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수록 잠을 이루지 못한 게 어찌 장율하뿐이겠는가. 이참판 댁도 마찬가지였다. 안채에는 재취 자리를 굳히지 못한 스무 살 남짓의 정향(丁香)이란 계집이 있었고, 근자에 마음을 잡은 탓인지 아들의 글 읽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마씨 역시 서안(書案) 위에 한쪽 팔을 고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만있자. 그때가 언제였더라···.’

마씨는 생각을 달렸다.

아들이 개화산(開花山)에 들어가 대과를 준비할 때 며느리에게 아들의 보약을 준비시켰다. 이곳 개화산은 강화도로 이어지는 지금의 양천구 삼정면(三井面)이었으나 후일 서울시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강서구에 편입되었다.

개화산엔 개화사라는 절이 있는데 지금은 약사암(藥師庵)이란 암자만 남은 채, 약사여래(藥師如來)를 주불로 모시고 있다. 약사암 바로 옆의 약수터가 신험하다는 소문에 병자를 비롯하여 과시(科試;과거시험)를 준비하거나 자식을 갖지 못한 여인네들이 찾아와 약수를 마시곤 했다.

특히 이 일대에 이참판댁 5백석지기 녹전(祿田)이 있었다. 마씨가 이곳의 옥답 문서를 아들에게 준 것은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행세깨나 하는 고관에게 줄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후였다.

“지금은 어수선한 시깁니다. 재물이 있다고 그것을 언제까지 보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안이 일어서려면 힘이 있어야지요. 그러자면 얼마가 들더라도 중앙정부의 힘 있는 자에게 줄을 대야 합니다. 그러니 개화사 인근의 5백석지기 땅문서를 제게 주십시오.”

집안을 일으킨다는 아들의 청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손을 썼으니 어떻게든 대과(大科)에 합격해야 하는 아들은 장가든 후에도 학문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난 어느날 며느리에게 탕약을 준비시켰다.

“산 중에 있다 보면 먹는 게 부실할 것이다. 몸은 또 얼마나 허하랴. 집안을 출입하는 최의원에게 좋은 약재를 준비시켜라.”

그렇게 하여 준비한 게 하수오(何首烏)였다. 며칠 후 약재를 들고 찾아 온 최의원이 문안 인사차 내당에 들렸다.

“마님, 이 하수오는 중국에서 들어와 오랫동안 재배된 것으로 덩이뿌릴 약재로 사용합니다. 자양강정에 다시없이 귀한 것입니다만, 그 외에 경혈의 흐름을 고르게 하고 피를 맑게 하는 데 뛰어난 효험이 있습니다. 아드님께서 이런 약재를 드셔도 무방합니다만, 그보다는 혼인한 지 다섯 달이니 다른 약재를 드시는 게 나을 것이라 봅니다.”

그는 가지고 온 보퉁이 안에서 동글동글한 옥가락지 모양의 환(環;반지)을 비롯하여 용과 봉황이 조각된 붉고 노란 황촉(黃燭;초), 물소 뿔로 만들었다는 남정네의 양경을 본뜬 물건 등을 꺼냈다. 마음으로는 이 무슨 짓이냐고 내쳐야 했는데 마씨의 얼굴은 발그레 달아오르고 호흡 조절이 어려워 그것을 잔기침으로 애써 감추었다. 최의원이 입을 열었다.

“지금 아드님은 한창 때니 거기에 맞는 약재를 써야겠지요. 혼인한 지 이제 다섯 달이니 오직 밤이 짧겠습니까. 그런 밤엔 거기에 맞게 약을 써야지요.”

황촉을 지그시 바라보며 최의원은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제가 마님 댁에 다닙니다만, 사실···, 약재가 필요한 분은 마님이십니다. 사람의 정혈(精血)은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찌꺼기가 쌓여 때가 되면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마님께선 그것을 억지로 몸 안에 가두셨습니다.”

그것은 상대를 배려해 준 말 같았지만 사실은 마씨의 험난한 전력을 은근히 비꼰 것이었다. 정적과의 겨룸에서 남편을 잃고 그 동안 독수공방해 왔었다. 나라에서는 남편의 공을 인정하여 녹전(祿田)을 하사했지만, 사내 생각이 나는 젊은 육신을 달래느라 수(繡) 놓던 바늘로 그 얼마나 허벅지를 찌르며 더운 피를 식혔던가. 생각할수록 고행의 나날이었다.

그런데 지금···, 집을 찾아온 최의원 말에 젊은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차가와진 피가 조금씩 덮혀지고 있었다. 최의원의 말은 은밀해졌다.

“마님께서 재취(再娶) 갈 생각이라면 더욱 더 몸을 뜨겁게 만들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게 육십년이면 사내를 찾을 때는 지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찍 사별한 대갓집 마나님들은 예전관 달리 이런 물건을 머리맡에 두고 계십니다. 바로 각선생(角先生)이죠. 육신의 허기를 달래며 스스로 부정한 짓을 피하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이런 물건이 사내의 몸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마씨의 낯빛은 홍당무처럼 벌개져 버렸다. 그 틈을 비집고 슬그머니 최의원의 손이 마씨의 손을 잡았다.

“마님, 소인이 진맥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보료 위에 반듯이 누우십시오.”

마씨는 거절할 힘이 없었다. 지난 번엔 자신이 원해 최의원을 불러들였지만 지금은 상대가 손을 내밀었다. 훌훌 털고 일어나야 했지만 기다린 것처럼 의원의 손 끝에 몸을 맡긴 것은 허기 때문이었을까.

온 몸을 관통하는 시원한 물줄기는 시각이 흐르면서 뜨거워지지 시작했고 호흡은 다스리지 못할 만큼 가빴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자신의 몸에 그렇듯 불을 켤 수 있는 화등잔이 있는 줄 몰랐다. 처음엔 초롱불처럼 미약하더니 조금씩 심지를 돋우어 온 몸을 달궈 버렸다.

누가 먼저이고 나중이 없었다. 무작정 사내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가슴 속에 밀어 넣었다. 활화산처럼 일어나는 정념에 온 몸이 부서져라 사내의 몸을 끌어당겼다. 자신의 몸 어디에서 이같은 힘이 나오는지, 사내의 힘을 자신의 내부에 가둔 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강하게 조이며 날이 새도록 사분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