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릉.

천둥인지 파도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천지간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뱃전을 들이치는 빗방울은 마치 우박과 같이 갑판을 때렸다. 바다에는 어둠까지 내려 수십 길 앞도 바라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쿠르르 쿵.

천둥이 하늘의 서편에서 치면 번개가 동쪽에서 불에 달구어진 청룡연월도를 내리치 듯 바다위에 내리 꽂히고 그때마다 배는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가 땅속 저 깊은 심연의 지옥불 속으로 떨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어억!"

"선아야?"

"으..."

"아가야. 됐다. 별거 아니다. 조금만 참거라."

홍경래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색이 된 선아를 끌어안고 선실의 한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 배의 책임자인 사공을 비롯한 수부(水夫)들이 질서정연하게 파도에 맞서 배를 지키며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파도를 한두 번 겪어본 사람들이 아니었다.

세곡선은 크고 단단하다. 배의 길이 12미터에 폭 3미터, 높이 7미터에 이르는 세곡선은 40톤 정도되는 오징어 채낚기선 정도의 크기로 보면 된다. 조선시대 함상에서 큰 파도를 만나 고군분투했던 기록이 한 점 있다. 그것은 '계미사행'의 책임자였던 '조엄'의 기록이다. 조엄은 부산에서 대마도로 들어가던 중 만난 거친 폭풍을 이렇게 기록했다.

- 부사가 탄 배가 미친 듯 쓸려간다. 거리가 자꾸만 멀어진다. 거대한 파도가 산과 같다. 물소리가 어둠 속에서 포효하는 범의 울부짖음 같다. 키가 부러져 나가고 뱃전이 깨져 나간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다는 뱃사람들에게는 공포다. 사실 바다 위에서의 배의 크기는 중요치 않다. 아무리 큰배라 하더라도 태산 같은 파도를 만드는 바다의 광풍과 시절인연이 닿으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윽!"

"우억!"

선아의 구토에 홍경래까지 덩달아 구토를 했다. 선실 안에는 그들 외에 여러 명이 더 있었고 그들도 죽을 맛이었다. 구토물이 선실의 천장에서 흘러내렸다. 온 선실이 구토의 찌꺼기로 가득했다. 배의 흔들거림이 공간을 뒤집었다 바로 놨다 하는 듯했다.

"장군!"

그나마 멀미를 조금 덜하는 홍경래의 수하가 안되겠다는 듯 선실의 문을 두드렸다.

"열어라! 문좀 열어?"

쿵쿵쿵 하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바깥으로 들릴 리 만무했다. 수부들은 아예 선실문에 빗장을 지른 듯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바다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이다.

"됐다. 참자. 그 방법 외에 없어."

홍경래는 문을 두드리는 수하를 만류하며 선아의 입에 묻은 오물을 닦아주었다. 선아의 얼굴색이 하얗다못해 노란 것 같았다. 번개가 칠 때마다 선실의 문틈과 창틀 사이로 밝은 빛이 새어들어 왔다.

쿠르르.

쿠르릉.

홍경래는 쿠르릉 거리는 파도소리에 몰골이 송연함을 느꼈다. 그리고 두려움의 한쪽에서 피어나는 오기도 함께 생겨났다.

"저 파도 같은 대천번개 같은 힘으로 세상을 들이치리라 !"

홍경래는 선실의 벽에 강하게 부딪치는 자신의 몸뚱이를 이용하여 선아를 보호하며 소리를쳤다. 그것은 단발마의 비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