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국이 소환되어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의 행적을 추궁받기에 이르렀다. 향장 윤도백의 곁엔 탁일환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진사가 살해되던 날 밤, 어디서 무얼 했느냐?”

“지난 일을 말씀드리기 전, 제가 이집에 오기 전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방 관아를 떠돌며 세월을 보낸 김판관 어른의 사인(舍人)이었습니다. 사인이라고는 하나 그 자리는 저를 위시하여 그 어른의 조카 되는 김진사 님도 함께 일을 거들었습니다. 어른이 한양 판관으로 도임 받아 지방 관아를 떠나게 되자···.”

탁일환이 불쑥 물었다.

“지방 관아라면 어딘가?”

“해남입니다. 해남에 계실 때 크고 작은 일들을 시생과 그 어른의 조카 되는 김진사 님이 처리했습니다. 오늘날 판관으로 도임되어 편히 말년을 보내신 것은 해남에서 만난 풍수사 덕분이었습니다. 그 댁에 백미 스무 가마를 주고 땅을 구했기에 오늘날 높은 관직에 오르고 집안이 화락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윤도백 향장이 본래의 사건으로 돌아와 물었다.

“다른 얘긴 필요할 때 물을 것이네. 지난밤 자넨 어디서 무얼 했는지 말하게.”

“제가 부름을 받고 김진사님 댁에 도착한 것은 오후 다섯 시 경이었습니다. 때마침 전날 데려오라는 은실이라는 종년이 하루 전 집에 도착하였다는 말을 듣고 겸사겸사 해서 들른 것이지요.

나으리가 내게 말하기를 버티고개 가까이 사는 박초시를 만나 쌀 스무 섬에 해당하는 돈을 받아오라는 것이었어요. 약속한 날짜에 틀림없이 변제한다 했으니 쌀 스무 섬과 그에 상당하는 이자를 받아오라고 한 겁니다. 두 분도 아시다시피 그곳은 도둑이 빈번히 출입해 밤길을 다니기엔 써억 내키지 않은 곳이 아닙니까.”

버티고개는 약수동과 용산구 한남동 사이의 고개로 벌아령(伐兒嶺)이나 부어치(扶於峙)라 불렀다. 지금과는 달리 예전엔 길이 좁고 행인이 적어 도둑이 많았으므로 순라꾼이 야경을 돌며 도둑을 쫓아서 번치(番峙)라 하다가 ‘버치’ 또는 ‘부어치 고개’로 변했다고 전한다.

삼각산 인수봉이 아이를 업고 나가는 형국이므로 그것을 막기 위해 서쪽에 모악과 떡 고개를 두어 어머니가 떡을 가지고 아이를 달래게 하였다 하여 남쪽에 벌아령을 두어 ‘아이가 나가면 때리겠다’고 아이를 나가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곳에 가게 되면 인근 마을에 부인(권씨)이 볼 일이 있으니 안방까지 들러 부인의 말을 듣고 떠나라 한 거지요. 해서 시생은 부인과 한참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가 출발했는데 고개 아래에서 오서방을 만났어요. 그는 마포에서 사공 일을 하는데 그와 잠시 얘길 나누고 버티고개에 도착해 박초시를 만났습니다. 그때가 저녁 10시가 다 됐을 때였어요.

박초시는 먼 길을 왔다 하여 술상을 차렸으나 나는 너무 피곤해 건너방에 자리를 보아달라고 한 후 아침이 되어서야 쌀을 달구지에 싣고 돌아왔습니다. 사람을 불러 조사해 보면 아실 것입니다.”

주위 사람을 불러 어젯밤의 행적을 물어보니 그들은 사실대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탁일환은 강한 의혹을 지우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 정오가 지나면서 이상한 풍문이 돌았다. 은실이가 오래 전부터 이창국의 첩이 돼 심심하다 싶으면 화간(和姦)한다는 내용이었다. 소문의 진원지가 김진사 댁의 상머슴 이춘호(李春浩)에게서 흘러나왔던 점 때문에 향장 윤도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그런 소문을 퍼뜨린 것은 무슨 의도냐? 정녕 네가 본 것이냐?”

“소인은 어릴 때 그 댁에 들어가 스무 해를 넘게 지내왔습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은 물론이려니와 구린내나는 부분까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돕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입었지 않은가. 오갈 데 없는 너를 지금껏 가르치고 길러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주인을 배신할 수 있느냐?”

“그리 물으시면 할 말 없습니다만, 소인은 주인어른께 입은 은혜보다 깊이 골이 긴 원한이 깊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주인어른이 가지고 놀던 유월이를 제게 시집보냈습니다. 가끔 심부름을 시켜 멀리 보낸 후 제 계집인 양 가지고 논 것이 양손을 꼽고도 남습니다. 언젠가 도성으로 심부름을 다녀왔는데 여편네가 대들보에 목을 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게 미안했던지 주인 어른은 쌀 열 섬을 주며 장사를 후히 치르라 했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사는 데 미련이 남지 않아 날마다 방구석에 누워 이 공상 저 공상으로 하루 해를 보냅니다. 소인이 세상살이에 무슨 미련이 남겠습니까.”

이춘호의 이런 말과는 달리 다른 소문도 있었다. 그것은 부인인 유월이가 목을 매단 후 때마침 김진사가 출타 중이어서 직접 부인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가 부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귀띔 때문이었다. 때는 이른 겨울철이었지만 오후 7시면 한밤중이었다.

“들어오너라.”

이춘호는 방으로 들어가자 무릎걸음으로 앉아 자신의 서러운 처지를 한탄했다.

“소인이 어려서 이 집에 들어와 지금껏 두 분의 보살핌으로 지내왔습니다. 덕분에 계집을 얻어 아내로 삼았고 또···.”

“그 천한 것 얘기라면 듣기 싫다. 내 그동안 알고도 모른 척 했다만, 그것이 바깥양반의 허리띠를 풀게 하지 않았느냐. 네 놈의 양물이 얼마나 부실하기에 그 천한 것이 주인의 속살을 만지지 못해 안달을 부렸겠느냐. 네 놈이 없을 때엔 나를 대신해 사랑채를 찾아들었으니 그토록 요망한 계집은 제 처지를 스스로 알고 목을 맨 것이다. 조금도 마음 쓸 것 없다. 이리 올라 오너라!”

“예에?”

“이리 와서 내 등이나 주물러라. 그렇잖아도 몸이 뻐근해 움직이기가 쉽지 않구나.”

이춘호는 얼결에 주인 마님 등뒤로 가서 가만 가만 주물렀다. 물론 너무 놀란 게 원인이었다. 권씨가 불쑥 한소릴 내놓았다.

“무슨 일을 하려거든 강단이 있어야지. 끊고 맺음이 있어야 사내라 할 수 있다. 하면, 네 강단은 무어냐? 과연 유월이란 천한 계집의 몸과 마음이 멀어질 만큼 쓸모없는 몽뚱이를 가졌느냐? 자, 네놈의 손을 여기 넣어라.”

권씨 부인은 사내의 손을 자신의 가슴 속에 밀어넣었다. 희고 맑은 피부, 그곳에 우뚝 자리한 육봉은 자식을 낳지 못해서인지 한결 탄력이 있었다. 순식간에 사내의 몸을 자신 쪽으로 당기며 다급하게 채근했다.

“네놈이 나를 기쁘게 해준다면 유월이의 열 배 가는 계집을 얻게 해줄 것이다.”

반드시 그런 말을 아니 했어도 이춘호의 몸은 달아올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서둘러 부인이 몸을 파고들었다. 이날 밤 권씨 부인은 세 번이나 흐느끼듯 한숨을 토해내며 까무러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