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이곳 쌍갈문 향청(鄕廳)의 우두머리 향장(鄕長)으로 있는 윤도백(尹道栢)에게 도성에서 왔다는 사내는 흥미로운 얘기를 던졌다.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은 바람 따라 천하를 돌아다니는 얘기꾼이니 사람들이 자신을 풍설가(風說家)라 부른다 했다. 입고 있는 옷이나 말하는 품새가 선비차림이니 윤도백은 홀대하는 것이 마뜩치 않아 상대의 말에 미소로 화답하며 귀를 기울였다.

“전라도 해남에서의 일입니다. 평소 민화(民畵) 모으기를 밥 먹는 것보다 좋아하는 관리가 있었어요. 그의 취미는 그곳 해남 땅에 부임했을 때부터 계속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돈냥이나 있고 한량인 체 하는 작자들도 그 집을 기웃거렸어요. 반드시 민화에 관심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근처를 지나는 행인들도 자신이 얻어들은 얘기 한 토막을 내놓고 하룻밤 신세를 졌으니 항상 그 분의 숙소는 외래객으로 붐비기 마련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도성에서 온 손님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얘기는 꽤 오랜 시간 이어져 첫닭이 울 즈음(새벽 3시)에야 끝났다. 잠자리에 든 윤도백은 손님의 얘기를 곱씹으며 얘기가닥을 추슬려보았다.

“가만, 그 손님이 뭐라고 했지. ‘도라지 타령’은 사내의 물건이 작고 힘이 없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으흐흐흐, 그 사람 차암. 도라지는 사내 양물이며 타령이라는 게 양물에 대한 비유라? 해서 네가 내 간장을 태운다는 건 형편없이 작고 힘이 없어 그런 노래가 불려진 것이라? 으흐흐흐, 말이 돼. 참으로 말이 되는 소리야.”

손님들을 접대 하느라 금방 잠이들 것 같은 몸은 선잠 깨인 아이처럼  조금 전에 들었던 얘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하나씩 일어섰다. 아무래도 해남 군수는 고향으로 돌아와 참판 벼슬을 지낸 김인수(金寅銖) 같았다. 풍설가라고 자신을 밝힌 사내의 목소리가 윤도백의 뇌리에 되살아나 나고 있었다.

“그 분이 해남군수로 있을 때, 누군가 좋은 땅이 있다고 귀띔한 모양입니다. 흔히 풍수사들이 명당으로 치는 ‘어옹수조형(漁翁垂釣形)’의 길지였어요. 오래전부터 조선 사람들의 뇌리엔 물고기가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낙인 찍혀 있습니다. 그렇듯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있기에 절에 있는 풍경(風磬)도 물고기 형상이고 집에서 쓰는 자물쇠도 물고기 형상입니다. 바로 그런 자리에 묘를 쓰면 나이 지긋한 노인이 물고기를 잡아올리는 형상이니 후손 중 누군가가 벼슬길에 나가 이름을 떨치는 것입니다.

그 분을 찾아온 사내는 쌀 스무 가마면 그 장소를 알려드리겠다는 말에 해남 군수는 사인(舍人;집안 일을 도맡은 집사)으로 하여금 그 일을 처리하게 하여 그 자릴 사들인 것이지요. 한데, 세월이 흘러 군수는 한양으로 돌아와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지낸 탓에 자신이그런 땅을 샀는지 잊어버렸다가 벼슬길에서 밀려나고 집안이 멸문 당했을 때에야 그 생각을 하고 예전에 산 그 자리를 파헤쳤더니 인골(人骨;사람의 뼈)이 나왔더랍니다. 곁에 윤도(輪圖;풍수사들이 가지고 다니는 지남쇠)가 있는 것으로 봐 인골의 주인이 좋은 땅을 팔겠다고 해남 군수를 찾아간 풍수사였으니 이 또한 황당한 일이 아닙니까.”

때마침 첫닭이 울기에 얘기를 여기에서 접고 다음날로 미뤄졌다. 의문이 가는 얘기는 끝내 향장 윤도백의 잠자리를 어지럽혔다. 그런 이유로 날이 밝자 서둘러 도성에서 왔다는 풍설가를 불러들였다.

“지난 밤엔 경황이 없어 내가 결례를 한 것 같습니다. 매듭을 짓지 못한 얘긴 어찌 결말이 났습니까?”

“참으로 묘한 일이지요. 풍수사가 좋은 땅을 팔아 돈을 마련하겠노라고 떠난 후 연락이 두절됐어요. 큰 딸은 다른 집에 하녀로 팔려가고 둘째 딸 아이와 부인은 온갖 고생을 하며 모진 세월을 견뎌왔겠지요. 마침내 풍수사의 부인이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집에 남은 딸 아이에게 땅 얘기를 한 모양입니다. 그렇게 하여 장지를 정했는데 그곳에서 풍수사의 유골이 발견됐으니 놀라운 일 아닙니까. 해서, 그 딸이 격쟁(擊錚;관청 앞에서 징이나 꽹과리를 울려 사정을 아뢰는 것)을 하였고, 급기야 경위원에서 순검이 파견 됐습니다.”

“하면, 그쪽이?”

“그렇소이다. 탁일환이라 합니다. 명을 받고 조사를 하는 중 당사자인 해남 군수는 얼마 전 집안이 적몰돼 홧병에 쓰러져 세상을 버렸으니 사건이 종결된 것이라 보고 접으려 하였는데, 누군가 투서를 했지 뭡니까. 이곳 쌍갈문에 가면 당시 군수의 일을 도맡아 하던 사인(舍人)이 살고 있으니 그를 조사하면 전말을 쉬이 알 수 있으리라 한 거지요. 해서, 이곳 향청의 향장으로 있는 윤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밤, 자신에게 들려준 얘기는 풍설가의 허드레 얘기가 아니라 모두가 사건 현장에 있었던 시장(屍帳;검안서)의 내용이었다. 탁일환이 다시 말했다.

“그 당시 사인으로 있던 자는 아마도 김가인 모양입니다. 그런 탓에 중앙정부로 온 해남군수가 손이 끊어진 먼 친척 되는 집안의 족보를 사들여 자신의 조카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후 해남 군수는 중앙 요로에 나가 좋은 관직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좋지 않은 일에 손을 댄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집안이 적몰 됐지요.

한데, 문제는 그 양반의 조카입니다. 그 자가 이곳 쌍갈문에 터를 내리면서 진사(進士) 행세를 하며 크고 작은 이권 사업에 손을 대 재산깨나 모았다는데···, 향장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그 사람 믿을만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위인입니까. 그것을 알아야 인근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건데 말입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 합니다만···, 사람은 누구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게 마련 아닙니까. 김진사 그 양반 이곳에선 좋은 일을 그렁저렁 한 편이지요. 그랬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얻었습니다.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인데 한가지 흠이라면 여색(女色)을 밝힌다는 점입니다. 사내라면 당연히 여인네의 체취를 맡고 싶어 하지만···, 그 사람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어요. 일테면···.”

윤도백은 지난 가을 이곳 향청에서 노인들을 위해 잔치를 열었을 때를 떠올렸다. 잔치에는 의당 음식을 따라 나온 게 술이어서 누구나 알싸하게 취하기 마련이다. 이날 김진사는 정오가 지나 참석했는데 일을 하던 오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 몸둘 바를 몰라 했다.

“김진사를 따라 온 마름 하나가 무얼 어찌 수작을 벌였는지 김씨가 오씨를 따라가 하룻밤을 지내고 나오더라고 소문이 퍼졌지 뭡니까. 그 바람에 오여인이 목을 매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후엔 마을 사람들 눈에 좋게 비칠 리 없었지요. 오여인의 남편은 장사를 떠난 이후 지금까지 나타나질 않으니 그 또한 불의의 변을 당한 거라 사람들이 마음 아파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향청 앞자락이 떠들썩 했다. 향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더니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고변이었다.

항상 대기해 있던 의생(醫生)을 비롯하여 율생(律生) 및 오작사령(주검을 다루는 관비)을 불러들였다. 준비가 끝나자 윤도백이 정중히 청했다.

“저야 시장을 작성하는 게 서툴지요. 초검관으로 참석하지만 이상한 점을 건져낼 수 없으니 있으나 마납니다. 탁순검께서 동행하시어 도움을 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