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란 게 그래. 그건 마물과 같은 것이네. 아무리 없는 놈이라도 그걸 마시면 간덩이가 배 밖으로 밀고 나오거든. 그런가하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게 되는 것도 술이지. 그래서 내가 용인 땅의 현감으로 내정됐다는 말을 빼고 그 자와 어울린 것은 부지중에 무슨 말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지.

언젠가 그런 말을 하더구만. 자신이 가난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손안에 재물을 쥐니 이젠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다는 게야. 어느 쪽을 보아도 믿음이 가지 않지만 믿는 것은 오로지 황촉불에 너울거리는 제 그림자라 했네.”

장율하는 여전히 상대의 말을 자르지 않고 다소곳이 경청했다. 이형갑은 최의원을 만난 후의 소득을 들려주었다.

“나는 혼인한 지 여러 해가 됐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네. 그러다보니 집에 들어가면 늘 찬바람이 불어오네. 최의원을 세 번째 만난 날, 그러니까 이참판댁 며느리 사건이 해결된 지 다섯 달인가 되었을 때, 갑자기 최의원이 내 손을 잡더니 진맥을 하는 거야. 그러다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게 아닌가. 기가 부족해 아기씨가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거야. 그 말에 기녀들이 죽는다고 웃어댔지만  그 자의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네.”

장율하의 말이 빠르게 이어졌다.

“해서, 자네는 두 해가 넘도록 그 자의 처방을 받았고 술자리를 같이 했네. 이것은 검안이나 공초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의 집에서 발견된 뇌물 장부에 자네 이름이 올라 있더라 그 말이네. 자네 외에 한 사람이 또 있긴 하네만 그건 별개로 치고···. 그래, 최의원에게 받은 처방은 효험이 있던가?”

“우스운 말이네만···.”

“있었단 말이구만.”

“집안에 아이가 없으니 부인 보기 민망하고 함께 잠자리에 들었어도 서먹서먹하더란 말일세. 그래서 관아에서 공무를 핑계 삼아 날을 세우는 게 다반사였네. 그러던 차에 그 자가 ‘갱생환(更生丸)’이란 처방을 주었네.”

이형갑은 당시를 회상하는지 눈을 꼬옥 감았다. 과연 그에게서 두 해 전 최의원이 속삭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황실처방이라 민간에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내들이 워낙 허약할 때 쓰는 비방인데 ‘고양부갱생환(高陽負更生丸)’이라 합니다. 이 약을 당분간 드시면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최의원은 향초(香燭)란 것도 선물했다. 자신이 집에 들어가면 잠을 자기 전 이각(二刻;30분) 가량 켜놓으라는 얘기였다. 처음엔 웃는 낯으로 받아들고 왔는데 어느 날 그의 말이 떠올라 향초를 켜고 얘기를 나누던 중 부인을 사랑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장율하는 최의원 집에서 가져온 향초를 반으로 쪼갰다. 과연 향초에는 불을 켜는 심지 외에 붉거나 노란색으로 물든 심지가 또 하나 있었다. 자신의 집에 있는 향초엔 붉은 심지가 있었다고 이형갑은 털어놓았다.

“가만, 내가 최의원 집에 갔을 때 십장생이 그려진 여러 종류의 초(燭) 중에 촛대에 끼워져 있는 것은 귀촉(龜燭;거북이가 새겨진 향초)이었네. 경위원에 가져와 향초를 반으로 쪼개 보니 각기 다른 심지들이 들어 있더구만. 최의원 방에 켜진 거북이 형상을 그린 초엔 푸른 빛이 도는 심지가 있었네. 그 초의 심지에 종류를 알 수 없는 약물이 묻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급히 정문원을 그 집으로 보내 타다 남은 황촉을 찾게 했으나 이미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했지만 헛일이었다.

넷째 날 - 중국황실을 망하게 한 비약, 오석산(五石散)

최의원의 주검을 살폈다. 동보당에서 일하는 가노(家奴;집에서 부리는 하인)가 처음 발견한 후 경위원에 신고한 것이지만, 그는 잔뜩 겁에 질려 횡설수설했다. 자신은 주인이 얼굴을 쳐 박고 죽어 있는 것만을 보았을 뿐 다른 것은 아는 바 없다고 벌벌 떨었다.

경위원에서 순검들이 나갔으나 일체 손을 대지 않은 상태에서 주검만 가져왔었다. 가슴의 상처가 사인(死因)과 무관하다면 원인은 무언가?

장율하는 팔짱을 낀 채 나름대로 생각에 빠져들었다. 최의원의 주검은 입과 눈이 닫혀 있다. 타살의 경우, 당연히 입과 눈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최의원은 편안한 죽음을 당했다?

‘아무런 고통 없이 죽일 수 있는 방법, 그게 뭘까?’

불현 듯 뇌리를 파고든 것이 침(針)이었다. 서둘러 최의원의 배꼽을 만져보았다. 역시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약간 부은 듯한 배꼽은 확대경을 들이대자 끈적거리는 물체가 올라왔다. 밀랍(蜜蠟)이었다. 핀셋을 안쪽으로 밀어 넣자 가느다란 철선(鐵線)의 느낌이 전해지고 그것을 뽑아보니 길이가 5센티 가량의 침이었다.

정오가 못 되어 수원을 다녀온 다인(多仁)이 새로운 소식을 내놓았다.

“두 해가 넘은 얘기라는데 시기는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벼슬길에서 물러난 정한수(鄭翰守) 대감이 최의원과 일년 넘도록 인연을 가졌는데 급살을 당했답니다. 최의원이 중국 황실에서 전해 온 <오석산(五石散)>이란 비약을 만들어 정한수 대감에게 제공했는데 약물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었답니다.

그런데도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평소 열이 많은 대감이 그 약재 외에 다른 강정 식품을 먹고 절명했다고 대감의 첩실이 증언했기 때문이랍니다. 목숨을 구한 대가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첩실에게 빼앗긴 후 최의원은 한양으로 돌아왔답니다.”

“대감의 집안에서 비약을 처방한 걸 알았다면 당연히 문제를 삼았을 것이다. 어찌 첩실의 증언만으로 최의원을 풀어주었다는 게냐?”

다인이 뒷말을 받았다.

“그 댁엔 청상이 된 딸과 노모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 대감이 첩실을 거둔 것은 아들을 얻기 위해서였지만 뜻을 이루진 못했답니다. 장순검님, 제가 그곳에 있는 동안 희한한 얘길 들었어요. 최의원을 살리려고 애쓴 사람은 첩실뿐만이 아니고 청상이 된 딸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장율하의 뇌리에 하나의 그림이 수놓아졌다. 최원기 이 자는 첩실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청상이 된 딸과도 모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손이 귀한 집안에서 노모는 중대한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편을 숨지게 한 의원을 당장 참형에 처할 일이지만 울며 매달리는 청상이 된 딸의 애절한 부탁을 거절하진 못했다. 딸의 뱃속에 든 아이의 아비를 형장의 이슬로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판서댁의 며느리는 누가 죽인 거지? 이현감의 말에 의하면 판서댁 며느리가 죽던 날은 최의원이 삼화루에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시어머니뿐이다. 한데, 무슨 방법으로 잠에 떨어지게 했을까? 강정과 강장에 필요한 약재를 가져온 며느리는 그것을 어디에 썼을까?'

생각은 끝없이 달리는데 잡히는 것 빈주먹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