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의 시끌덤벅한 소란이 있은 지 열닷새나 지났다면 어느덧 가을이 한참이다. 그 동안 월성에선 미실의 소식을 백방으로 탐문했으나 꼬리를 찾을 수 없었고 어쩌다 들려오는 소식은 믿음이 가지 않은 얘기뿐이었다.

처음엔 흰 여우(白狐) 하나가 궁에서 나와 서악에 도착해 밤새 어찌나 슬피 울던지 산짐승들이 놀라 북쪽으로 도망갔다 하였고, 어떤 날은 관(冠)을 쓴 금관조(金冠鳥) 한 마리가 온갖 새를 몰고 나타나 밤새 슬픈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궁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어사대에선 이 일을 부풀려 진흥왕께 복명했다.

“대왕마마,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는 것은 요망한 미실이 잔재간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관병을 풀어 서라벌 전역을 샅샅이 뒤지는 게 옳은 일이라 보옵니다.”

진흥왕은 지난밤에도 사도왕후에게 진언을 들었던 터라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에 못질하고 나섰다.

“과인이 아직까지 가만있었던 것은 그 동안 날(刃)을 세운 대비전이 함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오. 내가 들은 바 이번 일은 댕견의 주인 또출(又出)이의 죄가 적지 않아 취조를 단단히 하란 명을 내렸는데 어찌 그 부분엔 한마디 말이 없고 도망간 미실에 대해서만 여러 말이 있는가?”

어사대 판관은 찔끔 놀라며 조심스럽게 상황을 정리했다. 미실이 월성에서 사라진 후 어사대 뇌옥(牢獄)에 갇힌 또출이는 설추경이 목숨은 살려줄 것이란 말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행동을 했었다. 뇌옥 안의 졸개 한 놈을 구슬려 태후에게 서찰을 보내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좋은 쪽으로 이용하려 든 것이다.

<태후마마, 소인 또출이 아룁니다. 그 동안 어사대 지하뇌옥에서 사태를 면밀히 살핀 결과 태자마마가 죽음을 맞이한 것은 미실 낭주가 저지른 것이라 굳어지고 있습니다. 소인은 입이 가벼워 하루에도 몇 번씩 태후마마의 명으로 불측한 일을 꾸몄다고 말하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오니 소인을 옥(獄)에서 꺼내는 것과 함께 여생을 편히 살아갈만한 재물을 주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내용은 금방 태후전(太后殿)에 전해지고 불측한 놈이라고 화를 낸 태후의 마음을 설약사가 위로했다.

“태후마마, 물가에 사는 자는 산중의 호랑이가 무섭다는 걸 모릅니다. 지금껏 댕견을 키우는 놈이다 보니 모든 걸 개의 습성으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는 짓이 맹랑해 당장 물고를 내는 게 마땅하오나 그리 되면 좋지 않은 소문이 떠돌 것이니 이 일은 허튼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처리하겠나이다.”

지소태후는 치달아 오르는 분기를 애써 달래며 수긍해주었다. 설약사는 아랫것들을 시켜 또출이가 궁에 있을 때 누구와 살갑게 지냈는지를 조사시켰다. 가장 앞자리에 선 게 초화(草花)라는 유녀였다. 화랑의 하급간부인 봉사랑(奉事郞)을 아비로 둔 그녀는 열셋의 나이에 돈냥이나 있는 사내에게 시집갔으나 반 년이 채 못 돼 서방이란 자가 방사를 치르던 중 복상사(腹上死)로 숨지자 어린 나이에 ‘서방 잡아먹은 년’이 되어 뒷걸음으로 팔려나간 게 유곽이었다. 곱상한 얼굴에 사내 후리는 요본감창(凹本甘唱)이 특기라 그런 대로 초화를 찾는 손님들이 적지 않은 편이었다. 아무리 옛 시절이지만 서라벌의 유곽은 1품과 2품 대우를 받는 계집의 처지가 엄연히 있었다.

유곽엔 두 종류의 계집이 있는데 하나는 손님들을 맞이해 춤이나 시문으로 흥을 돋구는 기녀(妓女)가 1품 유녀였다. 이들은 본인이 원하기 전엔 상대가 잠자리로 끌어들일 수 없었다. 반면에 2품에 해당하는 계집은 잔심부름이나 하는 2품 유녀로 상녀(商女)라 불렀다. 술을 마시는 손님이 마음이 동하면 언제나 불러들일 수 있는 일종의 들꽃이었다.

그렇다보니 어디 내세울 게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자신을 찾는 사내 숫자가 늘어나자 꼴같잖은 위세를 떨고 있었다. 설약사는 그녀에 대한 내밀한 것까지 알고 있었으므로 시종 두엇을 데리고 인왕동 유곽을 찾아갔다.

“오호호호, 나으린 지소태후 마마를 섬긴다고 들었는데 어인 일로 삼류 객점(客店)까지 나오셨습니까?”

“유곽은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니 나 역시 그런 즐거움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안 될 이유라도 있느냐?”

“아니옵니다, 나으리. 이곳에서 머지않은 곳에 ‘옹추공’의 사저가 있사온대 어찌된 셈인지 두어 달 가까이 오지를 않아 매파(媒婆)를 보내 정황을 알아오게 했지 뭡니까.”

“이유를 알아냈느냐?”

“그 댁의 아랫것들 중 나와 친한 아이가 하나있는데 꽤 괜찮은 계집 하나를 주웠다지 뭡니까?”

“뭐, 주워?”

“네에. 그래서 그 계집에게 푹 빠진 건지 어쨌는지 이곳에 안 온답니다. 어떻게 생긴 년인지 낯짝 한 번 구경하려고 찾아갔는데 ‘옹추공’과 얘기가 깊어 나오지 않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런 얘긴 나중에 듣기로 하고···.”

“어머머 나으리. 참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술 한 잔 올리지요.”

초화가 따룬 술을 버려둔 채 설약사는 상체를 약간 숙였다. 그러한 몸짓만으로 자신을 찾아온 사내가 용무가 있다고 재빠르게 판단했다. 역시 그런 말이 설약사에게서 쏟아졌다.

“자네가 또출이와 인연 있다고 들었네만?”

또출이란 말에 초화는 깜짝 놀랐다. 유곽에 있다 보면 이곳을 찾아온 사내가 무슨 재간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건 누워서 떡 먹기다. 댕견을 키우다 유곽으로 달려 온 또출이는 얼굴에 개기름이 번들거렸다. 돈 잘 쓴 데다 월성에 근무하는 봉사랑(奉事郞)이란 말에 이거 얼빠진 놈 낚았다 싶어 그 밤에 치마끈 풀고 잠자리송사로 반죽음을 만들어놓았다.

▲봉사랑(奉事郞) ; 하급직 간부 화랑

▲유녀(遊女) ; 유곽에 있는 여자

▲상녀(商女) ; 유곽에 있는 몸을 파는 여자

▲금방울은 귀족과 왕족들의 노리개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