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문무백관을 비롯하여 하인 나부랭이까지 며칠을 두고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그 날이 몇 월 며칠인지를 잊어버렸다. 좌우의 아첨꾼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제대로 대답하는 이가 없자 하는 수 없이 숙부 자서여에게 사람을 보내 묻기에 이르렀다.

“한나라의 제왕이 날짜를 모르면 나라가 위태롭고 백성들까지 날짜를 모른 상태에서 나만 알면 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자서여는 자신도 날짜를 모른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한 척했다. 자수신의 지능지수가 좋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지만 특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굴리는 머리는 많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급기야 그는 자신의 총명을 나쁜 쪽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흉폭함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어느 날은 주방장이 곰 발바닥 요리를 잘 익히지 않았다고 그 자리에서 주방장을 죽여버렸다. 물론 이게 특별한 일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후세의 제왕들은 그보다 훨씬 심했으니까. 그러나 정작 놀라운 일은 자수신의 지칠 줄 모르는 괴벽스런 연구심이다.

어느 해 겨울, 녹대(鹿臺)에 앉아 산천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을 때 억세게 재수없는 가난뱅이 사내가 맨발로 개울을 건너가고 있었다.

“오호,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맨발로 개울을 건너는 것으로 보아 저 친구의 발 구조가 특이할 것이다. 저 친구를 이리 데려와 발을 잘라 보도록 하라.”

가난뱅이 사내는 결국 양다리와 양 발이 톱으로 갈라져 골수가 꺼내져 제왕의 구경거리로 바쳐졌다. 또 어느 날은 자수신이 임신한 여인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해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의 구조가 어떤 지를 연구하기도 했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가난뱅이 친구는 불구가 됐을 망정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은 있었지만 임신부는 태아와 함께 참사를 당했다. 어디 그뿐인가. 자수신은 살해한 사람의 주검을 모아 궁정의 동물원에 보내 호랑이의 사료로 삼게 했다.

이러한 장기간의 폭정은 각 부락 추장들의 반란을 야기시켰다. 이것을 보고 소달기는 충돌질했다.

“대왕, 추장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들의 징벌이 가볍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 지금보다 몇십 배 더 가혹하게 다스린다면 충분히 진압할 수 있습니다.”

자수신은 거대한 구리 역기를 특별히 만들어 그것을 불에 달궈 심심할 때마다 죄수를 끌어내 그것을 들게 했다. 사람의 몸은 피와 살로 만들어진 지라 역기를 머리 위로 채 들어올리지 못하고 죄수들은 살이 익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는 이런 일에도 곧 흥미를 잃어 이번엔 포락의 형벌을 발명해 죄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달기와 함께 즐거워했다.

미색에만 일가견을 가진 게 아니라 소리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었다. 그는 중원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 사연(師涓)에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음탕한 음악을 만들게 했다. 타락의 분위기를 만드는 맛있는 양념이었다. 백성들의 세금을 가중시켜 거둬들인 금은보화는 녹대 위에 쌓고 거교(鋸橋)에 양식을 두게 하여 마음껏 염복을 누리며 여생을 보낼 차비를 했다.

중원의 역사상 가장 포악한 군주 자수신. 그러면서도 가장 총명한 군주였다. 그는 자신의 총명함을 일의 추진력으로 발전시켜 사람을 요리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부하들을 깔보았으며 어쩌다 총명하고 일을 잘 하는 자가 나타나면 어떤 이유로든 그를 죽이거나 귀양 보내고 자신의 주위에 멍청이들만 있게 했다. 이러한 그에게는 세 명의 대신이 있었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삼공(三公)이라 불렀는데 구후(九侯), 악후(鄂侯), 서백(西伯)이라 칭했다. 물론 이것은 관명(官名)이었고 이름이 따로 있었지만 서백의 이름이 희창(姬昌)이란 것만 알 뿐 나머지 두 사람의 이름은 알 길이 없다.

구후의 딸은 자수신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첩 중 하나였다. 그녀가 비첩으로 간택될 정도라면 용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거기에다 아버지가 삼공 중의 한 사람이며 귀족가문의 자제다 보니 제왕의 총애를 받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그녀는 <소녀경>이나 <현녀경>을 읽지 않고 유가학파들이 주장하는 칠거지악이나 부부유별 등의 고리타분한 책자에 시선을 주었다.

그녀가 달달 외우는 것은 유가(儒家)의 경전이었다. 남녀가 단둘이 있는 방안에선 사랑이 우선이고 존경과 체면은 다음 문제가 아닌가. 사랑이란 것도 여자가 얼마나 남자를 잘 유도해 상대에게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느냐에 따라 가치 기준이 달라진다. 누군가 그랬지 않은가. 현명한 여자일수록 잠자리에선 창부가 돼야 한다고. 그러나 그녀는 교태를 부려 사내를 휘어잡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경쟁자인 소달기를 이겨낼 재간도 없었으니 그녀의 머리 위에 불똥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아마도 잠자리에서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요망한 소달기의 계책 때문일까. 자수신은 그녀를 처단하라는 명을 내리더니 그것도 부족해 그녀의 아버지 구후까지 처형해 맷돌로 들들들 갈아버렸다.

악후가 이 광경을 보고 간곡히 만류했으나 화가 치민 폭군의 귀엔 들어올 리 없었고 만류가 너무 심해서인지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냈다.

‘요런 놈을 봤나. 자기 자신도 돌보지 못한 주제에 다른 사람을 동정해?’

자수신은 내친 김에 악후까지 참살해 맷돌에 갈아버렸다.

▲상공(三公) ; 나라의 중임을 담당하는 세 대신

▲녹대(鹿臺) ; 경궁요대의 다른 이름

▲서백(西伯) ; 주(周)부락의 추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