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일을 택했으리라. 지소태후의 각별한 명이니 설추경인들 긴장하지 않겠는가. 태후의 지엄한 속삭임을 세종에게 전하며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청조, 아니 그 처녀는 어릴적 이름을 버리고 미실(美室)이 되었답니다. 오늘 전군(殿君)마마의 처소에 들면 당분간 밖에 나갈 수 없으니 거처를 마련해야 합니다.”

“나와 같이 있으면 될 터인데 번거롭게 거처라니??”

“태후마마께선 좋은 아이라고 기대감이 대단하십니다. 넉넉한 옥토니 좋은 씨를 뿌리도록 평소 읽으신 걸주(桀紂)를 비방하는 책 대신 도홍경을 비롯해 갈홍이나 손사막 같은 이가 쓴 <천금방(千金方)>과 <현소(玄素)>에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인왕동에서 살아 온 세종은 항상 옆구리에 끼었든 책이 유학(儒學)이었다. 사내의 마음을 낚아대는 음양가나 간살거리는 성의학(性醫學) 서적보다 올바른 이치를 설파하는 공맹(孔孟)의 가르침에 열려 있었다. 그는 시매희(施妹喜)를 총애한 사이계(姒履癸)의 발광을 미워하고 소달기(蘇妲己)를 옆구리에 끼고 돈 자수신(子受辛)의 무모함을 조롱했다.

“이보시게 설약사, 이제껏 익혀 온 학문을 버리라는 겐가.”

“아닙니다. 시생은 마마께서 당사자의 뒷면도 보아달라는 것입니다. 없는 것 같지만 항상 존재하는 뒷면 말입니다.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지요.”

“알겠네.”

세종은 평소 걸주(桀紂)의 발광하는 듯한 삶만 거울처럼 비춰보았다. 자수신의 미친 듯한 행위에 대해 자작(子爵) 책봉을 받은 숙부 자서여(子胥餘)가 탄식한 데에 귀 기울였다.

“상아 젓가락은 뜨거운 부뚜막에 올려놓을 수 없으니 옥으로 젓가락 상자를 만들어 보관할 것이다. 매일같이 곰 발바닥과 새끼 밴 표범만 먹는 사람은 오랫동안 초가집에 거주하지 못하므로 필시 비단옷을 걸치고 9층 고대(高臺)에서만 살려 할 테니 장차 어떤 생각을 짜내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모르겠구나.”

그의 예언은 정확했다. 자수신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듯 7년여에 걸쳐 갖가지 모습의 나녀상(裸女象)이 조각된 경궁요대(瓊宮瑤臺)를 건립했다. 세종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불에 달군 구리원주 위를 걷게 하여 태워 죽이는 포락(炮烙)이란 형벌이었다. 오죽했으면 후세 사람들이 그를 충신만 죽이는 주제(紂帝)라 했겠는가. 더구나 이 ‘주(紂)’는 중국문자에서 사장(死藏)된 것으로 자수신을 말할 때만 사용한다.

사이계는 어떤가. 술 연못과 고기 숲을 만들었다. 대신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 때 모두 옷을 벗게 한 그가 제정신이었는가. 그 역시 사람 죽이는 데엔 맹수처럼 도가 텄다. 그런 제왕들의 뒷면은 어떤 것인가. 술을 마셨으니 당연히 색을 밝혔을 것이다. 그것을 보라는 것인가. 대답은 그리했지만 내키지 않은 일에 세종은 낯을 찡그렸다.

그러나 세종의 잠자리를 위해 미실이 왔을 때 그는 자신이 미처 체득하지 못한 학문이 있다는 걸 절감했다. 성(性)에도 일정한 법도가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세종은 풍류를 사랑하는 남아였지만 그렇다고 여인을 사랑하는 기술이 남다른 편은 아니었다. 책을 가까이 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어설프게 배운 게 고작이었다. 이른바 동파(東派)의 비전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몸의 중심부엔 원기(元氣)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성적으로 흥분하면 원기는 어느새 양기(陽氣)로 변한다는 것이다. 비술이란 이때부터 사용하는 것으로 그가 본 서책에는 ‘금견옥비안(金肩玉臂按) 일배양봉의(一背兩峯依)’라 쓰여 있었다.

비(臂)는 팔굽 윗 부분인 팔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어깨와 팔뚝을 애무해 주라는 뜻이다. 양봉(兩峯)은 입으로 유방을 흡안해주고 왼팔은 상대방의 등을 껴안고 바른 손으로 상대방의 아래쪽을 자극하라는 게 ‘일배양봉의’의 바른 뜻이다.

하부 자극의 요령은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여 지긋지긋 손가락 뿌리로 눌러주라는 뜻이다. 여인의 성감각은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어서 미실처럼 고도의 훈련이 된 사람은 일어나는 감흥을 숨길 수가 있으므로 세종은 열심히 어설픈 비기를 펼쳐나갔다.

그런데도 미실이 자지러지는가 하면 호흡도 심상치 않게 변해 그 동안 익혀온 기술이 먹혀든 것이라 보았지만 이것은 미실의 오묘한 방중행위(房中行爲)의 속임수였다. 세종이 어설픈 첫날밤의 떨림을 너무 쉽게 끝내고 머쓱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말했다.

“전군 마마께서도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소녀의 집안은 왕실의 혈통을 존속시키는 색공 집안입니다. 4대를 이어내려 왔으니 방사의 기본이 무언지는 못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생각 여하에 따라 전군 마마께서도 달갑지 않게 여기실 것입니다.”

“그게···.”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엉뚱한 판정을 내리며 시비를 일으킵니다. 소녀는 어려서부터 향비파를 가까이 했습니다. 중국의 것은 네 줄이나 신라의 것은 다섯 줄입니다. 그것을 일러 사람들은 궁상각치우(宮象角徵羽)라고 하며 나름대로 설명을 붙입니다만 과연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요. 또한 그 모양을 보십시오. 영락없이 여인네의 은밀한 부위를 상형(象形)시키지 않았습니까.”

세종의 입장에서는 처음 듣는 말이어서 동그랗게 눈을 뜬 채 귀를 곧추세웠다. 미실의 말이 옳다. 삼현이라지만 가야금과는 달리 향비파는 여성적인 미끈한 몸이다. 그렇게 만든 건 소리의 공명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자세함은 알 수 없었다.

“사랑이란 게 그렇습니다. 향비파의 음처럼 몇가지로 소리냅니다. 궁조가 있으니 칠현조가 있고 거기에 봉황조가 있고···. 4현에 곡경인 당비파와는 달리 5현에 직경이며 복판에 대모를 대고 거문고처럼 슬대로 탑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건 여인의 급소를 만지는 것이며 슬대가 오가는 건 사내의 힘이라고 들었습니다.”

“어허, 그게···.”

“어쩌시렵니까. 이제 밤의 행사를 소녀의 기교에 맡기겠습니까, 아니면 전군마마께서 깍듯이 여기시는 공맹의 도리에 의지하렵니까. 소녀는 그게 궁금하옵니다.”

이렇게 되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사서삼경을 외고 공맹의 학리를 준수한들 깊은 밤의 오묘한 소리를 어떻게 따를 것인가. 배 위에 올라가 공자왈 맹자왈 할 수 없고 보면 자신의 고집을 팽개친 채 미실에게 맡길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시작부터 상대의 혼백을 빼놓을 수는 없어 미실은 잠자코 세종의 손놀림에 못 이긴 척 몸을 맡겼다.

▸걸주(桀紂) ; 폭군 걸왕과 주왕

▸천금방(千金方) ; 성의학에 대해 천가지 비방을 적은 책

▸향비파 ; ‘경모궁악기조성청의례에 의하면 1977년도에도 사용되었으나 단절되었다.

▸'반'은 소반이나 예반, 또는 쟁반과 같은 용도로 사용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