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자신이 나선 채 사태를 수습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여러 모로 일의 되어가는 형편만 간추릴 뿐이었다. 설원랑이 보기엔 모든 게 흔연히 일어난 일이었기에 조사해 보면 대수롭지 않게 끝날 것으로 보았으나 어사대에선 이 일을 간단하게 보진 않았다.

미실의 전남편 세종 전군이 6세 풍류주 자리에 오른 지 한 달 만에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소문을 빌미로 부제인 설원랑이 보명궁에 들어와 있는 것부터 흥미로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흐음, 그러니까···, 일은 그리 된 것이렷다. 미실이 직접 댕견을 사용해 태자를 죽일 이유가 없다면 다른 이윤 세종 전군에게 있는 것 아닌가. 대왕에게 계집을 뺐기고 그것도 부족해 풍류주 자리까지 내놓으라 질책 받았다면 원한이 있을 건 당연지사다. 더구나 보명궁의 그 자리에 설원랑이란 자가 있었단 말이야···.’

설추경은 밤이 깊도록 어사대를 떠나지 않고 서성거리며 종횡의 선을 그어 이번 일이 또 다른 일에 연루되지 않았는지를 들춰나갔다.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린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누군가 어사대를 찾아왔다. 태후전(太后殿)의 약사였다. 신라 6부의 하나인 설씨(薛氏) 집안이었으므로 비록 자주 만나지 않았어도 서로의 소문만은 항상 들을 터였다.

“늦은 시각에 어사대까지 웬일이십니까?”

지위는 높았지만 태후마마를 모시는 자리에 있으므로 일단 존칭부터 썼다. 설약사도 겸양했다.

“어허, 이 사람 왜 이러나.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설추경이 내놓은 호자(虎子)에 앉으며 그곳에 온 목적부터 꺼내놓았다.

“판관도 알다시피 궁 안은 한치 앞을 모를 정도로 혼미하기 그지없네. 그 동안 태후마마께서 설씨 집안을 위해 얼마나 애쓰셨는가. 소사(小舍) 자리의 한직에 앉을 자네를 어사대 중임으로 승차한 광영이 있었잖은가.”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네에게 무슨 힘을 빌리자는 건 아니네. 모든 일을 명명백백 확실히만 처리해 달라 그 말이지. 태후마마의 바람은 오직 그 것뿐이네.”

“당연한 말씀입니다.”

“이보시게 설판관, 태후마마가 수렴청정을 거둔 건 대왕의 연치가 서른이 넘어서라기보다 대왕의 치정(治政)이 워낙 서툴기 때문이었네. 대왕의 측근이 듣기라도 하면 나를 역모죄로 다스리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렇네. 화랑을 움직일 풍류주 자리에 세종 전군을 앉힌 지 고작 한 달이 지났을 뿐이구.”

“아, 예에.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남도(南桃)의 연회를 다녀와 어떤 명을 내렸는가. 미실 낭주에게 새주(璽主)를 명하고 오래 전에 폐지한 원화(源花)를 부활시켰네. 이것은 태후마마에게 있는 모든 권한을 빼앗은 게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습니다.”

“그 일은 비단 자네와 나의 입에서만 나오는 불만이 아니고 월성의 사내라면 모두 혀끝을 차는 일이네. 그 옛날 사다함 풍류주가 아내를 빼앗기고 식음을 전폐한 일이 있어 일부 화랑들이 아주 잘 된 일인 양 떠든다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지 않네. 세종 전군이 미실 낭주를 아내로 받아들인 건 그런저런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행해진 것인데 그걸 가지고 모든 허물이 태후마마나 전군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건 옳지 않은 일이지.”

“아, 예에.”

“해서, 태후마마께선 이번 일이 아드님에게 뒤집어 씌워지는 걸 걱정하고 계시네. 세종 전군은 벼슬자리에 오르는 것이나 병부(兵部) 권력을 갖는 걸 바라지 않으셨네. 그런데 흘러다니는 말을 듣자하니 어사대에서 관병을 파견해 전군을 데려오게 했다는 건 태후마마의 심기를 크게 상한 일이네.”

“그런 느낌을 가지실 것이라 봅니다만, 대세의 흐름을 볼 때 전군마마의 부제 설원랑이 보명궁에 남아있는 데다 바로 그 장소에서 태자마마가 개에 물려 죽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전군마마께서 당도하시면 조사가 이뤄질 것입니다만 이번 사고는 어떻게든 전군마마가 관여되신 것으로 봅니다.”

“어허, 이 사람이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구만.”

“약사 어른께서 말씀하신 취지를 시생이 모를 리 있겠습니까. 어떤 허물이 나타나더라도 태후마마를 보호해 드리고 싶은 건 변함없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조사를 그만 둘 수 없다는 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대왕께오서 태자마마의 죽음에 관여한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추국하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일이 되어가는 형편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긴, 판관의 말이 일리 있구만. 내 자네의 마음을 알았으니 태후마마께 그리 전하겠네. 모든 건 명명백백 밝혀주길 바라네. 그리고···, 자네의 노고를 치하해 마마께서 작은 선물을 내리셨네. 평소 아끼시던 것이니 소중히 다루게. 내가 듣기엔 옥벽(玉璧)이라 들었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허, 이 사람. 이건 뇌물이 아니라 자네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야. 부담이 될 건 조금도 없네. 자, 나는 그만 가 보겠네.”

   ▲호자(虎子) ; 다리가 넷인 의자

▲새주(璽主) ; 왕후와 같은 권력을 상징하는 옥새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