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촉군태수 여경대는 이제까지 ‘열배 독계산’을 환(丸)으로 만들어 복용해오던 상태였다. 부인이 앉은뱅이가 되자 화가 나 그 약을 마당에 던져버렸다. 이때 마당에서 놀던 수탉이 그 약을 쪼아 먹고 암탉을 올라타더니 몇 날 며칠이고  내려오지 않고 부리로 볏을 찍어 암탉을 대머리로 만들어 버려 이름이 ‘독계산(禿鷄散)’이었다. 즉, ‘닭을 대머리로 만들어 버린 약’이라는 뜻이다.

사내는 육씨의 눈가를 비롯하여 손톱과 턱밑의 여드름 자국, 그리고 손을 비비게 한 후 피가 뭉친 부위 등을 보며 젊잖게 한소릴 뽑았다.

“남녀 간의 문제는 음양교구(陰陽交媾)라 하여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이러한 법칙을 무시하면 몸에 이상이 오는데 지금 주인장의 몸엔 다섯 가지가 약해졌다는 ‘오쇠(五衰)’ 증상이 자릴 잡았습니다.

다소 듣기에 민망한 얘깁니다만, 5쇠란 이런 것이죠. 첫째, 여인의 몸을 안자 마자 자연적으로 정액이 흐르는 것을 말하며 둘째, 정액에서 냄새가 나며 셋째, 정액의 농도가 묽고 적으며 넷째, 정액이 나오기는 하되 사출능력이 없으며 다섯째, 정력이 쇠해 발기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육씨는 그 중에 서너 가지가 자신의 증세와 비슷하여 어험! 험험! 군기침으로 남사스러운 상황을 모면해 보려하지만 도사풍 사내의 뒷설명은 눈치없이 떨어졌다.

“주인장, 정액이 자연적으로 흘러나온 것은 근육에 고장이 생긴 것이고, 사출 능력이 없다는 건 뼈에 이상이 온 겁니다. 더구나 발기가 잘 안 되는 것은 몸 전체에 이상이 왔다는 적신호로, 이런 증세를 치료하려면 여자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되, 적어도 두 달 이상 정액을 배출시키지 않으면 치료가 되고 보너스로 신력(腎力)이 크게 강화됩니다. 물론 이 경우엔 빈도가 조제한 약을 먹어야 효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약을 지었는데, 이것은 특별 비방이라 약값도 쌀이 세 가마니 가격에 해당됐다. 우선 특방(特方)이라는 단약을 세 알이나 냉수에 훌훌 삼키고 막걸리 서너 잔을 마신 후 낮참에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아내에게 구박받은 명예스럽지 못한 일을 단번에 만회하려 허둥댔지만 갈증이 심한 아내의 기갈을 해결하는 데엔 역부족이었다.

“이게 뭐야? 쌀 세 가마니 값을 주고 구한 게 가짜약이란 말이야? 아이고 이런 화상···.”

육씨는 아내에게 꼬집히고 발길질에 채여 쫓겨났다. 다음날 아침, 아내의 방을 기웃거리는 육씨에게 마씨는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며 고함쳤다.

“아궁에에 불을 지피려면 방이 뜨거워 질 때까지 해야 할 게 아냐! 잠시 뜨뜻해 지는가 싶으면 냉골이 돼 버리니 잠을 잘 수가 있나 말이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가짜 약을 세 가마니나 되는 쌀값을 주고 샀으니 그 자식 있는 곳이 어디야, 내가 한달음에 찾아가 찾아올 거야!”

마씨는 카악 토악질 하더니 방이며 마룻바닥에 침을 뱉고 가짜 도사가 머물고 있다는 불암산 인근으로 찾아갔다. 아침부터 우중충한 날씨는 정오가 지나면서 급기야 한줄금의 빗발을 토해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지려니 했는데 빗발은 점점 굵어지자 마씨는 비로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낡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그곳은 편액이 걸린 도관(道觀)이었다.

“에이구, 꼴같잖은 서방 때문에 별스런 일을 당하더니 이젠 하늘마저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애.”

마씨는 편액을 힐끔 올려다보며 빗발이 들치지 않은 곳으로 몇 걸음을 옮겨 멀거니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인가와는 다른 지역이었다. 근처에 아름드리나무와 바위가 있어 그런 대로 풍광은 좋아 보였으나 비바람이 몰아치자 왠지 황량한 느낌이었다. 그때 서른쯤으로 뵈는 사내가 쪽문을 열었다.

“아주머니 안으로 들어오세요. 비가 쉬이 그칠 것 같질 않아요. 괜히 비를 맞잖아요.”

“괜찮아요.”

“어서 들어오시라니까요. 비가 점점 더 오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빗발은 더욱 사나워졌다. 아무래도 도관 안으로 들어가 잠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도를 닦는 냄새가 났다. 사내는 이곳 ‘태현도관(太玄道觀)’의 관주로 나이가 서른쯤으로 뵈는 태현(太玄)이었다.

이 자는 평소 품행이 좋질 않았다. 오늘은 비가 오니 마을에 나가지 않고 늘씬하게 낮잠을 즐기다가 비를 피해 도관 곁에 서 있는 마씨를 발견한 것이다. 나이가 겨우 스물 둘인 마씨의 비에 젖은 모습에 태현의 가슴은 방망이질이 한창이었다.

그것은 마씨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본 사내였지만 왠지 정이 가는 눈매며 말하는 품새가 여인의 마음을 그런 대로 다독일 줄 아는 것 같아 다소 부끄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데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 가시는 길인지 모르지만 잘 들어오셨습니다. 이곳 도관은 호화롭지는 않지만 비를 피하는 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며칠 전 어느 여자 분은 이곳에서 일주일이나 쉬었다 가며 심신을 맑게 한 분도 있으십니다.”

태현은 처음보는 마씨였지만 도관 안을 이리 저리 안내하며 필요 이상의 잔설명을 떨구었다. 이런 경우 태현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믿는 듯했다. 도관 안엔 흙으로 빚은 소상(塑像)이 있는데, 이름을 장도릉 선인이라 소개했다.

“이 분에 대해선 여러 말이 세상에 떠돕니다만 좋은 것으로 말하면, 남녀의 잠자리 비사를 도와주는 분이고 다른 쪽으로는 사내들의 기(氣)를 조롱한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 분의 재간을 배운 분은 훗날 신선이 되어 나름대로 도학(道學)을 세상을 전했습니다만, 그 분을 조롱하는 쪽은 대개 <삼국지>라는 얘기책을 몇 줄 읽은 사람들이죠. 이렇다보니 어느 게 좋고 어느 게 나쁘다고 말한다는 게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거죠.”

태현은 뒷설명으로 항상 써 먹어온 이 말만은 놓치지 않았다. 바로 효험이었다.

“빈도가 모시는 장도릉 선인은 효험이 대단합니다. 자식을 점지해 주는가 하면 허약한 남편으로 인해 마음이 상한 부인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도 합니다.”

태현은 여인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했다. 이렇듯 비가 오는 날 잔 비를 맞고 간다면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주 급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사내와 싸우고 가출한 경우다. 마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은 기회로 여긴 탓에 일부러 외진 방으로 인도하여 마씨를 끌어안았다.

“아주머니, 용서해 주세요. 저는 이곳에 있으면서 아주머니 같으신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발 저를 좀 살려주세요. 수십 년 동안 도를 닦은 저의 수행이 이젠 부질없게 됐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절 밀어내시면 밖으로 나가 강물에 몸을 던지겠습니다.”

태현의 속삭임은 약간 강압적인 성격이 있었지만 듣는 쪽에서 보면 아주 달콤했다. 마씨는 내심 우쭐했다. 이 방에 들어올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길 은근히 바랐지만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자 교태로운 미소를 지으며 순식간에 태현을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