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서찰은 며칠 전 이 댁 며느님이 무용교습소 기생어미에게 보낸 것입니다. 듣기 좋으라고 무용교습소지 그곳의 기생어민 장안 한량들을 상대로 머리 얹히는 장사가 한창이랍니다. 한 사람당 쌀 열가마니 값이 기본이지만, 이 댁 며느리는 서른 가마 쌀값을 지불하고 혼례를 치렀답니다. 몸매가 늘씬한 데다 인물 좋고 창(唱;노래)에 뛰어나니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자넨 자신의 과거로 인해 이 댁 며느리가 목숨을 끊었다는 얘긴가?”

“그렇습니다. 지금 눈에 띄는 것은 그 것 뿐입니다.”

장율하는 잠깐 생각했다. 정문원의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주검의 임자가 손에 쥔 옷고름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살아있을 때, 그것을 뜯어냈다면 목을 매달면서 쥐고 있어야 한다.

한쪽 손을 주먹 쥔 채 목을 매단다?

그건 설득력이 서먹해진다. 이것을 다른 쪽에서 생각하면 목을 매단 후의 일이다. 목을 매단 후 몸이 늘어진 형태라면 수평이 된 상태에서 손은 위로 올릴 수 없다. 만약 그런 노력을 보였다면 목을 맨 흔적은 달라진다. 그것은 죽음에 사용된 끈의 매듭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된 게야?’

장율하가 심사숙고하는 것은 사체가 쥐고 있는 옷고름이었다. 여러 모로 분석할 때 죽은 여인은 위급한 상황에서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려는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때 관상감에서 일을 하던 이수병(李秀秉)이 사색이 된 낯으로 뛰어들었다.

“내 아내가 죽었다니 무슨 말입니까? 목을 맸다고요? 내 오다가 지난 혼사에 다리를 놓아준 방물장수 아낙을 만났는데 아내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보시오, 순검 나으리. 내 아낸 어디 있습니까?”

“이미 절명했습니다. 보지 않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이수병은 비틀거리다 툇마루에 주저앉았다. 그는 몽롱한 시선을 허공에 띄우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보름 전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나이 드셨으니 노환이라 생각합니다만, 아내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습니다. 성정이 가을 호수처럼 맑고 깨끗해 어느 한 곳 모난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런 아내가 오늘 정오,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이수병이 내민 메모지를 건네받으며 장율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득자(得子)’.

여인으로서 시집을 와 사랑하는 이의 자식을 가졌다는 것은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자신 있는 행동이었다. 그 기쁨을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지난 허물을 미끼로 스스로 명줄을 끊을 수 있을까.

장율하는 상대가 진정되기를 기다려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주인장께선 어떻게 부인을 만났습니까? 저희가 알기론 무용교습소에서 일을 했다 들었습니다만···.”

“그랬습니다. 어릴 적에 들어갔으니 시집 오기 전까지의 세월을 노래와 춤으로 보냈겠지요. 아내는 저를 만난 후 그런 일을 접었습니다. 가끔 아내의 솜씨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방물장수를 보내 정중히 청했습니다만, 아내는 일체 거부했습니다. 오로지 저와 어머님의 건강만을 생각하고 집안을 지킨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제게 자식을 가진 것 같다는 쪽지를 보냈는데···, 그런 사람이 목을 매달겠습니까? 누군가 아내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한 겁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혹시 아내 되시는 분에게 다른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생각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사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이수병은 당치않은 얘기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내를 만났을 당시의 일을 주섬주섬 털어놓았다.

둘째 날 - ‘이런 얘기를 아십니까’의 염담꾼(艶談客)

관상감의 산원(散員)으로 일하다 보면 심신이 여간 고달플 때가 많지 않다. 당시만 하더라도 관상감의 임시직원이었으니 친구들과 어울려 ‘종달새 클럽’ 같은 왜녀(倭女)들의 가게를 찾아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고작 근처를 오가는 ‘음란서생’이나 ‘뻐꾸기 아저씨’, 옛 얘기를 구수하게 잘 엮는 ‘염담꾼’을 부르는 게 고작이었다.

어느 날 이수병과 친구 한 사람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금요일 저녁 관상감 객방으로 염담꾼을 불러들였다. 나이가 서른은 넘어 보인 사내는 자신을 청한 게 장가도 안간 젊은이들임을 알자 특유의 넉살을 풀어헤쳤다.

“나는 장안 곳곳을 안 다닌 데가 없습니다. 두 분이 무슨 얘기를 청하시든 자유입니다만, 그 전에 내가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두 분께선 이런 얘기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얼굴이나 손의 형태만을 보고도 상대하는 여인의 몸이 어떤지를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자신과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하거나, 또는 일생을 같이할 여인이 자신의 일생에 이로움이 될지, 또는 해로움이 될지 알아내는 방법입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그 얘기를 두 분에게 해드릴까요?”

‘어디 한번 들어 봅시다’며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지전을 꺼내 탁! 소리가 나도록 앞에 떨어뜨리자 염담꾼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얘기를 펼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