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명궁을 내려온 판관은 우선 설원랑부터 취조에 들어갔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이미 알고 있으나 처지가 그렇더라도 모시던 풍류주가 없으면 당연히 이곳에서 나가야 하는 게 옳았다. 동륜태자가 댕견에 물려 목숨을 잃은 시각이 자시(子時)가 가깝다 보니 그 시각까지 있었던 이유를 판관은 다그치듯 몰아갔다.

“그대가 풍류주의 부제란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소만, 부제의 신분으로 풍류주를 찾아나섰다면 그 시각엔 이미 정황을 알았을 게 아닌가. 그런데도 보명궁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자시가 가까운 그 시각까지 그곳에 있어야 할 일이 무언가?”

“내 말하지 않았소. 풍류주를 기다렸다고.”

“풍류주는 그 시각엔 이미 성 밖으로 나간 지 오래 됐소. 그대 말처럼 깊은 밤이니 사실을 정확히 알아본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 보오만, 그렇다고 한정없이 보명궁에 눌러 있는다는 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니 그걸 말하라는 것이오?”

설원랑은 당시를 더듬어 보았으나 뾰족하게 달려 온 실마리는 없었다. 미실 낭주의 청으로 안에 들어가 얘기를 하던 중 사고가 일어났으니 아무리 둘러대야 이유라고 내세울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정황에 대해 몇 차례나 설명했지만 어사대 판관은 예리한 눈초리 속에 미미한 웃음조각을 깨뜨려 입에 물고 있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몰랐지만 추궁의 방향이 쏠리는 것을 보자 내심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이 그렇소. 설화랑은 부제의 신분으로 보명궁에 들어와 잠깐 있는 것도 아니고 밤이 깊도록 자리를 같이 했으니, 젊은 남녀로 보면 은밀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소. 더구나 설화랑은 퉁소를 잘 분다고 궁안에 소문이 났네. 허면, 낭주가 그대를 잡아놓은 건 퉁소를 잘 불기 때문인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유는 간단하오!”

“?···.”

“남녀 간의 엉켜있는 실뭉치를 풀어놓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대의 퉁소소리가 좋아 부르지 않았다면 남은 것은 ‘사내’라는 점이오. 그게 사실이라면 그대는 살아나지 못할 것이오.”

“뭐요?”

“들어서 아는지 모르겠소만 미실 낭주는 왕후마마에 버금가는 내명부 실권자 새줍(璽主)니다. 아직 정식으로 교지는 내리지 않았지만 원화에 임명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리되면 설화랑을 지휘 · 감독할 수 있는 자리에 있겠지요. 허나, 명심해야 할 것은 대왕의 후궁이라는 점이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주종(主從) 관계가 엄연하거늘 그것을 당사자들이 모르고 일을 도모하면 역모에 해당하는 죄를 짓는 것이오. 더구나 깊은 밤 젊은 남녀가 한자리에 앉아 있고 담을 넘으려다 태자마마가 목숨을 잃었다면 어느 누가 보더라도 달갑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게 아니겠소? 내가 보기엔 그렇소. 그대는 세종 전군의 부제니 이 일에 관여됐다곤 보지 않소.”

“그, 그렇소.”

“그렇다면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겠소?”

“당연하지요.”

“그럼 자신을 위해 변론해 보시오.”

“소인이 보명궁에 있었던 것은 실로 우연한 일일 뿐 다른 계획은 없었소. 밤이 깊은 탓에 풍류주가 전선으로 떠났는지를 알 수 없어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차에 사고가 생긴 것이니 소인은 달리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그것뿐이오?”

“그렇습니다.”

“하면, 시간이 꽤 흐르도록 낭주에게 풍류주의 소식을 물어보았는가?”

“그건···, 기억이 없습니다.”

“다시 묻겠소? 밤이 깊어질 때까지 풍류주의 소식을 물은 일이 있소?”

“···없···습···니다.”

“풍류주를 찾으러 보명궁에 왔다면 그걸 묻는 게 당연한 일인데 어찌 묻지 않았소? 물어선 안 될 이유가 있소?”

“물어 볼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겁니까?”

“그, 그렇소.”

“허면, 두 사람이 가무음곡(歌舞音曲)이라도 나누었소?”

“굳이 아니라고 부정할 순 없지만, 낭주께선 소인에게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의 묘리를 묻기는 했습니다.”

“오호? 그래요. 낭주가 장차 원화가 된다면 병부의 권한을 쥐기에 병권이나 병력의 이동사항에 대해 물어야질 않겠소. 헌데, 그런 건 멀리하고 음률을 물어요? 그것도 음률의 묘리를? 그래, 설화랑은 무어라 답을 하셨소?”

“음률도 방사를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뭐요?”

“악기의 형상을 놓고 보면 여인의 몸을 본뜬 것이니 그 형상을 어찌 만지는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듯 방사의 즐거움도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게, 설화랑이 말하는 음률의 묘미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