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시 관상감(觀象監)은 조선시대 천문을 비롯하여 지리 · 역수(曆數) · 점산(占算) · 측후(測候) · 각루(刻漏) 등의 일을 담당했다.

일찍이 신라에서는 첨성대를 만들어 측후에 대비했으며, 고려 시대엔 건국 초에 태복감(太卜監) · 태화국(太火局)을 두었다가 나중에 사천감을 비롯하여 사천감 · 관후서 · 서운관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조선에서는 세종 7년 관상감이라 칭하고 예조에 속하게 했으며, 연산왕 때엔 사력서(司曆署)로 개칭했다가 중종 때 본래 명칭으로 환원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영사(領事)는 영의정이 겸임하고 주욱 아래로 내려와 천문학 · 지리학 · 명과학 분야로 나누어 임시직 인원을 다수 채용하였다. 다시 말해 이수병(李秀秉)은 임시직원으로 관상감에 몸을 담게 된 것이다.

그렇다보니 비슷한 일을 하게 되는 동료들과 어울리게 됐는데 이들을 통털어 ‘산원(散員)’이라 불렀다. 관직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성씨를 앞자리에 붙여 ‘이산원’ ‘박산원’ 또는 이름자를 붙여 뒤쪽에 ‘산원’이란 명칭을 붙였다. 이들은 관직을 받은 이처럼 출퇴근 하는 이도 있고, 일주일 내내 근무를 하고 토요일 오후에 나와 월요일 아침에 들어가는 이도 있었다.

이수병이 그러한 근무조였다. 그와 같은 산원에 장동희(張東囍)라는 이가 있었는데 같은 방에 근무하는 단짝이었다. 그러나 생김생김이 마음에 꺼리는 게 있어 깊은 정은 주지 않은 상태였다. 어느 날 그가 흥미로운 얘길 꺼냈다.

“이곳 관상감에 자주 오는 방물장수 아주머니가 있는데 요즘 이상한 것을 팔고 있다네. 나이든 사내가 즐겨 찾는 것이라는데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고, 이곳 한양 땅에 젊은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다는구만.
내 들으니 일본에는 오래 전 신쥬(心中)라는 게 들어왔는데 이것은 에도 막부 시대에 유행하던 것으로, 주로 남녀 간의 불륜을 다룬 것인데 사랑하는 여인과 동반자살을 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단 말이야. 이것을 들으며 사람들은 슬프다는 일면보다 애잔한 느낌을 갖는다는 거야. 그게 ‘신쥬’야!”

장동희는 그 같은 말을 앞자락에 깔고 상대의 호기심을 부추겼다.

“내가 아는 분이 한약방을 다녀와 그런 말을 귀띔하더구먼. 중원에는 전족(纏足)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여자들의 발을 묶는 풍습으로, 지금도 지방에 따라선 이런 일이 행해지고 있다네. 발을 묶으면 자라지 못하니 걸음을 걸을 때엔 상체와 하체 그리고 몸의 중심부를 좌우로 흔들 수밖에 없거든.
중국 무협 영화를 보면 제법 돈냥이나 있는 집안의 여인이 걸을 때면 뒤똥거리잖아. 그게 전족을 했기 때문이야. 그렇듯 뒤뚱거리는 걸음을 ‘부보(鳧步)’라 하는 데, 조선어로는 오리걸음이지.”

이러한 걸음은 몸이 각각 세 등분으로 나뉘기 때문에 괄약근의 응집력과 수축력이 강해진다. 즉, 중국인들이 여인의 발을 칭칭 감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선도식 건강 때문이 아니고, 자신의 성생활에 필요한 섹스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이유였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그들은 반론을 편다. 조선인들도 버선을 신는 게 같은 이유라는 맥락이었다.

나이 스물의 젊은 총각이 피 끓는 얘길 들으면 확인해 보고 싶은 게 호기심의 한 자락이다. 그들이 소문에 들은 약도대로 그곳을 찾아가는데 골목 어귀에서 서른 두엇으로 뵈는 아낙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

“요즘은 소문만 듣고 갔다간 백 번 망신당하기 십상입니다요 도련님들. 마음이 동해 몸을 잘못 썼다간 창병(娼病)이 올라 장가도 못가고 한숨을 내쉬다 자살하는 사람 여럿 봤어요. 사내와 계집이 어울리면 알게 모르게 병이라는 게 생기는 것이고, 그것들은 물 건너 바다 건너 온 탓에 쉬이 치료가 안 됩니다. 집안의 재물을 알게 모르게 퍼질러내도 병을 나을지를 모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두 분께선 신세 조질 생각을 마시고 나를 따라 아름다운 처녀의 무용이나 구경하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오랜만에 기생이든 상녀(商女;몸을 파는 여자)든 손 한 번 잡고 빙글빙글 여흥을 즐겨보려던 생각이 싹 달아나자, 두 사내는 여인을 따라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이건 내가 다른 사람에겐 하지 않는 얘깁니다만, 두 분 도련님은 나의 형제 같고 동생 같으니 들려드립니다. 내가 한 해 전까지 방물장수를 했습니다만, 그 일을 하던 중 ‘두 발로 선 꽃’에 대한 얘길 들었지 뭡니까. 아직 나이가 안 차서 모르시겠지만, ‘두 발로 선 꽃’은 병화(竝花)라는 아인데 나이는 열일곱으로 몸 구조가 아주 특이하다지 뭡니까. 떠도는 소문처럼 사내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몸이랍니다. 어느 총각이든 그 처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면 부귀와 공명이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온다지 뭡니까. 자자, 오늘은 그런 집으로 쇤네가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부족하거나 부탁하실 일이 있으면 이 몸을 찾아주십시오.”

방물장수 아낙이 물러간 뒤 두 젊은이는 ‘두 발로 선 꽃’이라는 병화의 방으로 들어갔다. 과연 소문처럼 그녀는 사내의 넋을 빼놓을 만큼 용모와 춤사위가 대단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부터 장동희는 관상감에 나오지 않은 반면 이수병은 더욱 하는 일에 정진해 명과학 훈도(命課學訓導;정9품)에 임명되었다. 이렇듯 좋은 날, 득달같이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께 소식을 전하려는 데 집에는 또 다른 경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병화라는 처녀가 방물장수를 보내 청혼을 해온 것이다. 그것이 석 달 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