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김도형을 돌려보내고 이형갑은 형방(刑房)을 불러 세 해 전의 시장을 찾아 대령시켰다. 또한 또출(又出)이에게 말을 주어 한 통의 서찰을 경위원으로 띄웠다.

사실 격쟁이라는 것은 이유있는 항변이다. 이런 항변은 조선 왕조 초기에 명목상으로 시행된 신문고(申聞鼓)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었다. 힘이 없고 나약한 백성으로서는 재조사를 청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이러한 격쟁은 자손이 조상을 위해, 처가 남편을 위해, 동생이 형을 위해, 종이 주인을 위해 왕이나 관장이 거동하는 길이나 관아의 문 앞에서 꽹과리나 징을 두들겨 탄원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러나 사소한 일로 격쟁하거나 마을 사람들이 수령을 유임시키고자 격쟁하는 것은 장(杖) 일백 대에 처하는 것이 <속대전>의 법제화였다. 이것이 점차 조금씩 수정돼 나가다가 정조 때엔 ‘위외격쟁추문(衛外擊錚推問)’의 법을 만들어 함부로 궁에 들어와 격쟁하는 것을 엄벌에 처했다.

이형갑은 해묵은 두루마리의 끈을 풀고 조사에 참여했던 전임현감 이구서(李鳩瑞)의 시장기록을 살폈다. 당시 참고인으로 나섰던 동보당(東寶堂) 주인 최씨와 이씨 집안의 시어머니 고씨(高氏)의 진술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장을 열자 앞자리엔 목을 매달 때 나타나는 증상이 쓰여 있었다. 그것을 근거로 이구서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타살의 근거를 찾기 위해 갯버들 나무 껍질로 상처 부위를 비롯하여 온 몸을 덮었으나 구타를 위조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은 검시의 기본이었다. 이형갑의 뇌리엔 당시의 정경이 되살아났다. 위장으로 살인사건을 포장할 경우 일종의 타물(他物;날붙이가 아닌 도구)로 살해하였다면 당연히 범인은 드러나지 않도록 위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장술의 하나가 ‘갯버들 나무 껍질’이었다.

누군가가 묵직한 물건으로 타격을 가해 살해하였다면 상처의 흔적은 당연히 푸르고 붉게 나타난다. 이것을 위장하기 위해 갯버들 나무껍질을 덮어 두면 상흔은 순식간에 짓무르고 상한다. 더구나 색깔이 검게 변하므로 구타를 당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이유로 전임 현감 이구서가 남긴 시장에는, ‘손으로 만져보고 부어올랐다거나 단단하지 않았으므로’ 갯버들 나무의 껍질을 이용한 위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고 적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목에는 두 가닥의 상흔이 있기는 하나 같은 줄(선)에 의한 흔적이고 상처 부위를 닦아냈어도 다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죽음에는 당연히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정확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며느리가 외간 남자를 들였다는 걸 본 사람은 시어머니 고씨뿐이고 시장엔 그런 진술이 있었다.

<집안을 이끌어갈 아들은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집에 와야 했지만 산세(山勢)가 험해 대과 공부를 마칠 때까지 그곳에 눌러 있을 생각이었어요. 그러니 홀로 남은 며느리는 매일 독수공방을 했었지요.

한번은 측간에 가려고 방을 나서는 데 시커먼 그림자가 며느리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자식이 집을 비운 사이 일어난 일이니 못본척 하다가 이레 전엔 꾸중을 좀 했어요. 그래서인지 며느리는 문밖출입을 삼가고 조용히 지내기에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이렇듯 목을 매달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주검을 살피면 상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목뿐이었다고 적고 있었다. 전임 현감이 목의 상처를 유심히 살핀 것은 그것이 두 가지의 다른 상처인가를 분별해 내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쓰는 방법이 감초즙(甘草汁)이었다. 이것으로 목 주위를 닦아냈으나 타살을 의심할만한 증거는 없었다.

서안(書案;앉은뱅이 책상) 위에 놓인 ‘비 피’라는 하나후다를 내려다보며 이형갑은 고개를 외로 저었다. 동보당 최의원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댁 며느리는 가끔 강정과 강장에 좋은 약재를 구하려 왔었습니다만 무엇에 쓰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물건을 구하러 온 날짜의 장부가 있고 보니 그 말은 신뢰가 있었다. 이렇듯 시장을 열었어도 별다른 점을 찾지 못했으나 눈 앞에 있는 ‘비 피’의 문양인 하나후다는 그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 물건이 왜 무덤 속에서 나왔지?"

생각하다보니 얼핏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환한 햇살이 눈부시게 발치 아래 머물러 있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그의 머리 위로 낯익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현감께서 소인을 부른 게 이 물건 때문인가?”

장율하(張栗昰)였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주유천하 하다가 지리산 피아골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동문수학하던 친구가 경위원(警衛院)에 순검으로 있다고 귀띔했었다. 그의 곁에는 목화송이 같은 하얀 눈송이 꽃을 패랭이에 꽂은 처녀가 서 있었다. 다모 다인(多仁)이었다. 눈인사를 나눈 후 장율하는,

“자, 현장으로 가세. 안내할 항인(行人)은 나와 있겠지? 다인도 따라 나서거라!”

정오가 지나 도착한 현장은 서동사 뒤편이었다. 햇살이 잘 든 곳이라 비가 내렸는데도 무덤 안의 물기는 말라 있었다. 주검을 덮은 풀더미를 들어내자 이미 살이 도망간 뼈 곁에 군데군데 삭지 않은 천조각이 있었다. 항인으로 동행한 또출(又出)이가 잔설명을 붙였다.

“이곳은 해가 뜨는 곳이라 풍수쟁이가 엄지손가락을 세우던 곳입니다. 자리가 음습하면 원귀가 되어 이승을 떠돈다구요. 그 사람들이 극구 이 자릴 권했습니다.”

광중(壙中;시신을 묻은 구덩이)을 살피던 장율하의 큰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중요한 단서를 찾았을 때 늘 해오던 버릇이었다.

“다인아, 여길 보아라. 이 주검의 하복부 위치에 무엇이 있느냐?”

“글쎄요. 일종의 태(胎) 같은 데요.”

“태라···. 이것을 보니 무엇이 떠오르느냐?”

“소인의 생각으론, 이 여인은 죽기 전 임신 중이었을 듯 싶습니다. 목을 맸거나(自縊), 목졸림을 당했거나 그 당시 받은 충격으로 몸에서 태가 쏟아졌습니다.

나으리, <오장론(五臟論)>에 의하면, 태는 1개월이면 이슬이 둥글게 맺힌 듯하고, 2개월이면 복숭아꽃과 같고, 3개월이면 남녀가 구분되며, 4개월이면 형상이 갖춰지고, 5개월이면 근골이 이루어지고, 6개월이면 모발이 난다고 했습니다.

소인이 쏟아진 태 주변을 살펴보니 머리카락 흔적이 있으니 이 여인은 분명 아이를 잉태한 듯 싶습니다.”

물론 다인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뱃속에 든 아이가 7개월에 오른손을 움직이면 남자니 어머니의 배 좌측에 자리 잡고, 8개월에 왼손을 움직이면 여자이니 어머니의 배 우측에 자리한다. 9개월에 세 번 몸을 뒤집고, 10개월이면 배 안에 가득하게 된다.

그러나 낙태를 하였다면 핏덩이 한 조각이고 뱃속에서 나온 후 여러 날 지났다면 그것은 문드러져 오수(惡水)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이곳에 있는 태의 흔적은 예전엔 머리 · 입 · 눈 · 코 · 손 · 손톱 등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었다는 얘기다.

장율하의 물음이 다시 날아갔다.

“이번엔 뼈를 살펴라. 무슨 색깔을 띠느냐?”

“검푸르다 할 수 있으나 제두(臍肚;배꼽) 근처엔 청색을 이루고 있습니다.”

“청색이라면···, 어떤 일을 추정되느냐?”

“독살입니다.”

“그 뿐이냐?”

다인이 뭉그적거리자 물줄기처럼 검안(檢案)이 쏟아졌다.

“청색을 띠는 것은 질식사의 경우 일어난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이란 의서엔 예로부터 의원이 환자의 병증을 살필 때 안형찰색(顔形察色)이라 하여 색에 몹시 민감하였다. 이러한 색깔 가운데 청색은 거의 질식사로 인한 상흔이다.

고씨의 며느리가 청색 계통으로 안색이 푸르렀어도 초검관이나 복검관이 쉬이 넘어간 것은 스스로의 죄를 깨닫고 목을 매달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지은 죄가 있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뼈조각이 말하고 있었다. 청색 계통은 반드시 질식사뿐만이 아니었다. 중독사에도 나타났다. 눈앞의 주검처럼 살(肉)이 도망가고 뼈만 남았다 해도 ‘옅은 검푸른 색’이 남아 있으면 중독사였다.

‘그렇다면?’

중독된 현상이 보이고 목을 매달았다면 당연히 타살이다. 독물을 사용할 경우, 목을 매단 후 독을 사용했다면 주검 자체가 황백색을 띠므로 금방 알 수 있다. 즉, 질식사 후 목을 매달았다는 결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