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 거래의 허와 실

현장에 도착하자 의생과 율생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신이 의심쩍게 생각하는 부분들을 뒤적였다. 그들을 향해 윤도백이 탁순검의 지시를 받으라고 귀띔했다. 주위를 물리자 탁일환이 앞으로 나섰다.

“시장을 작성한 적 있는가?”

“양식만 보았을 뿐입니다.”

“시형도(屍形圖)를 펼치게. 그리고 내가 부르는 위치에 기표하게. 나의 웅얼거림도 적어 넣어야 하니 정신을 바짝 차리게.”

즉시 검험(檢驗)에 들어갔다. 형식적이지만 은비녀를 입안에 꽂아 독물의 유무를 따지고, 겨우 앞가림을 한 속옷 한 장을 경계로 상하 전후의 상흔을 살폈다.

상처는 얼굴 뿐이고 다른 곳은 없었다. 칼에 찔린 자국은 머리 위와 귀의 뒤, 그리고 목밑의 인후(咽喉)였다. 깊이가 심했던 지 피의 흘린 양이 그것을 대변했다. 범인이 칼을 휘둘렀을 때, 엉겁결에 잡은 탓인지 죽은 자의 두 손은 피가 낭자했다.

의생이 긴장한 가운데 시장이 작성되었다.

“지금부터 <증수무원록> 인상사문(刃傷死文)에 의거해 시장을 작성한다. 칼을 이용해 살해하는 경우, 살아있는 사람이 칼날에 상해를 입어 죽었다면 어쩌리라 보는가. 의생은 말하라.”

의생이 화들짝 놀란 낯으로 입을 열었다.

“피육은 긴축하고 사방에 피가 어립니다.”

“사지가 절단 됐다면 어쩌리라 보는가?”

“근골과 피육은 엉겨붙습니다.”

“죽은 사람이 베이고 잘린 경우는 어떤가?”

“시체의 피육과 피는 그대로 있습니다. 피는 흘러 내리지 아니하며 베인 곳의 피부 역시 오그라들지 아니합니다. 또한 칼날이 끝난 곳엔 피가 흐르지 아니합니다.”

“색깔은 어떤가?”

“휩니다.”

칼날은 한결같이 급소를 노린 치명상이었다. 놓여있는 베개가 두 개인 것을 보면 누군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돼 팔금이를 불러 닦달했다. 그것은 향장 윤도백의 몫이었다.

“누가 함께 있었느냐?”

“어제 이 집에 온 은실이란 년이에요.”

“불러 오너라.”

“그게···.”

“어찌 그러느냐, 불러 오라는데!”

“사실은 광에 갇혔어요. 어젯밤 주인 나으리의 잠자리 시중을 들었는데···, 나으리가 그 지경이 됐는데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화가 난 안방마님이 치도곤을 안겨 광에 가뒀습니다.”

윤도백의 호통에 겨우 밖으로 나온 그녀의 몰골은 처참했다. 가죽띠로 얼마나 맞았는지 적삼은 피가 배어들었고 얼굴엔 곳곳에 핏자국이 지렁이 기어가듯 어지러웠다. 그녀의 다리 가랑이 사이로 흐르는 선혈을 보며 즉시 의생을 불러 치료해 주라고 지시했다.

검험은 그로부터 반 시각 남짓 지나서 시작되었다. 그 자리엔 안동 권문의 기세 좋은 안방마님이 버티고 있었다.

“지난 밤 일을 기억하는 대로 말하라!”

은실이가 머뭇거리자 팔금이가 대신 입을 열었다.

“그 일이라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인 나으리께선 이 집에 종년이 오는 날엔 안방마님 모르게 사랑채로 불러들이는 게 행사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 집에서 종살이를 편히 하려면 무엇보다 바깥양반의 손길을 타야 가능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여기있는 은실이 역시 정해진 순서대로 밤 일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런 때엔 나으리께서 안방마님의 외도를 모르는 척 눈감아 주셨습니다.”

안방마님 권씨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금방이라도 때려잡을 듯 팔금이를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 이년! 어디서 돼먹지 않은 수작이냐! 네년이 죽기를 각오하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걸 보니 이젠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구나! 내 이년을 그냥···.”

주위에 집어들 물건을 찾는 모양이지만 특별한 게 보이지 않자 씩씩대며 단숨만 몰아쉬었다. 그녀의 귓가에 팔금이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우리같은 종년에게 나으리는 안심하라 했어요. 나으리가 우리 속살을 더듬을 때면 안방마님 침소에는 주사(主事) 일을 보는 이창국(李昶國)이란 놈이 온다고 했으니까요. 그 놈이 잘못한 일 몇 가지가 있는데 때가 되면 그놈과 마님을 엮어 쫓아내겠다고 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안방마님은 이창국이 오기를 목을 빼들고 기다렸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지난 밤에도 이창국이란 자가 왔느냐?”

“예에. 주인 나으리를 만나고 잠시 안방마님을 만나 뵙고 돌아갔습니다.”

“흥, 그건 맞는 말이오!”

안방마님 권씨는 그 말을 홱 던지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버렸다.

셋째 날 - 뛰는 자와 나는 자

다음날 향청에 소환된 이창국의 입에서 흥미로운 일이 밝혀졌다.

판관을 지낸 후 집에 칩거한 김판서가 그의 조카 되는 김진사를 불러 다짜고짜 한 집안의 여식을 가리키며 보살펴 달라고 했다. 예전의 풍수사로 자신에게 명당자리를 팔러 온 사내의 핏줄이었다.

심부름을 한 것은 김판서 댁의 젊은 머슴 또출(又出)이었다. 우선 그에게 근황을 알아오게 하였다. 집안은 이미 거덜난 후였고, 큰 딸은 객주집에서 음식 그릇을 닦고 있었고 어린 딸을 데리고 끼니 걱정을 하고 사는 건 풍수쟁이의 마누라였다. 오랜 시간 허기와 일에 지쳐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져 운신하기에도 힘들게 보였는데 소식을 들으니 남편은 자신에게 명당자리를 팔러 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소식이 끊겼다는 것이다.

당장 조카 녀석이 의심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지난 일을 끄집어 내 소란을 떨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그 집 딸이 있는 곳을 일러주며 데려다 키울 것을 권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지금에 이른 것이다.

김판서는 자신이 그 아이를 데려다 집안일을 맡겼다. 그러던 중 지난 일이 빌미가 돼 집안이 적몰되는 일이 벌어지자 김판서는 은실이를 쌍갈문 조카에게 보내 뒷일을 부탁한 것이다. 김진사가 얼핏 듣기론 자신의 집으로 온 은실이가 이제 열넷이 지나 천계(天癸;월경)가 열렸으니 사내 몸을 전혀 모른다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는 이창국을 보내 하루 전에 데려오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