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미륵 같은 세종이 미실을 거둬들였다는 소문은 궁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사도왕후의 원탁 앞에 떨어져 꼬리를 말아 감았다. 이대로 있다간 언제 지소태후의 모책(謀策)에 빠질지 몰라 그녀는  보명궁에 머무는 묘화를 불러들였다.

“너는 처음 보는 아이라 혈통이 무언질 몰랐다. 네 아비가 누구며 어미는 어디 사느냐?”

“소녀가 궁에 들어온 것은 왕실의 귀골을 생산하려는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의 가족은 부모님이 한결같이 장애가 있는 데다 꽤 떨어진 곳에서 도자기를 빚고 있나이다.”

“도공의 후예냐?”

“예에, 마마. 소녀가 궁에 들어온 것은 무관랑(武官郞)이란 봉사랑(奉事郞)에게 춤사위를 익힌 탓에 우연히 무도연에 나간 인연이었나이다.”

“지금도 색공할 뜻이 없느냐?”

“제가 택한다면 그럴 생각입니다. 제 부모님은 소녀가 궁에 들어가면 좋은 수가 생길 것이라 본 모양입니다. 그리하면 공방(工房)을 열어 아름답고 의미 있는 도자기를 만들 생각이옵니다. 소녀가 가당찮은 일이라 했지만 부모님들은 한결같이 그런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나이다.”

“너는 어쩌냐, 바람이 없느냐?”

“소녀는 무관랑 앞에서 춤사위를 펼치고 부모님께 돌아가 도자기나 빚을까 합니다.”

이런 정도면 상대에 대해 알만큼 알았다는 듯 사도왕후는 목소리를 깔았다.

“네가 바라는 건 지극히 사소한 것이다. 네가 내 사람이 되어 준다면 가까운 곳에 공방을 열어줄 것이다.”

“예에?”

“네가 머무는 보명궁은 일월(日月)로 나뉘어진 장원(莊園)이다. 두 곳 모두 왕실에 색공들 여인이 기거하는 곳인데, 그럴 생각이 네게 없으니 어찌 보면 왕궁은 너에겐 전연 맞지 않은 곳이다. 왕실에서 보면 당장 능지처참할 일이다. 더구나 너는 보명궁에 들어온 후 이름까지 바꿨다는 말을 들었다. 수국(水菊)이라 했던가···.”

“예에.”

“어찌 그런 이름으로 바꿨느냐?”

“소녀는 몸이 약해 일곱 살까지만 살아도 다행이라 했사온대 그 당시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딸이라 이름을 짓지 않았나이다. 천주사(天柱寺)에 계시는 노스님이 탁발을 나오셨다 소녀에게 ‘묘화(妙花)’라는 이름을 내리며 하신 말씀이, 저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살면 수명이 연장되고 복록을 받는다 하였나이다. 또한 묘(妙)란 글자는 일곱 살짜리 사내와 계집이 함께 있는 모양이니 나이 열넷이 되면 좋을 일이 생길 것이라 했나이다.”

자신의 나이 열넷의 봄에 보명궁에 들어온 광영은 있었지만 더 이상 다른 진전은 없었다고 뒷수쇄를 털어놓았다.

“···그래서 말이다만, 네가 나를 도와주어야겠다. 지소태후께서 삼월삼짇날 귀당비장(貴幢裨將) 사다함에게 청조라는 계집을 주더니, 무슨 심산지 사다함이 출정하자 당신의 아들 세종에게 미실을 다시 주었다. 고 요망한 것은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아 현소(玄素)의 이치를 꿰뚫었다 했으니 분명 왕궁을 어지럽힐 요물이 될 것이다. 해서 말이다만···.”

“예에, 마마.”

“왕실을 보전하기 위해 무엇보다 요망한 계집의 넉살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소태후의 전횡을 막는 것이기도···.”

사도왕후는 말을 끊었다. 묘화는 분위기만으로도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를 짐작되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는 일은 시비(侍婢)들의 눈과 귀를 열게 해 보명궁에 누가 출입하는지를 왕후전에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미실이 세종을 색공하여 거처를 정했으니 보명궁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사도왕후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다른 뜻이 있다는 얘긴가?

▸호랑이 장식도 무인들이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자료를 보니까 이 장식을 줘서 전투나 작전 방향을 정하거나 바꿨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