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9년은 이렇게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모든 학자와 모든 식자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조선의 성군 정조가 사망한 지 겨우 10년 만에 조선의 현실은 두 사람의 절대권력자와 한 사람의 거상(巨商)의 그늘진 암묵에서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성군의 위업이 대를 이어 계속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군이 온힘을 기울였던 제도와 현장의 실체를 후임 임금이 이해하고 체득하여 계승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일 터이다. 영정조는 나름대로 성군이고 조선이란 나라를 앞장서서 이끈 역강(力强)했던 군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덟 살에 불과한 구상유치한 나이의 순조가 선대의 위업을 이어 받는다는 것은 애초에 힘든 일일 터였다.

역사는 영정조 시대에 이미 민의의 분노와 민의를 억세게 억눌러온 권력의 퇴보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은 조선이란 나라의 해체의 단초였다. 어떤 현명한 군왕이 나타나 별의별 제도를 다 동원해 보아도 일부 기득권층의 행복과, 대다수 하층민들의 가난과 질곡이 현실인 당면한 사회가 혼돈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의 가난은 고질적인 것이었다. 조선의 가난은 세종대왕 때도 성종 때도 마찬가지다. 영정조 시대라고 해서 특별히 부강했던 것이 아니다. 조선의 28대 군왕들 중 한 사람이라도 나라가 부강했던 적은 없었다.

이날 박종경은 김조순의 양해를 얻어 조선의 홍삼전매권을 임상옥에게 넘겨준다. 상왕 임상옥은 이렇게 태어난다.

임상옥은 도고로 거부가 된 인물이다. 의주 책문후시에서 청과 중계무역을 하면서 매점매석과 관리들과의 결탁으로 자금을 모아 경상과 송상이란 전통의 상단을 돌려세우고 만상을 조선의 제일의 상단으로 키우는 수완을 발휘한다. 그것은 임상옥이 박종경과 손을 잡은 결탁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임상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과 드라마 등은 많이 왜곡되어 있다. 임상옥은 경영 마인드를 갖춘 기업가의 표상도, 서민들에 대한 궁휼을 가졌던 의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다. 필자는 임상옥이 공주 관아의 관노출신으로 환곡대출업에 눈을 떠 조선 제일의 갑부로 군림하던 '김갑순'과 비슷한 인물로 생각된다. 그들은 이재에 밝고 수완이 민첩한 약삭빠른 상업모리배에 불과한 인물들이다.

임상옥을 친일모리배인 김갑순과 비교하는 것에 반감을 갖는 분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임상옥은 홍경래난에도 거금 삼천 냥을 제공하고 있다. 기록에 난타난 것만 그렇다. 그런데도 임상옥은 아수라와 같던 홍경래난의 사후처리에서 거뜬히 빠져 나온다. 그것은 임상옥이 평소에 요소 요소에 뿌려놓은 뇌물 덕분이다.

임상옥은 난이 끝난 후 십여년 후에 난이 발생했던 지역의 산업을 회복시킨다는 명분으로 지역의 군수 자리를 따내기도 한다. 소설과 드라마 등에 나타난 임상옥의 이미지는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 오히려 치부와 영달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한 인간의 치열(?)함만이 사료 곳곳에서 보일 뿐이다.

(주. 19세기 상업 다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