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얘기지만 법흥왕이 붕어(崩御)할 때엔 진흥왕이 고작 여덟 살이었다. 왕이 어리니 지소태후가 섭정하는 건 당연했으나 기간이 문제였다. 대왕이 성년이 된 지금, 세도의 뿌리를 움켜쥔 채 지소태후가 무소불위의 칼날을 놓지 않으니 대신들이 가만있지 않는 건 당연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령(政令)이 두 곳에서 나간다는 점이다. 진흥왕의 명이 떨어졌어도 지소태후의 명이 겹치면 굳어있던 정령이라도 순식간에 물 먹은 진흙처럼 흐물거렸다.

이런저런 점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553년 봄 2월. 지소태후의 마음을 얻고자 진흥왕은 월성(月城)의 동쪽에 새로운 궁을 신축했다. 궁이 완성되면 지소태후를 이곳에 머물게 할 생각이었으나 터를 닦고 건물을 지으려는데 느닷없이 황룡(黃龍)이 나타나 인부들이며 궁인들이 질겁했다. 모두들 의외의 일에 궁으로 삼을 걸 포기하고 황룡사(黃龍寺)라는 이름을 붙여 불사(佛寺)로 삼은 것이다.

이 일은 단순히 왕궁을 세울 땅이 불사(佛寺)로 바뀌었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동아줄 같은 지소태후의 명령이 어느 사이 부처님의 거역으로 뽕나무 실타래처럼 가늘어졌다는 점이다.

자신의 힘이 조금씩 나약해진다는 믿음 때문인지 지소태후는 우선적으로 왕실의 혈통을 진골정통 쪽으로 옮겨놓을 계획을 세웠다. 왕족들 가운데 누가 진골정통인지를 추려내 그 여식(女息)들을 진흥왕의 잠자리 시중으로 밀어넣다보니 돌미륵 같은 사도왕후가 모를 리 있겠는가.

‘이것은 태후께서 나를 못마땅히 여긴 탓이다. 내가 아무리 아들을 낳아 왕실에 도움을 줬다 해도 대원신통(大元神統)이란 혈통이 변한 건 아니다. 그러기에 나를 왕실에서 내쫓으려는 것일 터, 그러니 이 일을 어찌한다.’

거세게 밀려오는 파고(波高)를 헤쳐 나갈 방도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일을 도와 달라고 청한 묘화(妙花)가 의미 있는 말을 한 게 사도왕후의 마음자리에 남아 있었다.

“태후마마께서 삼월삼짇날 무도연에서 쇤네를 가려 뽑은 것은 무슨 이유겠습니까. 쇤네가 마음에 들어 선발한 건 아닐 것이고, 고관대작들을 상대해 비밀을 얻으려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왕후마마께선 그 점부터 알아보시지요.”

근자에 내명부엔 하나 둘 여인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나이 열넷에서부터 열아홉 미만의 처녀들이 ‘네 가지 아름다움(四美)’을 통과하면 싫든 좋든 향섭랑 복도를 걸었다. 내명부 약사 설추경은 의미 있는 말을 떨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궁인들은 내가 진(陳)나라에 다녀온 것을 놓고 본래 중원 사람이라지만 그건 잘못 전해진 것이다. 나는 엄연히 6부의 하나인 명활부(明活部) 설씨(薛氏)의 전인이야. 그런 내가 내명부에 약사로 들어온 것은 왕실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하기 위함이지. 그러한 첫 번째 이유로 좋은 궁인들을 가려뽑는 게야.”

그러나 왜 궁인들을 가려 뽑아 숫자를 늘리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기에 대단히 궁금한 모양이었으나 내명부 깊숙이 마련한 ‘금단진전(金丹眞殿)’에서 여인의 특기를 발휘할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점에 오히려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궁인으로 들어오면 그곳에서 기술을 익힐 수 있지만 그녀들은 일정한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금단진전’이라 부르는 이곳은 궁인들이 글자를 줄여 ‘금단전(金丹殿)’이라 부르는데 이 전각엔 동과 서로 나뉜 거처가 있었다. 동쪽에 해당하는 곳이 ‘상음각(上陰閣)’ 서쪽에 해당하는 곳이 ‘하음각(下飮閣)’이다. 물론 궁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궁이라고 하여 직접 왕의 잠자리에 들어갈 수 없는 일이다 보니 자신이 머무는 전각에서 색다른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설추경은 그런 말을 은연 중에 흘리고 있었다.

“이곳엔 상음과 하음에 관한 전각이 있네. 자네들도 알다시피 조정은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라는 피 흐름이 있네만, 그렇다고 반드시 두 개의 흐름만 있는 건 아니네. 자네들이 보았다시피 동쪽에 자리한 상음각(上陰閣)엔 왕손이나 귀족들의 여식이 거처할 수 있고, 하음각(下陰閣)은 일반 서민들이 머무르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자가 궁에 들어와 대왕의 총애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건 한결같이 ‘하음각’에서 수련을 끝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라 보겠네. 여기 있는 자네들도 일정한 수련을 마치면 대왕의 잠자리에 시중들 수 있다 그 말이지.”

듣기에는 감미롭기 그지없었으나 서라벌 곳곳에서 몰려들다 보니 나이 열넷의 처녀가 쉰 명이 넘어가고 열여덟이나 열아홉에 이른 숫자도 서른 명이나 되었다. 여전히 처녀들은 밀려들고 있었으나 숫자를 제한한다는 말이 없고 보니 이상히 여긴 것은 당연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토록 많은 처녀들을 길들여 대왕의 잠자리에 넣자는 건 아닐 텐데···, 그렇다고 궁에서 심부름이나 할 정도면 이렇듯 모이게 해 수련시킬 필요가 없잖아. 이곳에서 배우는 과목이란 게 그래. 손과 발의 쓰임새라든가 대왕마마를 모시는 방법이 평범한 것은 아니거든.”

그랬다. 아주 평범한 것 같지만 그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의술을 익힌 자들은 그것을 경락(經絡)이라 할지 모르지만 학문과는 거리가 먼 시골 벽촌의 처녀들은 ‘손가락 애무’라는 용어에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었다. 설추경은 설명한다.

“여러분들이 기회를 얻어 사랑을 나눌 때엔 손발의 말단에서부터 중심부로 향해야 합니다. 손가락이라 하여도 가운데 손가락이 가장 길기에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야죠. 가운데 손가락은 끝부분이 인체의 말단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애무의 시작은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이다. 상대하는 여인의 손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올려놓고 자신의 엄지손가락으로 상대방의 가운데 손가락을 애무한다. 손가락 애무의 순서는 가운데 손가락에서 시작해 다음에 인지로 그 다음에 약지로 이동한다. 인지 · 중지 · 약지 등을 번갈아 문질러 준 뒤 자신의 손을 아래쪽으로 내려 상대방의 손등 쪽으로 옮겨가 자신의 엄지손가락으로 상대의 손바닥 중심부를 문지른다.

손바닥 애무가 끝나면 팔 자체로 들어간다. 팔뚝 부분은 어지간히 해 두고 상박부로 올라간다. 여기에서는 시간을 어지간히 소비해 꼼꼼하게 애무해 주어야 한다. 위팔의 애무는 손바닥 애무와는 다르다. 이때에는 인지 · 중지 · 약지 · 새끼손가락의 네 개로 애무한다.
위팔 안쪽에는 부드러운 살이 있는데 이 살은 원기가 저장되는 곳이므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양기는 어깨로 올라오게 되고 점차 가슴과 살 쪽으로 흘러내려가 생식기 근방에 집중하게 된다. 이 양기 저장탱크는 문질러 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네 개의 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 끼고 죄이거나 맷돌질 식으로 돌리면서 주물러 주어야 한다.

▸상박부 ; 위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