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파의 다섯 번째는 온파(穩婆)다. 무언가를 편안하게 해준다는 사람으로 <철경록>의 저자는 이런 부류를 여러 곳에서 찾고 있었다. 예를 들면 남녀 문제에 있어 도움을 주는 것처럼 끼어들어 해를 끼친다든가, 두서없이 끼어들어 일을 망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첫째 날 - 죽은 자의 사인(死因)을 찾아라!

시체는 오랜만에 산짐승 사냥을 나온 마필수(馬弼洙) 시선에 걸려 발견되었다. 어지간한 힘 없인 사냥을 하다 뼈도 못 추린다는 서울의 진산(鎭山)이자 종산(宗山)인 북한산(北漢山). 다른 이름으론 삼각산 · 부아악(負兒岳;아이업은 산) · 화산 · 중악 또는 귀봉 등의 뾰족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산은, 세상 사람들에겐 삼각산으로 쉽게 알려져 있다.

최고봉인 백운대를 비롯하여 인수봉 · 만경대가 세 뿔처럼 솟아났다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예로부터 귀한 영물(靈物)이 출현한다 하여 사냥꾼들의 걸음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곳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눈 위를 달리는 설상사(雪上蛇)나 오백년 먹은 신령귀(神靈龜)라는 거북이를 만날 수 있다 했지만 그게 하릴없는 이들이 뿌린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라는 것은 소문이 나돈 지 2백년 가까이 누구 한사람 그런 영물을 잡았다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스스로 천기를 읽고 음양오행으로 중무장 했다고 호언장담하던 산짐승 사냥꾼 마필수가 갑자 을축을 헤아려 길일이라고 뛰어든 산자락엔, 이미 영혼이 저승의 문지방으로 떠나버린 사내의 몸이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고삐 풀린 더위가 물러가면 산자락은 울긋불긋 아름다운 색깔이 물들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은 짐승들의 천국으로 변한다. 인수봉을 기웃거리던 호랑이가 사냥꾼들의 발걸음에 놀라 북한산 자락을 오르내린 것도 가을이 아니고선 쉬이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원 차암. 살다보니 별일을 다 보겠네. 내 십여년 가까이 산짐승들 발자국을 뒤쫓은 것은 사실이네만, 북한산에 올라 얻은 것은 고작 산비둘기 두 마리뿐이네. 오늘따라 그 흔한 산꿩 한 마리 얼씬을 안 하니 북악산 신령님이 내게 사냥을 그만 두라는 것 아닌가. 그렇다 보니 저렇듯 흉측한 것이 내 눈에 발견된 것이구.”

마필수는 자신의 행적이 의심 받을까 두려워 산자락에서 발견된 주검(屍) 곁에서 떠나지 못한 채 동행한 사람들을 경위원에 보내 상황을 전했다. 순검들이 나타나 숲속에 널브러진 주검을 살피며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채 고참 순검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두어 시각이 지나 나타난 장율하 일행은 먼저 온 순검에게 물었다.

“누가 처음 발견했는가?”

“접니다. 내가 맨 처음 발견했어요.”

기다렸단 듯이 마필수가 앞으로 나서며 상황을 그려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 아침 밥상 밀어내고 아랫것들을 몰이꾼으로 데리고 산에 올라 더위를 식힐 겸 쉬고 있던 중 발견한 것이라고 한숨 속에 털어놓았다.

하루 전에 찔끔 내린 비 때문으로는 볼 수 없었으나 주검이 있는 곳은 습기가 가득해 근방을 걸을 때엔 발이 푹푹 빠졌다. 주위를 둘러보며 장율하의 명이 떨어졌다.

“따로 금줄을 칠 필요는 없다. 이곳에 주검을 뒀다간 내일이면 구더기가 생길 것이다. 주검을 서둘러 경위원으로 옮기게. 죽은 자가 입고 있는 옷매무새를 보면 글줄이나 읽은 선비 차림으로 보이는데, 어찌된 게 손바닥에 군살이 없고 검지에 먹물자국까지 없으니 모르긴 해도 부모 재산깨나 축내는 건달 선비가 분명하네. 이 자의 인상착의를 붙여 아는 자를 수소문 하게.”

방(榜)이 붙은 지 한시각도 못 되어 신원이 파악되었다. 산 아래 옥인동 마을에 산다는 이민우(李旻宇)였다. 그를 수소문한 정문원이 달갑지 않은 소식을 내놓았다.

“이민우는 글깨나 읽은 모양입니다만 몇 차례 과거를 보고 실패한 뒤로는 시중의 모리배들과 어울린 모양입니다. 잡기에 능하다는 소문을 보면 아무래도 글 읽는 것과는 담을 쌓았어요. 집안이 망했기로서니 글 읽는 선비라면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시회(詩會;시를 읊는 놀이)를 즐길 법도 한데, 죽은 자는 투전판을 기웃거리고 엉뚱한 일을 꾸미길 좋아했답니다.”

엉뚱한 일이란 과부를 보쌈해 몇 날이고 즐기다가 되돌려 보내거나 투전판을 급습해 재물을 빼앗는 것이었으니 위험한 것으로 보면 목이 열 개라도 부족할 편이었다.

아직껏 산자락에서 내려오지 않은 장율하는 태조 이성계가 새 왕조를 이룩한 후 한양을 노래한 시를 가만히 읊조렸다.

우뚝 솟은 높은 뫼는 하늘까지 솟았네

한양의 지세는 하늘을 열어 이룩한 땅

굳건한 큰 대륙은 삼각산을 떠 받쳤고

넓은 바다 긴 강물은 오대산에서 흐르네

이곳 북한산 정상에 오르면 한양 시가지는 물론이려니와 경기땅과 인천 앞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됐지만, 당시엔 어깨에 힘이 들어간 세도가가 아니면 함부로 올라갈 수 없는 산이었다.

그러는 데도 시인들은 이 산과 도봉산을 일컬어 ‘서울의 축복’이니 ‘서울의 은총’이라고 말한다. 특히 북한산에는 최고봉인 백운대를 비롯하여 거북이 등짝같은 암벽들이 있고, 인수봉을 비롯해 무학대사가 올라가 한양의 도읍지를 살폈다는 국망봉(國望峰)과, 세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는 만경대와, 불교식 이름이 붙은 보현봉, 문수봉, 원효봉,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 그리고 노적가리의 전설을 안고 있는 노적봉 등의 봉우리가 제각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렇듯 빼어난 절경을 되돌아보고 검험이 끝나자 시장(屍帳)이 작성되었다. 사인에 대한 추정은 머리에 강한 충격이 가해져 충격을 받은 것으로 시형도(屍形圖)가 작성되었다. 동공이 열린 게 가장 근접한 이유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것으로 볼 때 변을 당한 후 ‘옷이 입혀져’ 산속에 유기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허면, 범인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것인데?”

경위원에 돌아온 장율하의 혼잣말에 정문원이 반색하며 뒤를 받았다.

“그렇습니다, 장순검님.”

“주검이 있던 자리 말일세. 낙엽이 쌓인 데다 비가 내려 푹푹 빠진 탓에 흐릿하나마 흔적이 있었네. 올라오던 사람의 발자국이 있던데 사냥군 마필수의 것을 제하면 두 사람의 것이 남지 않던가?”

“그렇습니다.”

정문원이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다모(茶母) 다인이 이민우 집으로 갔으니 죽은 자가 요즘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알게 되겠지요. 그 자에 대한 소문이 좋질 않는 걸 보면 필경 곤욕을 치를 일을 저질렀을 것으로 봅니다만···.”

“어쨌건, 가을 문턱이니 일기가 고르지 못하네. 살(肉)이 쉬이 상할 것이니. 서둘러 죽은 자의 사인(死因)을 찾아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