지고 이동하가 방을 나가자 사람들이 다가왔다. 도대체 그 목걸이가 무엇이관대 그토록 많은 쌀을 내놓느냐였다. 마포 잠방이를 입은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연유라는 걸 풀어놓았다.

“허어, 이 사람은 소문도 아니 듣나. 그 사람은 비구니인데 의술에도 몹시 빼어나다는 풍문이 돌았소. 그래서 항간엔 ‘신의의 목걸이’라느니 ‘화타의 목걸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하고 다녀요. 더군다나 108염주 안에 부처의 상을 새겼는데 각기 모습이 다른 귀신같은 재주가 숨어 있다네. 그런 신물을 그깟 쌀 서른 가마가 대수겠는가. 구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놓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