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점쟁이(卦姑) 

‘삼고육파(三姑六婆)’의 두 번째 얘기는 ‘점쟁이(卦姑)’다. 본래 이 얘긴 별순검 시리즈를 고어투로 써야 ‘격(格)’이 맞지만 읽는 이들이 표현자체를 이해하기 부담스러워하므로  좀 더 쉽게 쓰고자 방법을 바꾸었다. 그렇다 보니 <철경록>의 작자가 주장하는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첫째 날 - 작은 것을 길게 늘이는 기술

명례동(明禮洞;명동)은 명례방(明禮坊) · 명례방골이라 하였다가 ‘명동’이라 줄여 쓰고 있다. 일제 시대엔 명치정(明治町)이라 하였는데 글자 그대로 ‘서울에서 가장 밝고 아름다운 곳’이란 뜻인 명동으로 굳어졌다. 그러니까 대한제국 제1의 번화가이며 사치와 유행의 1번지라는 말이 무색치 않았지만, 다른 말론 ‘예술과 사랑의 거리’라느니 ‘여자들의 거리’라는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곳 명례동에 자리 잡은 동보당(東寶堂)이란 한약방은 조선의 고관대작을 비롯해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의 몸을 잘 돌본 탓에 그런 대로 이름이 도성 안에 알려지고, 특히 주인 최원기(崔元基)는 의학에 조예가 깊어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일반의학은 아니었고, 거의가 사내의 정력 강정에 의한 처방이나 부부간의 화합을 원만하게 하는 강장과 강정비약이 태반이었기에 그런 소문을 들은 남녀들이 심심찮게 찾아들었다.

오늘의 손님은 시중에서 친일파로 손가락질을 받던 전씨(全氏) 성을 쓰는 위인의 아들인데 제 어머니 손에 이끌러 온 스물 셋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움을 타고 있었다.

“제가 아들놈과 여길 온 것은 큰 맘을 먹었습니다. 두서너 달 후면 선을 보아야 하는데 자식의 몸이 워낙 짜잔해 어떻게 내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총각으로 살 게 할 수도 없어 큰 맘을 먹고 찾아왔습니다.”

생긴 것으로 봐선 크게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아낙이 털어놓은 얘기는 심각했다. 그러니까 아들 녀석이 다섯 살 때, 툇마루에서 자고 있는데 이를 갈기 시작한 강아지가 아들 녀석의 잠지를 핥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어린애지만 잠지가 제법 꼬들꼬들해지자 강아지는 사정없이 물고 흔들어 버렸다. 아이는 죽는다고 강글어졌는데, 다행히 잠지는 토막나지 않고 껍질만 벗겨진 상태였다.

병원을 찾아가 치료하고 지금까지 지내왔는데, 문제는 녀석의 잠지였다. 어찌된 게 길이는 늘어나지 않고 두께만 왕성해졌다. 이런 모양을 녀석의 아비가 살핀 후 이곳 동보당으로 아내와 함께 보내 치료할 수 있는 지 여부를 물어본 것이다. 최의원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사내의 잠지는 나이 열일곱이면 발육이 멈춥니다. 어떤 사람은 스물 한 둘 때에도 성장한다고 합니다만, 대개 열대여섯이면 성장을 멈춥니다. 아드님의 경우 그것을 강제로 늘일 수 있는 약이 있는 건 아니고 일본의 의학서적 <의심방(醫心方)>을 참조하면 방법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최의원이 이렇게 말했다면 방법이 있다고 믿어서인지 여인은 선뜻 쌀 열가마니의 값을 내놓고 방을 나갔다. 청년의 아랫도리를 벗긴 후 희한하게 생긴 물건을 요모저모로 살피고, 핀셋으로 잡아 몇 번 흔들어 보고서야 처방전을 썼다.

“자네도 얼마 안 있으면 장가를 가야 하니 어른이나 마찬가질세. 그래서 하는 얘기네만, 남녀 간의 문제는 잠지의 길고 짧음에 있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하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사내의 잠지가 길고 오동통해야 한다는 묘한 말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방사의 바른 지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니네. 그런데도 자네 어머니 같은 분이 의원을 찾아와 힘 없는 말을 하고 돌아갔으니 아무래도 자네의 잠지를 표준 이상으로 크고 오동통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네.”

최의원이 내린 첫 번째 비방은 <옥방지요(玉房指要)>였다.

중국의 수(隋)나라 때 양상선(楊上善)이라는 의원이 지은 것인데 그런대로 믿음이 가는 처방법이었다. 백자인을 비롯하여 백렴 · 백출 · 계심 · 부자를 섞어 10일간 사용하는 것이 기본 처방법이었다.

이것을 10일 동안 탕약으로 지어 복용하게 한 후, 다음으로 내린 처방이 <옥방비결(玉房秘訣)>이었다.

이 처방 역시 수나라 때 것으로 지은이는 훗날 약왕(藥王)으로 이름을 날린 손사막(孫思邈)이었다.

그의 처방은 세 가지 약재를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산초(山椒)와 세신(細辛) · 육종용(肉蓗蓉)이었다. 세 가지를 같은 분량으로 만들어 섞은 후 가루를 낸 뒤 개 쓸개 속에 넣었다가 천장에 30일간 두었다가 이것으로 음경을 문지르면 1치쯤 길어났다.

이것 역시 10일 간의 처방법이었다. 나머지 10일은 변동현(邊洞玄)이란 여도사가 쓴 <동현자(洞玄子)> 비방이다. 육종용과 해조(海藻)를 분말해 정월에 흰 개의 쓸개 즙으로 개어 음경에 세 번 바르고 새벽에 길은 물로 씻어내면 3치가 길어났다.

이렇게 하여 고민에 빠져 느그적대던 젊은이의 잠지가 정상적인 길이로 돌아오자 동보당(東寶堂)은 사내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은근 짭잘한 의원으로 소문났다. 이것은 최의원이 자신의 솜씨를 널리 알리기 위해 <동보당>이란 간판을 내건 직후 처방했기 때문에 3년 넘게 부부간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는 용한 곳으로 소문났었다.

어느 날 최의원은 사월이란 계집아이의 방문을 받았다. 생긴 것으로 보면 얼굴은 반반했지만 입고 있는 옷가지를 보아하니 분명 어느 집에서 심부름 하거나 부엌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저기···, 저의 집 마님께서 최의원님을 좀 모셔오라는 말씀이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 아무래도 바쁘실 것 같아 의원님의 일이 끝나는 대로 모셔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누구와 약속이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선 전연 관심이 없고 그 말만을 하고 문가에 멀뚱하게 서 있으니 따져봤자 입만 아플 것 같아 대충 손님을 치료하고 왕진가방을 든 채 따라 나섰다.

사월이란 계집이 안내한 곳은 상사동(相思洞)이었다. 상사동은 서울에 두 곳 있었는데 한 곳은 동묘(東廟)의 동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종로구 청진동과 종로 1가 사이에 있는 상삿골이다. 지금의 종로구청 자리는 조선왕조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집터인데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이방원(태종)에게 피살된 후 그곳에 사복시(司僕寺)라는 관청을 두어 말을 기르게 했다.

상삿골이란 명칭은 사복시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기르는 말 중에 교미할 때가 된 말을 상사마(相思馬)라 하는데, 이 상사마가 한 번 암내를 맡고 나면 길길이 날뛰었다. 이때 말을 기르는 관리들은 상사마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어 붙잡았으므로 동네를 상삿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월이가 안내한 곳은 바로 이곳 상삿골의 이판서 집안이었다. 몸채가 있는 곳으로 안내되어 방에 들어서자 마흔이 약간 넘어 보이는 여인이 보료에 앉았다가 웃는 낯으로 맞이했다.

“나는 아들 하나를 유복자로 두고 홀로 이십여 년을 살아왔다네. 남편은 나라 안에 난리가 일어나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송장이 되어 돌아왔었네. 죽으려고 마음 먹고 일을 저지르려는 데 뱃속에서 아이가 뛰놀지 뭔가. 살아있는 목숨이 뱃속에 있으니 내 목숨도 내 뜻대로 하질 못하고 이럭저럭 이십여년을 버텨왔네.

다행히 아들은 홀로 된 어미 말을 좇아 학문에 정진한 탓에 초시(初試)를 쉽게 통과해 장차 대과(大科)를 보기 위해 가까운 절을 찾아가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다네. 작년엔 어진 선비들이 모여 산다는 회현동(會賢洞) 김진사님 댁과 인연을 맺어 그 댁 따님을 며느리로 들였으니 이만 하면 우리 집도 아무 걱정 없을 것 같네.”

최의원은 상대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를 몰라 일단 상대방의 말에 추임새부터 놓았다.

“그렇군요.”

“그런데 말일세, 이레 전 우리 집에 용하다는 점쟁이가 들렸지 뭔가. 점쟁이가 요모저모로 식구들 운수를 헤아리고 손가락을 구부려 육갑을 짚는다고 부산을 떨더니 내게 이상한 말을 하지 뭔가.”

“?···.”

“한시라도 빨리 의원을 만나 아픈 곳을 말하라지 않는가. 그 점쟁이는 파자선생(破字先生;글자를 쪼개 길흉을 알아보는 사람)이었는데 내게 글자 한 자를 쓰라 하여 내가 ‘핍(偪)’자를 쓰자 선생은 이런 노래를 부르더구만.”

찾아드는 밤의 어둠 속에 비로소 바람이 일어나누나

반딧불은 흘러가며 창기슭을 비추는 구나

뉘라서 알리 슬픈 내 심정을

연두빛 옷자락에 차가운 달만 비추이누나

“그러고 나서 글자 풀이를 했는데 ‘핍(偪)’ 자는 ‘곁 방(傍)’과 ‘부귀할 부(富)’를 반씩 합친 것이니 이것을 파자법으로 풀어내면 ‘행복을 다른 사람이 구했으니 장차 부귀를 도모할 수 있다(幸福傍人求 將來富可祈)’는 내용이었다네.

점쟁이가 돌아간 후 가만 생각해보니 ‘행복을 다른 사람이 구했다는 것’은 내가 잔걱정이 없어졌으니 개가(改嫁)라도 하게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득 불안한 마음이 밀려들더란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