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 난행당한 여인의 주검

사내의 걸음걸이는 건들거렸다. 힘깨나 쓰는 장정들처럼 어깨를 떠억 벌리고 유세를 떠는 게 아니라 다리가 가는 대로 상체와 머리가 따라가듯 흔들흔들 걸었다. 이윽고 중문을 벗어나 오동나무가 있는 오른쪽 길로 접어들자 저만큼 별당의 불빛이 보였다.

화자허는 문 앞에 이르러 크흠 큼! 기침을 쏟으며 방안 동정을 살폈다. 의당 문이 열리며 들어오라는 신호가 떨어져야 하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뇌리 한쪽엔 별당에 있는 큰 며느리의 당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설혹 문밖에 서 있는 분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기침을 하여도 내색이 없을 때는 신발을 들고 조용히 들어오시면 됩니다. 방 문은 열려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화자허는 신발을 왼손에 들고 오른 손으로 지도리를 잡아당겼다. 문은 기다린 것처럼 열렸다. 방안에 들어서자 왠지 머릿골을 때리는 섬뜩한 예감에 불빛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요조숙녀의 방안처럼 침구며 집기, 수예품들이 가지런히 한쪽에 놓여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람. 방안에 불을 켜 놓고 어딜 간 게야?’

화자허는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건너방 문을 열었다. 이불이 깔린 방안에 젊은 여인이 벌거벗은 몸으로 한쪽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화자허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갔다. 중문께를 지나던 이집 둘째 아들이 화자허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음란서생이 어찌 별당에서 뛰어나오신가? 형수님이 찾으셨는가?”

“주주주주···, 죽었어요. 별당에 계신 이 댁 큰 며느님이 죽었다니까요. 발가벗고 죽어 있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별당에 갈 일이 없는데 무슨 일로 거길 가? 우리 형수님이 자네에게 얘길 해달랬나?”

“아닙니다, 그게 아니에요! 대감님이 찾으시어 사랑채로 들어가려는데 별당에 계신 아가씨께서 소인의 일이 끝나면 좀 뵙고 가 달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별당에 들어갔는데···, 아가씨께서 발가벗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사람이 모두 쏟아져 나오자 둘째 도령의 애기는  달라졌다.

“글쎄 이 놈이 형수님 방에서 허겁지겁 뛰어나오지 않습니까. 이 자가 보니 형수님이 죽어 있더랍니다. 이 놈이 형수님을 죽였을지 모르니 경위원에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민호 대감이 상황을 추슬렀다.

“잠깐! 부인이 며느리 방에 들어가 보시오. 어찌 됐든 물건 하나 건들어선 안 됩니다. 잘못 하면 당신이 복잡한 일에 연루될 수 있어요.”

최여인이 들어갔다 나온 후 민대감은 급히 한통의 서찰을 휘갈겨 경위원에 보냈다. 일단 여인의 변사가 나타나면 그것이 치정이든 무어든 간에 다모 다인(多仁)의 손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었다. 시장(屍帳)을 들고 정문원이 문밖에 섰고, 주위를 예리한 눈으로 살피며 간헐적으로 장율하가 물었다.

“시장을 작성할 것이다. 초검의 결안식에 따라 검안(檢案)한다. 알았느냐?”

“예에, 나으리.”

“주검은 어떤 모습인고?”

“발가벗긴 채 죽어 있습니다. 심하게 거부한 흔적이 보입니다만, 사인은 무어라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서둘러라!”

언제나 그렇듯 장율하의 말은 짤막했다. 서두르라는 것은 정해진 법식에 따라 검안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검이 발견되면 외상이 무엇인지부터 살핀다. 칼과 같은 날붙이(刃物)에 의한 것인지 몽둥이 등 타물에 의한 것인지 사인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을 조사하는 게 순서였다.

영초를 사용해 몸을 닦아냈는 데도 일체의 혈흔은 보이지 않았다. 목도 깨끗했다. 그렇다면 목을 매거나 자액(自縊)도 아니다. 방안 물건을 살폈다. 방안에선 촛농이 타는 냄새가 매케했다. 장율하는 음란서생 화자허에게 물었다.

“자네가 방에 들어갔을 때, 이쪽 방은 어땠는가? 불이 켜져 있었는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내 기억엔 이 방의 불빛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시생이 방문을 열고 목을 길게 뽑았던 것 같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자네가 왔을 땐 이쪽 방 불은 꺼진 채였고,  사람 그림자가 없었다는 얘기로세?”

“그렇습니다.”

“방에 있는 다인에게 묻는다! 주검에서 이상한 징후를 느끼지 못하겠느냐?”

“몸에 상흔이 없으니 영초를 뿌린들 무엇이 나타나겠습니까. 자액이나 식기상 흔적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로 보면 독물에 의한 중독이라 생각하여 입안에 법물을 넣었으나 깨끗합니다. 독물에 의한 중독같진 않습니다.”

“주검에 옷을 입히고 경위원으로 옮겨라. 이 주검은 파시(破視)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