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원은 그제야 여인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장안에 이름을 날렸던 것은 불량품을 달고 다니는 사내들의 잠지를 수리해 준 전력이었다. 그 소문을 듣고 여인이 자신을 찾았다는 것은 분명 그와 비슷한 고민일 것 같았다.

“점쟁이 말에 의하면, 머잖아 내가 시집을 간다는 것일세. 그렇다보니 걱정이 앞서지 뭔가. 이십여 년 동안 한 번도 사용 하지 않았는데 시집간 첫날밤에 소박을 맞을까 걱정이 들구···.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나와 일을 치룬 후 말하기를, ‘자넨 문이 너무 넓어 재미가 없단 말이야’ 하고 놀리길 잘 했으니 그런 이유로 쫓겨날지 모르는 일이잖은가.”

“그러니까 마님께선, 문을 좀 좁게 할 수 있느냐 그걸 물으시는 것입니까?”

그제야 여인은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며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을 알게 되면 처방은 금방 나오기 마련이다.

“여인네 몸으로 자신의 문(門)에 대해 고민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시생이 공부한 <옥방지요>라는 책에 의하면, 여인의 대문이 넓고 휑할 때는 유황과 원지(遠志)를 가루로 내어 가제주머니에 넣은 후 질내에 넣으면 수축이 되어 좁아집니다. 제가 알기론 20일 남짓이면 시집 안간 처녀와 같은 몸이 됩니다.”

여인은 즐거운 낯으로 그 처방을 받아들여 다음 날부터 시행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몸이 가뿐해지고 몸이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일단 처방법 대로 약재를 분말하여 의원의 말대로 시술을 했으나 그것이 잘 됐는지 어쨌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의 치료를 확인시켜 줄 사내를 구해 달랠까 어쩔까를 망설였는데 최의원이 자신의 능력을 내비쳤다.

“저의 나이도 마님과 비슷한 마흔 어림입니다. 젊었을 적엔 친구들과 어울려 음란서생(淫亂書生)이란 모임에 들어가 대갓집 마님을 찾아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곤 했었지요. 그때는 혈기가 방장하여 오로지 힘으로 해결했습니다만, 지금은 여인네가 원하는 것을 기술로 채워줍니다. 그러니 사람을 구할 양이면 소인을 한 번 써보시지요.”

과연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최의원의 솜씨는 탄성을 지를만하여 마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하루하루가 지나는 동안 벌써 세월은 3년을 훌쩍 넘겼고, 그 동안 시집을 왔던 이댁 며느리는 혼인한 지 여섯 달 만에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이유로 목을 매(自縊) 죽고 말았다. 그렇다보니 아들은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술과 계집과 도박으로 난장판에서 세월을 보냈다.

둘째 날 - 격쟁(擊錚)이 일어나다

회현동에 살던 김진사는 시집간 딸아이가 자살하자 외가가 있는 용인으로 이사했다. 그곳 서봉사에 딸아이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명부전에 연등(練燈) 하고 주검은 해가 잘 비치는 양지녘에 묻어주었다.

추석이 멀지않은 어느 날, 김진사의 아들 도형(陶衡)이 꿈에  치포관(緇布冠)을 쓴 점쟁이가 나타나 흔들어 깨웠다.

“이보게, 어서 일어나게. 날씨가 몹시 사납네. 마른하늘에서  천둥이 울고 번개가 치지 않는가. 누이 무덤으로 가면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어서 가게. 비가 쏟아지면 그곳에 있는 흔적들이 사라질 수 있다니까!”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지만, 워낙 겁이 많은 도형은 집에서 일 하는 머슴 한 사람과 급히 누이 무덤이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시집 간 이씨 집안에선 부정을 저지르고 목숨을 끊었다 하여 무덤 쓰기를 거부해 도형은 용인으로 누이의 주검을 가져와 무덤을 썼었다.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어둑 새벽 용인 관아를 찾아가 꽹과리를 두들기며 격쟁(擊錚;재 조사)을 신청한 것이다.

“깨갱깨갱깨깽깽!”

소리는 어둠을 찢으며 퍼져나갔다. 대다수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며 하품을 날릴 시각이라 늦게 잠이 든 협문(夾門)지기 또출(又出)이가 선하품 날리며 구시렁댔다.

“와따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저 놈들은 잠도 안 자나. 뭔 일로 관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꽹과릴 치고 지랄들이람!”

요란한 꽹과리 소리에 동료인 듯한 사내 역시 밖으로 목을 빼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문 안에서 기척을 보이자 도형은 목청을 돋웠다.

“사또! 누이의 한을 풀어주시오! 억울 하게 죽은 내 누이의 한을 풀어주시오!”

“아니 저 자는 김도형이 아닌가. 누이의 한이라니? 몇해 전에 죽은 누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기라도 했남?”

간밤에 이상한 꿈길을 헤메다 겨우 잠이든 용인 현감 이형갑(李炯甲)은 어지러운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끼며 괭과리 치는 사내를 데려오게 했다.

“무슨 이유로 관문을 열기도 전 소란을 떠느냐?”

“사또! 저는 한양에서 살다 세 해 전 용인으로 이사를 온 김도형이란 잡니다. 세 해전, 제 누이가 이씨 일문에 시집을 갔는데 시집살이 여섯 달 만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평소 누이의 심성은 주위 사람들 말처럼 곱고 단정해 가까이 사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건 누이의 성품을 입에 올렸습니다. 하온대 시집 간 지 여섯 달 만에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시어머니의 푸념을 못 참고 대들보에 목을 매 자진(自盡)하였다는 소식에 부모님은 낙담 끝에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소인도 화를 삭이지 못해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용인 현감 이형갑은 사내의 얘기를 듣다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부임했을 때, 유지들과 자리를 같이해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그때 한양에서 왔다는 고절한 선비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었다. 나중에 사연을 알아보니 그가 격쟁(擊錚)을 벌이는 김도형의 부친이었다. 현감은 상대의 말을 끊었다.

“네 누이의 죽음은 내가 이곳에 부임하기 전의 일이다. 전임 사또께서 세세히 조사해 시장(屍帳;검시 기록)을 작성하였으나 타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또한 이씨 일문에서는 며느리의 행태에 대해 여러 말이 있었으니 첫째는 아이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행실이 바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 것을 전연 모를 리 없는 네가, 이렇듯 꽹과리를 울리며 탄원하는 격쟁(擊錚)을 하고 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만?”

“그러하옵니다 사또!”

“들어오너라.”

김도형은 관아 안으로 들어가 일곱 자 쯤 떨어진 대청 마루에 부복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을 것 같아 이형갑이 배려해준 일이었다.

이형갑은 품속에서 무명천에 쌓인 칙칙한 물건을 꺼내놓았다. 그것은 도박꾼들이 쓰는 하나후다(はなぷだ;花札)의 하나로 12월을 뜻하는 ‘비 피’였다. 김도형이 목소리를 높였다.

“사또! 이것은 도박꾼들이 애용하는 하나후다(花札)입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왜놈들 노리개를 ‘꽃들의 전쟁’인 화투(花鬪)라 부르는데, 12월을 뜻하는 ‘비 피’의 문양은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과 방안의 커튼, 문짝 등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쪽문으로 라쇼몬(羅生門)이라 일컬어 집니다. 더구나 ‘비 피’의 뒤엔 ‘봄 춘(春)’자가 써 있고 그 아래 일자가 적혔는데 그것은 누이가 죽은 후 닷새가 지난 후였습니다. 누군가 봉분을 파헤쳐 그 물건을 놓아둔 것이 분명합니다!”

김도형의 말은 계속되었다.

“누군가 누이의 죽음을 비웃고 그런 물건을 무덤 안에 넣어둔 것입니다. 사또! 다시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누이를 살해하고 대들보에 목을 매단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하나후다(花札)가 들어있겠습니까!”

“네 이놈! 어디서 방자한 수작을 떠느냐! 죽은 자 곁에 있다고 모두 살인의 도구이고 그것들이 망자(亡者)를 비웃는다 생각하느냐? 네놈의 누이가 자진했을 당시 모든 조사가 이루어졌거늘 무덤에서 니온 지저분한 물건 하나로 어찌 재조사를 한단 말이냐? 허나, 네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껏 네놈 주변에 일어난 일이 범상치 않으니 세 해 전 시장(屍帳;검시 기록)을 살펴보마. 뭣 하나 이상이 없을 때엔 네놈의 볼기가 거덜이 날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