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道姑)

  명(明)나라의 영향을 받은 조선 사람들은 <철경록(輟耕錄)>이란 책의 여파로 ‘사람의 집에 이것 하나라도 있으면 반드시 간도(姦盜)를 불러들인다’고 경고했다. 이른바 ‘삼고육파(三姑六婆)’다. 

 <철경록>의 저자가 굳이 아홉 부류를 분란의 싹으로 규정지은 것은 아무래도 세상의 쓴 맛 단맛을 모두 맛본 원흉으로 풀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홉 가지 부류 안에 ‘승려와 도사’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삼고 육파’의 첫 번째 얘기는 ‘도고(道姑)’로 지금부터 본격적인 투정여화가 시작된다.

   첫째 날 - 극약을 먹은 사체(死體)

서울의 동쪽을 막아주는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駱山)은 종로구와 동대문구, 성북구 경내에 있는 높이가 111미터에 이르는 산으로, 낙타 등처럼 산 모양이 생겼기에 붙여진 이름인데 서울 분지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인왕산에 대해 동쪽(좌)의 청룡에 해당하는 산이다.
 
  지금과는 달리 예전엔 이곳에 나무가 우거지고 물이 맑아 유명한 이름을 남겼으나 지금은 산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산등성엔 성벽만 남아 왠지 삭막한 느낌을 던져 준다. 헤아려보면 동대문 부근의 이화여대 부속병원이 낙산의 끝자락에 해당하는데 인종 임금 때 낙산 밑에 살았던 낙봉(駱峰) 신광한(申光漢)이란 시인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풍경을 노래하였다.

낙산에 푸른 소나무와 암석이 있어

바위로 진정하고 소나무로 절개를 삼았다네

시끄러운 아이들이 어찌 이것을 알랴만은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푸르고 바위는 바위 대로 섰더라

되짚어보면 조선 시대엔 도성 안 마을을 크게 나누어 낙산 밑을 동촌(東村), 북악산 기슭을 북촌(北村), 남산 아래 북쪽 지역을 남촌(南村)이라 하였고, 인왕산과 북악산 밑은 우대, 청계천 남쪽은 아래대라 불렀다. 양반 거주지 중에 우대를 제일로 꼽았다고 전한다.

  언제부턴가 낙산의 중간 어림에 암자가 들어서더니 은근히 공덕암(功德庵)이란 칭호가 생겨 제법 행세깨나 하는 서예가의 글이 현판으로 붙었다. 고작 두 칸 뿐인 암자는 어느새 열다섯 칸이 넘게 터를 넓히더니 급기야 영험한 곳으로 장안에 소문을 뿌려댔다.

  이곳엔 혜인(惠仁) · 혜진(惠眞) · 혜명(惠明)이라는 세 비구니가 머물렀는데 시시때때로 고관대작의 부인들을 비롯해 병약한 자, 죄를 턱없이 많이 지은 자,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네들이 이곳을 찾아와 대단한 효험을 보았다는 소문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 구로다(黑田) 경무사의 다급한 호출이 경위원에 떨어지자 장율하 일행이 비밀리에 파견됐다.

  “자네들을 부른 것은 다름 아니라 조카 때문이네.”

  구로다는 의기소침한 낯으로 이마에 어릿돋은 땀방울을 훔치며 나직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여인의 주검이 보고되면 경위원에서는 장율하와 다모 다인이 현장으로 달려가는 게 상례였기에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로다 경무사는 혹여 다른 사람이 들을 새라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다. 여인의 주검은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의 왕래를 특별히 차단시킬 이유가 없어 금역(禁域)을 설치하지 않았지만, 자신만은 조카의 주검을 보는 것이 달갑지 않아서인지 사체 곁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저희가 시장(屍帳)을 작성할 때까지 아래층에 계십시오.”

  구로다는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사체의 주인은 ‘게이꼬(京子)’였다. 일본에서는 기악(器樂)을 공부하다 워낙 몸이 약해 휴학한 상태였다. 하루를 지탱하기 위해 약봉지를 몸에 달고 살았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한눈에 보기에도 몸이 허약했다.
  그런 그녀의 나이는 고작 열여섯이었지만 구로다가 조선으로 발령나자 삼촌을 따라 경치좋은 곳을 찾아가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한 게 여섯 달 전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스스로 극약을 털어넣고 죽음을 자초한 이유가 뭔가?

  다인은 몸 안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준비해간 법물(法物;독극을 알아낼 수 있는 은비녀 등의 도구)을 입안에 찔러 넣었다. 인후(咽喉)에 찌른 은비녀는 순식간에 검게 변했고 항문에도 피가 쏟아진 흔적이 역력했으나 게이꼬의 배는 약간 부어오른 듯한 상태였다. 검험을 마친 다인이 약간 머뭇거렸다.

  “이 처녀는 금현(琴絃;여성의 음문 주위에 있는 미혈의 하나)이 무척 손상돼 있는데 지나친 교접(交接;성행위)으로 하복부 상처가 심합니다. 실제로 일반인들은 아무리 성행위를 한다 해도 취서(臭鼠;여성의 음문 주위의 쥐의 입 모양을 하는 부분)를 쓰는 게 보통인데 이 처녀는 지나치리만큼 금현이 손상당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도둑을 만나 봉변을 당했다고 보긴 어렵고 아마도 일정기간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이 처녀의 자살과 관계있는 일로 보입니다만···, 특별히 눈에 띄는 곳은 양쪽 손목인데 그곳을 강하게 누른 흔적이 있습니다.”

  발견된 유서에는 구로다 삼촌에게 누를 끼쳐 죄송하다는 것과 먼저 가는 것을 용서해 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으로 볼 때, 실연을 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지만 하복부의 상처가 깊은 것으로 볼 때 마음의 상처가 훨씬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형도(屍形圖)를 작성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구로다는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일을 비밀에 붙이고 싶었네만 게이꼬 자살이 그 아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네들을 불렀네. 이번 일은 자네들이 은밀히 조사해 주어야겠네.”

  구로다는 서랍 안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 장율하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게이꼬(京子)’에 관한 신상 자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