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원은 사체 보관실로 들어가 관측대 위에 올려진 주검을 감초 즙으로 닦아냈다. 구석구석을 닦았지만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를 듯 밀려들었다.

주검을 살폈지만 상흔은 없었다. 칼로 찌르거나 몽둥이로 구타한 흔적도 없었다. 이렇게 보면 사인(死因)은 날붙이(刃)나 타물(他物;몽둥이 등)이 아니었다. 또한 액살이나 교살 흔적도 없었다. 법물(法物;은수저 등)을 입에 찔렀으나 독살 당한 흔적이 없고 보니 정문원은 짜증스럽게 혀끝을 찼다.

‘참으로 묘하다. 둔기로 맞거나 날붙이로 찌른 흔적이 없고,  곱게 죽어 있다. 어느 한 곳 상처의 흔적이 있는 곳도 아니고, 또 함몰된 흔적이 없으니 이상한 일 아닌가.’

다시 한번 사체의 입에 은수저를 찔러 넣었으나 역시 독물에 중독된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문원이 사체를 들추며 고민에 빠져있을 때, 장율하는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북한산은 한강의 북쪽을 뜻하는 말로 남한산과 대칭되고 있다. 중악이라 한 것은 조선 초기의 학자 양성지(梁誠之)가 금강산을 동악, 구월산을 서악, 지리산을 남악, 장백산을 북악이라 한 데서 유래한다.

풍수적으로 화산이라 칭한 것은 도읍지의 진산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런가 하면 귀봉은 백운대와 인수봉이 우이동에서 바라보면 소의 귀처럼 생겼기 때문에 부르게 된 이름이다.

이곳 북한산의 원래 이름은 ‘부루칸모로’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북’을 나타내는 ‘부루’와 ‘한’을 뜻하는 ‘칸’ ‘산(뫼)’은 ‘모로’이다.

이 산이 지닌 여러 이유로 일제시대엔 이 산의 정상에 쇠말뚝을 박아 백두산에서부터 내려온 내룡(來龍)의 맥을 끊으려 했다. 지금도 삼천리 곳곳의 이름 있는 산자락엔 일제가 남긴 쇠말뚝이 민족의 한처럼 깊이 박혀있음을 볼 수 있다.

이곳 산으로 오르는 곳에 묘각(廟閣)이 하나 있었다.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지난 세월 오랑캐나 왜인들로부터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달래려 제를 올리는 제각(祭閣)이라 알았지만 이곳은 분명 ‘묘각’이었다.

도성을 비롯하여 향촌(鄕村)에 묘각이 세워진 것은 두 해 전이었다. 처음엔 관우를 모셨으나 지금은 토지신을 비롯하여 도가의 사당역할을 했다. 인근 마을이나 향촌에 사는 사람들은 연일 비가 쏟아져 백성들의 근심이 높아지거나 또는 산자락의 풀잎까지도 타버릴 듯한 가뭄에는 이곳에 모여 신령님께 복 주기를 청하였다.

이곳 묘각은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시회를 열 수 있는 2층의 툇마루와 근처를 지날 때 비를 만나 하룻밤 쉬어갈 수 있는 서너 평의 공간, 잡다한 물건을 넣어두어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배려한 다목적 곳간(다용도실)이 하나 있었다. 그러므로 산중에 들렀다가 눈비로 오가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와 충분히 쉬어갈 수 있었다.

정오가 지나 이곳에 당도한 장율하의 사고는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주검이 있는 곳에서 발자국이 내려간 방향은 저쪽이고, 올라온 곳은 이곳이다. 주검 가까이 찍힌 발자국 흔적이 깊이 팬 것으로 보면 사체(死體)를 안고 주검이 있는 장소로 갔을 것이다.’

발자국의 길이와 폭이 넓고 깊이 팬 것은 남자의 것인 반면, 폭이 좁고 가느다란 것은 여인의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그날, 남녀가 함께 있었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이건 치정사가 아닌가. 사대부가의 아낙이 정부와 모의해 일을 저지른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듯 한적한 곳까지 올 일은 없을 터이고···.’

이런 추정은 이민우가 평소 악동처럼 파렴치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점에서 가능한 추정이었다. 다인이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그의 부인은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남편이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마음속으로 삭이는 빛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민우 가족 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게 원한을 품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판단하는 게 옳았다.

둘째 날 - 밝혀진 사인(死因)

하루가 지나자 사체에선 악즙이 흐르고 냄새는 더욱 강해졌다. 정문원이 코 밑에 진마유(眞麻油;참기름)를 바르고 코마개를 한 채 감초 즙으로 사체를 닦아내며 손끝으로 눌러 확대경으로 상흔을 찾아보았다. 영초를 바르며 핏자국을 살폈지만 생각과는 달리 상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약물에 중독된 것이 아니고 맞아 죽은 것도 아니다. 목을 매달거나 졸린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죽은 것인가. 참으로 묘한 일이다.’

문득 장율하의 손길이 머리 쪽으로 향할 때였다. 후두부(後頭部)의 한 지점에 진물이 배어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구멍 뚫린 곳이라면 그런 흔적이야 나타날 법했지만 그곳엔 구멍이 없었다.

확대경을 들이대고 머리섶을 뒤집자 한 부분에서 새어나온 악즙은 건드릴수록 부패된 냄새를 고약스럽게 풍겨냈다. ‘풍지(風池)’라는 혈자리였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만은 부풀어 오르듯 수포가 있었다.

혈(穴)자리는 제자리를 찾아 침을 놓지 않으면 부패가 시작되었을 때 먼저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라는 게 검험장을 익힐 때부터 귀 따갑게 들었었다. 그의 뇌리엔 이미 세상을 떠난 나이든 검시의의 설명이 맴돌았다.

“후두부는 아주 약한 마찰을 필요로 하는 곳이네. 나이 드신 분들이 머리가 묵직하고 몸이 둔할 때 목을 매만지거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질 않던가. 그런 정도의 마찰이 적당하네. 목에는 독경(督經)을 비롯하여 방광경(膀光經)과 담경(膽經) 외에 삼초경(三焦經)이 흐르니까.”

이곳은 경혈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경락(經絡)의 집중점이었다. 특히 ‘풍지’는 머리가 아프거나 흔들리고 어지러운 증세를 고치는 경혈이다. 혼미한 일을 만나거나 고약한 상황을 당해 어찌할 바 모르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풍지’라는 경혈을 자극해 고통을 완화하려는 스스로의 보호본능 때문이었다.

“살인자는 피해자의 머리를 매만지며 이곳에 침을 찔러 넣었어. ‘풍지’에서 수포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그걸 말해주고 있어. 다른 장소에서 찔러 유기된 현장까지 운반됐다고 볼 수 없고, 여러 사정을 헤아릴 때 사고는 북한산 인근에서 일어났을 것이야. 그게 산중에 버려야할 이유가 되니까.

풍지를 찔렸다면, 이곳에서 침술 치료를 받았다는 건 어설픈 가설일 것이고 계집과 방사를 치르는 과정에 혈자리를 급습 당했다면 가능한 일이긴 한데 혈자리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의문은 꼬리를 물고 장율하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