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견의 맹렬함은 설원랑이 휘두르는 환도 앞에 피를 뿌리며 나동그라졌다. 잿빛 털은 피로 물들어가고 여전히 목 언저리에서 흐르는 피가 검붉은 색으로 변한 게 오싹한 소름끼침을 그려냈다.

미실은 댕견의 자지러지는 비명을 듣는 순간 몸을 휘청였고 아랫것들이 잡아주는 통에 간신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앞엔 목이 뜯긴 태자의 모습이 떠올라 두 손으로 눈을 감싸며 진저리쳤다. 그녀가 머무는 장원에서 태자가 댕견에 물려 죽은 것은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위기였다.

“아!”

그녀는 절망의 탄식을 토해냈다. 궁에 들어와 여러 일을 겪었지만 상상할 수 없는 상황 앞에 그녀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궁인들의 허물을 조사하는 어사대 판관 설추경(薛秋耕)이 연락을 받고 달려와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줄을 치는 것도 그녀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미실의 맥이 풀리는 기미를 보이자 설원랑은 즉시 장원의 수비를 맡은 화랑들을 불러모았다.

“너는 지금 월지궁으로 달려가 양위마마께 보명궁의 참변을 고하라.”

사내가 달려 나가자 뒷말이 다시 떨어졌다.

“또한 너희들은 왕궁을 수비하는 병부령(兵部令)에게 고하여 신속히 사고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게 하라. 보명궁의 모든 사람들은 제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대왕의 명을 받은 어사대(御史臺) 관장으로부터 심문 받을 준비를 하라!”

명이 떨어지자 모든 건 순식간에 이뤄졌다. 양위마마는 너무 놀라 조복(朝服)을 걸치지 않은 차림으로 나타나 동륜태자의 시체를 들여다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스물도 안 된 나이에 개에게 물어 뜯겨 목숨을 잃을 줄 꿈엔들 생각 했겠는가. 일단 주위를 정리하자 대왕은 손수 사실 조사에 나섰다.

"너는 화랑이 아니냐? 네가 무슨 일로 보명궁에 있느냐?”

“소인은 6세 풍월주 세종 전군의 부제 설원랑입니다. 원화가 되신 미실 낭주께서 풍월주를 부르시기에 소인이 월성에 동행해 왔나이다.”

대왕은 잠깐 말을 끊었다.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인지 세종 전군의 행적을 물었다.

“세종 전군이 보명궁에 온 다른 이유는 없느냐?”

“모르옵니다. 소인은 전군께오서 태후마마도 뵙지 않고 돌아가신 걸 의아롭게 생각합니다.”

대왕은 그런 생각도 해 본 것 같았다. 화랑을 거느리는 풍류주가 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권한이 미실에게 옮겨간 걸 불쾌하게 여긴 것이라 보았다. 그랬기에 행동에도 남이 알지 못하는 구석이 있었다. 설마 세종 전군이 음울한 계략으로 개를 이용해 동륜태자를 살해했다곤 믿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사실 조사를 위해 세종 전군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백제와 금방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은 격전장으로 파발을 띄운 한편, 댕견을 교육시키는 봉사화랑(奉事花郞)의 출처부터 수소문했다.

보통 때처럼 장원 안에 마련된 내방실에서 두어 마리 꿩을 볶아놓고 때가 낀 목젖을 신라주로 씻어냈을 것인데 오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었다. 장원을 수색해도 보이지 않은 그는 날이 훤히 샐 무렵 허겁지겁 나타났다. 상황은 급히 양위마마께 고해지고 봉사화랑은 나포되어 사색이 된 채 사시나무마냥 떨었다.

그의 모습에 어사대가 활기를 찾았다. 어사대 판관 설추경은 불자(拂子)를 흔들며 기선부터 제압했다.

“너는 무엇하는 놈이며 어떤 연유로 보명궁 장원(莊園)에 들어왔는지를 말하라!”

“소인은 일개 개의 먹이를 주는 먹이꾼일 뿐입니다. 양동리에 살며 댕견을 키우고 있사온데 궁에서 온 사람에 의해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누가 널 데려왔느냐?”

“모르옵니다.”

“몰라?”

“그 날도 소인은 저자거리에 나가 건달들의 야삽질에 걸려 주머니 돈을 털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화가 나···.”

“네 이놈! 널 데려온 자가 누군지만 말하라. 무슨 사설이 그리 많으냐!”

“아, 예에. 소인이 집에 돌아오니 궁에서 우리 댕견을 가져간다는 말을 듣고 이곳 보명궁으로 찾아왔습니다.”

“허면, 궁에 들어올 때 어느 문을 통해 왔느냐?”

“북문입니다.”

“북문? 그 문은 태후마마가 사용하시는 곳으로 보통 땐 일반인들의 출입이 삼간 것으로 모르는 이가 없다. 한데, 북문을 사용했단 말이냐?”

“혹시 남문인가···.”

“저런, 저런 놈이 있나. 네 이놈 네가 들어온 문도 모른단 말이냐?”

“소인이 술에 취해 어느 문으로 들어왔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술이 깨자 이곳 보명궁에 들어와 댕견의 주인이라 했더니 수염많은 자가 나타나 개의 먹이로 사용한 것을 묻고 소인에게 이곳에 머물러 개를 돌보라고 했습니다.”

“개의 먹이는 뭐냐?”

“우리 댕견은 잡식성입니다. 뭐든 먹을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습니다.”

“간밤엔 어디 있었느냐?”

“소인이 궁에 들어간다는 말에 양동리 마을 건달들이 그곳에 가면 취락정에 들려보라고 성화였습니다. 거기가 어떤 곳이며 무엇이 유명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달 밝은 밤이라 소인 혼자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한데, 이상한 걸 봤지 뭡니까!”

▲설추경(薛秋耕) ; 어사대 판관

▲불자(拂子) ; 관장들이 손에 쥔 말꼬리로 만든 지휘봉

▲호랑이머리 동도는 병사들의 전투용으로 사용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