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 세작(細作;첩보원)을 급파하다

경위원으로 돌아온 장율하 일행은 보고서를 작성한 후 연락을 받고 대기하고 있는 향운(香雲)이란 기녀를 만났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서 향기가 진동해 근처를 지나던 점쟁이가 경고했다는 미모가 빼어난 기녀였다.

“향기라는 건 자신이 지니고 태어나나 그것을 맡는 것은 다른 사람입니다. 또한 구름은, 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 없듯이 이 아이의 운수가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보는 것과 맡는 것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본인에겐 이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느 한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고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기녀(妓女)가 된다면 제 운수를 깎아먹는 짓은 아니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정한 이름이 향기 향(香)에 구름 운(雲)이었다.
그녀가 기방에 들어왔어도 함부로 몸을 굴리지 않았다. 기생엔 청등(靑燈)과 홍등(紅燈) 기생이 있었는데 청등 기생은 술을 마시고 몸을 팔았으나, 홍등 기생은 춤과 노래만을 불렀다. 그래서 항간에는 1품(品) 기생이라 했는데, 그러한 명칭에 걸맞게 그녀의 행동은 나름대로 ‘격’이 있었다.

그녀가 향아(香娥)라는 가명으로 공덕암을 찾은 것은 게이꼬가 극약을 먹고 목숨을 버린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홀로 산으로 간 게 아니고 종자(從子;하인) 두 명과 시중 드는 계집(婢子)을 대동하고 호화롭게 꾸민 가마를 타고 올라갔으니 일행들을 맞이하는 암자의 태도는 참으로 극진했다.
더구나 향아는 대갓집 첩실로 본색을 꾸미고 공덕암에 들어서는 즉시 일종의 ‘정성금’으로 백미 스무 가마를 내놓았으니 도인들의 기색이 훤히 밝아졌다. 그곳에서 서무 일을 본다는 스물이 못 되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빈도가 여기 온 것은 사흘쯤 됐습니다만, 여긴 참으로 영험한 곳입니다. 처음엔 이곳이 불문(佛門;불교)의 암자라 생각했는데 방안에 치장된 소상(塑像;흙으로 빚은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도교와 혼합된 것이란 생각입니다. 제가 알기로 이곳엔 세 분의 비구니가 계십니다. 나이래야 이제 스물을 넘긴 두 분과 암자의 주지 역할을 하는 혜인(惠仁) 스님인데 이 분들은 한결같이 여성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분들이 계시는 암자에 천자만손당(千子萬孫堂)이란 방이 아홉 개나 마련되어 있는지 그걸 모르겠습니다. 그 방에 들어갔다 돌아가면 어김없이 자식을 회임하여 끊어진 대를 잇게 되니 장안에 소문이 파다하게 깔렸습니다. 지금은 장안의 힘께나 쓰는 이들이 후원자가 되어 도와주니 그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 ‘뎅그렁!’ 종이 울렸다. 그러자 즐겁게 대화하거나 장난치거나 누워 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 처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암자에 온 손님들이 방안을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시각이었다.
향아를 천자만손당이라는 방에 안내하자 그녀를 따라온 일행들은 방안을 슬며시 엿보았다. 두 명의 종자, 이들은 장율하와 정문원이었다.

방안 구조는 특별한 게 없었다. 중앙에 3층으로 된 작은 단이 있고, 가장 아래쪽 단에 과일을 놓을 수 있고, 그 다음 단엔 붉은색 황촉을 꽂을 수 있는 촛대가 좌우에 있고, 중앙엔 장도릉(張道陵)이라는 도인의 모습을 빚은 소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 위쪽 단에는 조그만 나무 곽이 있는데 원하는 것을 적어 넣어두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이불과 요가 단초롭게 놓여 있고 윗켠엔 쇠로 만든 요강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뎅그렁!’ 종이 울리자 잠깐 열렸던 천자만손당의 모든 문이 닫히고 밖에 큼직한 물고기 자물쇠가 채워졌다.

“헤헤헤, 많은 사람들이 산문에 들어서면 풍경(風磬)을 봅니다. 풍경의 끝은 물고기가 매달려 있는데, 이것은 물고기가 잠을 자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민가에서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쌀 넣는 뒤주를 채우는 자물쇠도 물고기 형상이고 돈을 넣는 괘도 물고기 모양입니다. 그렇듯 물고기는 잠을 자지 않고 도둑을 지켜줍니다. 이곳 천자만손당에 들어간 분을 기다리는 손님들은 객당에 모여 영험이 내리기를 기원하십시오. 틀림없이 장선인(張仙人)께서 좋은 일을 내릴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객방으로 몰려가 열심히 기원하고 마음속으로 발원했다.

암자는 저녁 아홉시가 넘어서자 일체의 개인 행동이 통제되었다. 그들은 화장실에 갈 때에도 도인들의 안내를 받아 단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각이 점차 10시가 넘어서고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을 때, 방에 들어간 향아는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느라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거렸다.

‘명색이 기생인 내가 자식을 달라고 묘한 곳에 들어와 기원하고 있으니 누가 들어도 웃을 일이야. 경위원에서 부탁을 해와 따라나서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단 말이야. 이곳을 관리하는 것은 비구니 셋인데 그 자들이 무슨 일을 저지른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아니할 말로 그것들이 사내로 변신이라도 한다는 건가?’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한 일에 나섰다는 자책은, 갑자기 3층으로 된 단상이 ‘덜컥’대는 소리에 숨을 죽였다. 촛불을 껐지만 창밖에서 스며든 달빛에 드러난 것은 단상에서 올라온 시커먼 물체였다. 머리를 깎고 손에 염주를 들었지만 목소리만은 사내였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외로운 여인에게 아이를 점지해주는 칠성도인이다. 내 몸이 금강불괴인 것을 마다하고 여인네들을 위해 스스로 도인으로 내려앉았으니 그대는 나를 맞이할 차비를 하라.”

향아는 처음엔 놀랐으나 장난기가 도져 칠성도인이라는 자의 아랫도리를 슬쩍 건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하고 비대한 물건이었다.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물건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향아의 얼굴을 붉어졌다. 그 동안 기방에 있으면서 서너 번 사내를 받아들였다. 나름대로 풍류 놀이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힘깨나 쓰는 물건을 지니고 있었지만, 칠성도인이란 사내에 비하면 거의 게임이 안 되는 쪽이었다.

향아는 신방에 든 이팔처녀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온몸이 마구 떨리는 가운데 갈고리 같은 사내의 심벌을 만지자 그녀의 가슴이 숯불을 피운 듯 달아올랐다.

“정말 놀라울 만큼의 거룩한 것을 가지고 계시군요. 칠성도인이라고 그랬나요? 도인께서 보여주시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이토록 위대한 모습을 어느 누가 구경할 수 있겠어요. 그러고 보니 옛사람의 말이 떠오르는 군요. ’구하기 쉬운 것은 값없는 물건이오(易求無價寶), 얻기 어려운 것은 정든 님 마음(難得有心郞)이라 했는데 그 말이 어쩌면 이렇게 맞는 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고명한 도인을 만나지 못해 그런 말을 한 거 같애요.”

좁은 공간을 꽉 채운 못처럼 사내의 힘이 거칠게 찔러왔다. 슬금슬금 거문고를 타는 소리가 그녀의 내부를 진동시키더니 가락은 점점 빠르게 울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거문고 줄을 손바닥으로 누르는 듯 묘한 진동음이 그녀의 몸을 울렸다.

‘흐응!’

마치 사내의 움직임에 화답하는 소리가 향아에게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