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사라.’

용인 관아로 돌아온 후에도 장율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람을 죽인 후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서는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살빛이다. 죽은 자를 줄이나 끈으로 손발을 결박하는 경우 기혈이 통하지 않으므로 상흔은 검붉거나 붉지 않고 흰색을 띤다.

살아있을 때의 상흔과 죽었을 때의 상흔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 가끔은 붉은 색으로 위조하기도 한다. 대꼬챙이를 불에 달궈 흰색 상흔을 지져 붉게 만드는 방법이다.

시장(屍帳;검시 기록)에는 감초즙을 사용해 검안해 보니 목을 매달 때는 살아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얘기를 좀더 좁힐 수 있었다. 뼈조각에 나타난 것은 중독사와 질식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청색이다. 목을 매단 후 독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필경은 중독된 후 목이 달렸을 것이다.

시장에도 목을 매달 때 목 언저리에 두 곳의 상흔이 발견 되었는데 그것은 줄(선)이나 끈이라 했다. 그것으로 보면 다른 곳에서 교살(絞殺)되거나 액살(縊殺) 됐다고 볼 수 없었다.

문제는 ‘독물의 중독’이었다. 누군가가 고씨의 며느리를 목조르기 위해서는 그녀가 완전히 혼절된 상태여야 했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한양으로 돌아온 장율하는 상사동의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이참판 댁으로 통하는 이씨 일문은 백여년 저쪽만 해도 살림이 통통했다. 참판 벼슬은 백년도 훨씬 전에 얻었지만 도성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일대에 녹전(祿田)으로 받은 토지가 수백 석 지기니 그의 집안을 공대해 이참판댁으로 불러오고 있었다.

누대로 이 집안 남정네들은 명이 짧은 게 흠이었다. 그래서 1백여년 전엔 이름난 풍수쟁이를 불러 지금의 상사동에 터를 내렸다. 터를 내렸다는 것은 그곳이 거북형의 집터라는 의미다.

집 문앞에 이르러 육중한 대문을 올려다 보며 대문 위에 붙은 현판을 장율하가 소리 내어 읽었다.

“귀령학수(龜齡鶴壽)라! 거북이나 학처럼 오래 살고 싶다는 말이렷다!”

이곳에 오기 전 이현감에게 얻은 정보는 이씨 집안은 풍수법으로 ‘거북꼬리형(龜尾形)’이라 했다. 거북은 수명이 길고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살기에 신선한 존재로 여겼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금와왕의 군사들에게 쫓겨 도망칠 때 다리를 놓아준 신의 사자가 거북이었다.

거북은 하늘의 뜻을 점치는 예조(豫兆;예언)의 동물이다. 금 거북은 하늘에 사는 영물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해 만물을 낳는다. 거북이가 황토 진흙에 빠지면(金龜沒泥) 오행에 이르는 토생금(土生金)이 되어 땅속의 기운을 더욱 힘차게 빨아들인다. 부귀와 장수를 보장받을 수 있으니 집터로서는 더없이 좋은 자리였다.

육중한 대문에 붙은 둥근 고리를 두들기자 기척을 울리며 스물 안팎의 처녀가 문을 열었다. 먼저 주인부터 찾았다.

“나으리께선 마님과 몸채에 계십니다. 긴한 얘기인 것 같아 시각이 지체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어찌 할까요. 잠시 기다리겠어요?”

“아닐세. 볼 일은 다른 곳에 있으니 그럴 필요 없네. 한데, 아씨 방은 어딘가?”

“아씨 방이라니오?”

“아하 내가 실언 했구만. 죽은 지 세 해나 되는 사람의 방을 찾고 있으니 말일세. 나는 죽은 아씨의 오라비가 격쟁(擊錚) 하여 경위원에서 나온 장순검일세. 자네가 아씨 방으로 안내하게!”

예전에는 풍광 좋은 별당으로 보였음직한 그곳에는 해묵은 건물이 서 있었다. 손질을 하지 않은 탓에 세 해가 지났을 뿐인데도 지붕과 벽은 폐가(廢家)나 다름없었다. 다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용머리에 거북 등’모양의 주춧돌과 거북 모양의 맷돌이 장독대 곁에 놓여 있었다.

사월이라는 계집이 이곳에 온 것은 거의 세 해가 다 되어 가지만 자신이 왔을 때도 저런 모양이었고, 그때부터 이곳 출입을 삼갔다고 묻지도 않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아씨가 목을 매단 곳은 바로 저곳이에요.”

사월이가 가리킨 곳은 별당에서 고작 열대여섯 자(尺) 거리에 있는 일종의 헛간이었다. 그곳은 다섯 평 남짓으로 보였는데 집안에서 쓰는 허드레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며느리 김씨가 목을 매단 대들보는 아래쪽에서 보면 3분의 2쯤의 위치에서 길게 뻗어 있었다. 높이는 잘 해야 다섯 자(尺) 정도였는데 사다리가 없다면 혼자서 끈을 걸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시장(屍帳;검시 기록)에 기록된 것으로 보면, 며느리 김씨는 삼끈을  걸었다고 쓰여 있었다.

사다리를 받치고 위로 올라가 보니 줄을 걸었던 자리는 미세하나마 흔적이 두 가닥 정도 남아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강제로 목을 매달 때는 요동칠 것이고, 그로 인해 줄을 걸었던 자리는 몇군데 긁힌 흔적을 남긴다. 이것은 목의 흔적도 마찬가지다. 아래로 내려오자 다인이 물었다.

“장순검님, 긁힌 자국이 하납니까?”

“둘이다. 하나면 목을 매달기 전 죽은 것으로 본다만 흔적이 둘이니 목을 걸고도 살아 있었다는 얘기다. 죽을 각오로 목을 매달았다면 크게 요동칠 일은 아니다만, 사대부가의 아낙이 자진할 생각이라면 자신의 방에서 일을 치르지 않더냐. 김씨 방을 보아야겠다. 따라 오너라!”

그러나 김씨 방엔 들어갈 수 없었다. 출입문에는 큼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물고기 장식이었다.

사월이에게 자물쇠를 가져오게 한 후 끊겼던 얘기를 장율하는 이어나갔다.

물고기 장식을 쓰는 건 도둑을 예방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 선현들은 물고기가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기 때문에 재물이 넉넉한 집안에서는 물고기 자물쇠를 만들어 채웠다. 예고 없이 밀어닥치는 도둑을 예방하기 위해 잠을 자지않은 파수꾼은 물고기라 믿었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물고기 자물쇠가 주는 느낌은 이상한 마음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다인은 그런 것보다 집안에 있는 여러 형태의 물건에 대해 흥미를 일으켰다. 맷돌을 비롯하여 거북 등의 주춧돌, 솟을 대문과 좌우 행랑이 여느 집에서 볼 수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두 분께선 사랑채로 드시라고 합니다.”

열쇠를 가지러 간 사월이가 돌아와서 하는 말은 그것이었다. 그녀는 앞서 걸어갔다. 사랑채에 들어서자 스물일곱쯤으로 뵈는 사내가 수인사를 건넸다.

“우리 집을 찾아주셨는데 어머니와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저는 이창배(李彰培)라고 합니다. 혈육이라곤 혼자 뿐이니 집안이 몹시 적적합니다. 그래 무슨 일로 나오셨습니까. 들리는 소문엔 자진한 내자의 오라비가 격쟁(擊錚) 하여 재 조사를 청구했다 들었습니다만···. 그리한 이유가 무어랍니까? 아무리 우리 집안에 서운함이 있기로서니 가라앉은 마음을 다시 충돌시킬 이유가 뭐랍니까? 지금이라도 취소를 시켰으면 합니다만,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고···, 어떻습니까. 과연 내자의 자진에 의심 갈만한 흔적이라도 나타났습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에 온 게 아닙니다. 일단 꽹과리를 쳐 격쟁을 신청했으니 어떻게든 마무리는 지어야지요. 부인께서 자진했을 때 시장을 비롯해 검안(檢案)에 나타난 기록이 사실인지의 유무만 살피면 제 소임은 끝 납니다.”

“그렇군요. 내자의 오라비가 격쟁을 했으니 크나큰 일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두 분은 꼭 별당에 들어가겠습니까? 내자가 죽은 뒤 그 방에 있는 망자의 물건은 불태워버렸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날 일도 없으니 놓아둘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더욱이 제가 젊은 나이에 혼자 살 수 없어 아는 분의 조카(姪女)와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 방을 보러 오셨으니 보긴 보셔야지요?”

“가는 길은 압니다. 자물쇠나 주십시오.”

이창배는 문갑에서 열쇠를 꺼내 건네며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비록 이승을 떠난 사람입니다만, 한때는 나와 살을 맞댄 내잡니다. 이승에 여한이 있으면 깊은 밤 찾아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한 번도 이놈의 꿈길을 찾아오지 않으니 이승의 미련은 없는 모양입니다. 그렇다 해도···, 거기 있던 것들은 내 손으로 처리하도록 함부로 건들진 말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