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받은 사람들이 만월성에 몰려들었다. 지난해처럼 올해도 가물어  대비책을 세워야 했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지소태후는 만월성 안의 만가보(卍家堡)라는 의자에 앉아 입장객을 눈여겨보았다. 태후 곁에는 진흥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진골정통을 따르는 중신들이 의젓이 앉아있었다. 기다랗게 펼쳐진 앞쪽 탁자엔 오리(鳧) 형상의 술잔이 놓인 채, 때가 이르자 좌측에 서 있는 내명부 약사 설추경이 태후의 눈짓을 받았다.

“부웅, 붕! 부웅, 붕!”

고루(鼓樓)에서 울리는 북소리에 맞춰 뿔피리가 울어대자 중신들이 앉아있는 앞쪽으로 처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월성의 ‘금단전(金丹殿)’에서 색공 수련을 하던 처녀들이었다. 나이는 열넷에서 열아홉까지 다양했으나 물이 오르기 시작한 그녀들의 표정은 한 마디로 피어나는 꽃이었다. 지소태후는 즐거운 듯 웃음의 고리를 풀었다.

“오호호호호! 중신들 보기엔 어떻습니까.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사람을 가려 들였지만 앞으론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을 초개처럼 생각하는 화랑들을 불러들이겠소. 신라를 신국(神國)으로 만든 분들의 뜻에 따라 이곳에서 ‘도(道)’를 행할 것입니다. 그런 줄 아시고 기쁨의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중신들이 함구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뇌리엔 ‘신국의 도’란 말이 꿈틀거렸다. 게다가 1백명 가까운 처녀들은 또 뭐란 말인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은 그것을 묻고 있었다. 만(卍) 자 형을 이룬 널따란 내원(內院)을 도화원(桃花園)이라 부른 탓에 성벽 가까이엔 복숭아나무가 심어 있고 만월(滿月)과 약토끼를 새긴 조각상들이 눈에 띄었다. 출렁거리는 처녀들이 제자리를 찾아가자 다시 명이 떨어졌다.

“이곳은 나라의 법이 닿지 않는 ‘신국의 도화원’이오. 사내들은 청색의 머리띠를 여인들은 홍색의 머리띠를 매면 ‘신국 백성’이 됩니다. 신국엔 번잡스런 세상 일을 잊도록 후원 뒤꼍에 난망주(難忘酒)를 두었으니 누구든 맘껏 드시오. 또한, 이곳에 있는 처녀들은 유녀(遊女)라 칭하니 사내라면 누구든 취할 수가 있소!”

깜짝 놀랄 말이었다. 만월성에 온 사내들은 대개 쉰이 넘은 중신들이었지만 그 숫자는 고작 서른 명 안팎이었다. 이들의 눈빛이 번들거리는 것을 보고 지소태후는 다시 명을 내렸다.

“오늘은 남도(南桃)의 첫 문을 여는 날이오. 그러므로 처녀들 가운데 화왕(花王)을 뽑아 선출하는 영광이 있을 것이오. 유녀들은 사내들을 잡아끌어선 안 되지만 사내는 여느 여인이든 상관할 수 있소. 청한 사내는 고작 서른 명이지만 이들과 가장 많이 상관하는 여인이 화왕(花王)이 될 것이오. 화왕이 되면 개인의 영광은 말할 게 없고 집안에까지 큼지막한 상급이 내려질 것이니 일심전력(一心專力)으로 남도의 연회에 참여하라!”

북소리가 쿵쿵쿵 쏟아지고 까르르 웃어대는 여인들의 호들갑이 좌중에 깔리자 사내들은 엉거주춤 먹잇감의 사냥에 나섰다. 도망가는 자, 다가오는 자, 얼굴이 붉어진 채 어찌할 바 모르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버리는 자. 무표정한 낯으로 여인들의 얼굴을 들춰보며 이리저리 바삐 오가는 중신들. 좌중은 완전히 혼란의 도가니였다. 내명부 약사 설추경이 지소태후의 귓가에 가만히 읊조렸다.

“태후마마, 중원의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이보다 더 과한 것으로 알고 있나이다.”

무엇이 과하다는 것인가. 거대하게 만든 연못에 청주(淸酒)를 채우고 그곳에 배를 띄워, 어기여차 어화둥둥 물 위를 미끄러지며 배 위에서 맘껏 술을 마셨다. 그래서 과하다는 것인가. 술 연못을 만든 제왕은 자신의 허락없이 술을 마실 수 없게 했다. 그곳에 온 남녀들은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사이계(姒履癸)라는 제왕은 3천명의 남녀를 모아놓고 북을 두드렸다. 소리에 맞춰 일제히 연못가로 기어가 머리를 처박고 술을 마시게 했음을 상상해 보라. 벌거벗은 남녀가 엉덩이를 쳐든 채 술을 마셔대는 장관을 보며 손뼉치며 기뻐했다는 역사서의 기록이 과하다는 건가?

밤을 세워 술을 마시고 연못가의 나무엔 산해진미가 높이 쌓였으니 남녀가 함께 어울려 향락을 즐기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연회가 한번 벌어지면 사오 일 계속되는 것은 보통이고 제왕의 기분이 좋을 때는 두세 달 가는 것도 늘씬하게 일어났다.

그렇다보니 여인에 대해서라면 자타가 인정하는 사이계(姒以癸)로서는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런 것으로 보면 만월성을 남도로 삼아 도화원 안에 ‘신국의 도’를 펼친 것은 나이든 사내들이었지만 대단한 효과가 있었다.

“오호호호호, 오늘은 태종(笞宗)이 없으니 내가 흥이 날 리가 없지요. 여러 중신들이나 맘껏 회포를 푸세요. 유녀 하나를 건들 때마다 지니고 있는 신패의 부도(符圖)를 한 장씩 건네세요. 그래야 화왕을 뽑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신국(神國)의 도(道)는 섹스였다.

▸일본의 고전 <고사담(古事談)>에 의하면 무 뿌리처럼 사내의 심볼이 큰 도경(道鏡) 스님과 고오겐(孝謙) 여황과의 로맨스를 기리는 축제가 지금도 일본에서 열리고 있다. 도경을 모시는 신사가 히다노신사, 효겸여황을 모시는 곳이 미타마신사다. 가을의 제삿날에는 신주를 태운 가마 미꼬시(みこし)가 양쪽 신사를 왕래하는데 이 날은 이곳을 참배한 어느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야합(野合)을 허락하고 있다. 가장 많은 사내와 교합을 가진 처녀를 장원으로 시상하는 풍습이 지금도 남아있다.

  ▸태종(笞宗) : 이사부

▸만가보(卍家堡) ; 도화원을 만(卍) 자 형상으로 만들고 그것을 형상화시킨 의자. 아무래도 신라인들은 성행위에도 부처님의  공덕을 빌었던 것 같다.

▸사이계(姒履癸) ; 걸제(桀帝). 하왕조 19대 제왕

▸옥으로 만든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