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꼬(京子)’. 

그녀가 태어난 곳은 경도에서 머지않은 유게촌(弓朔村)으로 부모는 무축(巫祝;무속)에 뜻을 둔 집안이었다. 그러나 일반 무당들처럼 아무나 병치료를 위해 굿을 한다거나 제를 올리는 것은 아니었고, 제법 행세께나 하는 이들의 청빙이 있을 때 못이기는 척 다가가 신을 불러 길흉을 묻고 몸에 숨은 병마를 찾아냈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도가(道家)에 빠져 장도릉(張道陵)이란 선인을 섬기더니 십여년 수학 끝에 딸 하나를 점지 받았다. 게이꼬(京子)였다.

어느 날 그의 부친은 흙으로 빚은 소상(塑像)에 기도를 올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 멀리 쫓으려 애를 썼다. 개구리 녀석은 두 눈을 멀뚱거리며 사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더니 마치 약을 올리듯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녔다. 그녀의 아비는 무슨 생각에선 지 아랫도리를 까발리고 개구리를 향해 줄기차게 오줌줄기를 퍼부어댔다. 그런데 노출된 사내의 귀두(龜頭)에 개구리가 펄쩍 뛰어올라 물고 할퀴고 요사방란을 떨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아랫도리를 움켜쥐는 것도 잠시 귀두는 개구리의 독이 올라 무 뿌리처럼 부풀어 올랐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그 옛날 도경(道境)이라는 스님이 이렇게 거대한 물건을 지녔다는 말을 하면서 장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했지만, 살아 생전에 희망있는 일이 생긴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하나 뿐인 딸(게이꼬)을 동생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구로다는 조선에 오기 전 자신과 조카의 운수를 헤아려 보았다. 자신은 그런 대로 관운도 열리고 이름과 재물을 얻을 수 있었는데 게이꼬는 극과 극을 달렸다. 그녀의 나이 스물 하나가 되기 전에 사내를 알게 되면 좋은 일보다 흉악한 일이 닥친다는 점괘였다. 그것을 ‘살(煞)’이라 하였는데 일본에 있을 경우 한 해를 넘길 수 없다는 점쟁이의 경고에 조선 땅으로 건너오게 된 게 전말이었다. 구로다의 말이 무거웠다.

“우리 일본 황실에 전해 오는 성의학 서적에 <의심방(醫心方)>이란 것이 있네. 이 책에 의하면 여인의 몸을 등급으로 나눌 때 기준대가 되는 저울(稱)이 ‘정(鼎;솥)’이란 것이네. 처녀가 사내를 받아들일 나이와 시기, 그리고 그에 따른 여러 경우를 환산하여 등급으로 나타내는 것인데, 이 기준에 의하면 여인에겐 열두 가지가 있다 했네.”

즉, 여자로 태어나 마음에 드는 사내를 만나 혼인하든 동거를 하든 서로 사랑하게 됐을 때, 과연 그 여인이 남자의 몸에 어떤 이로움을 줄 수 있느냐였다. 도학(道學)이나 음양학(陰陽學), 또는 금단교(金丹敎)의 비기를 익히지 않았어도 기본적인 몸의 구조만으로 평가하는 열두 가지 상태는 뒤쪽으로부터 거슬러 올라서면 이런 내용이다.

열두 번째는 문이 협소하여 장창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 끝을 볼 수 없다는 것으로 대개 이런 문을 지닌 경운, 발육부전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사내에게 이로움을 준다는 ‘정(鼎;솥)’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정한 이치다.

그런가하면 첫 번째인 ‘용주(龍珠)’는 모든 구조가 협소하면서도 길고 깊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사내의 힘이 침입하면 마치 두 마리의 용이 구슬을 놓고 다투듯 질구 안쪽에 모인 힘이 구슬 같은 모양을 만들어 사내의 힘과 정면대결을 하듯 맞부딪친다. 그러므로 남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과 황홀경에 빠진다.

그러나 게이꼬는 ‘용주’는 아니었고 그 다음 단계인 ‘비룡(飛龍)’이었다. 성의학 교전엔 비룡에 대해 ‘날개’라는 호칭을 쓴다. 사내의 힘이 들어오면 좌우 질벽이 날개처럼 펄럭이며 요동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근육의 주름이 요동하면 사내는 즐거움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지르기 마련인데, 만약 상대방이 방중술을 배웠다면 어김없이 여인의 몸은 사내의 몸에 이로움을 주는 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얘기는 일본에 있을 때, 그것도 신체검사를 할 때 몸 안 구조를 보고 성의학 전문가가 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그 말을 전적으로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게이꼬의 나이  열여섯이 됐으니 그 방면의 전문가를 만나 훈련을 쌓는 것이 본인에겐 크게 이로울 것이라는 충고를 보내왔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선도에서는 ‘선택정기(選擇鼎器)’라는 것이 있네. 이것은 어느 때 쯤의 여자가 사내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지. 자네에게 몇 번 얘기했지만 ‘정(鼎)’이라는 건 자신의 상대를 삼을 이성을 가리키는 말이네. 이에 대해 대단한 연구를 한 장삼봉은 여성을 상중하의 세 등급으로 나누고 각각 나이를 대입해 구분해 놓았네.>

<삼봉단결>에 의하면, 하등은 오오(五五), 삼팔(三八), 삼칠(三七)의 수라 하였으니 나이로 보면 25세 · 24세 · 21세 쯤이 해당된다. 중등은 오사(五四), 이구(二九), 이팔(二八)의 수라 하였으니 나이는 20세 · 18세 · 16세가 해당된다.

특히 중등에 관해서는 ‘수경이촌(首經已忖) 미경산육(未經産育)’이라 덧붙여 있었다. 즉, 첫 번째 월경은 겪었지만 아직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을 뜻했다. 이런 여성이 사내에게 장생(長生)과 회춘(回春)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등에 해당하는 나이는 몇인가? 바로 칠칠(七七)이라는 열 넷이다.

조선에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남녀가 각별히 구분하여 자리를 함께 하지 않은 나이는 열네 살이었다. 이때를 성의학에서는 ‘홍상미판(鴻潒未判)’이란 오묘한 말로 표현한다. 월경이라는 기러기 발자국이 나타날 시기란 뜻이다.

성의학적인 의미로 보면 게이꼬는 나이 열여섯이니 중등에 해당됐지만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구비한 몸의 구조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눈썹이 맑고 눈이 빼어나며, 입술은 붉고 이가 유난히 하얗다’는 점이다. 성의학에서는 눈썹 · 눈 · 입술 · 치아 등이 거론되는데 이것을 고전적으로 말하면 미청(眉淸) · 목수(目秀) · 순홍(脣紅) · 치백(齒白)이었다.

미청이라는 것은 눈이 굵거나 가늘지 않고 마치 초승달 모양으로 꼬부장하다는 표현이다. 이런 모습이 사내 몸에 이로움을 준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미청 축에 들지 않는다 해도 상대를 할 수 있는 눈은 팔자 눈썹이다. 눈썹이 아래로 쳐진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게 목수(目秀)다. 눈이 크거나 작지 않고 눈동자가 또렷해 새까맣고 흰자위가 맑은 눈이다. 성의학에서 최고의 눈은 ‘하삼백안(下三白眼)’이라 부르는 눈동자가 위쪽으로 치우친 요염한 눈이다.

그런가 하면 순홍(脣紅)은 붉으레한 입술이다. 그렇다고 새빨간 순적(脣赤)의 입술은 아니다. 입술이 붉다는 건 건강의 상징이지만 그 색깔을 구분하면 홍색(紅色)의 붉은 입술이지, 검붉은 적색(赤色)은 아니다. 입술이 검붉다는 것은 사내에게 양기를 빼앗기면 심장마비를 일으키거나 복하사(腹下死)의 위험이 따른다.

마지막으로 이가 하얗다는 치백(齒白)이다. 이가 희고 치열이 고른 것은 양기를 듬뿍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이것은 신(腎)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게이꼬는 이러한 네 가지 조건에 부합된 훌륭한 몸을 지니고 있었는데 뭣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