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포장은 가희를 김재찬집의 붙박이 망원으로 박아 놓고 목면산 아래에 있는 장포교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한양의 가난한 백성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남촌이라 불렀다. 광통교의 기방과 김재찬의 집을 다녀온 길인데도 아직도 해떨어지기 전이었다. 높은 고관들은 한낮부터 기방을 차지하고 풍월을 읊고 가난한 남촌의 백성들은 모두 일을 나간 뒤라 코흘리개 아이들만이 골목길을 달음질치고 있었다.

오포장은 남촌 입구에 있는 점방에서 쌀 서너 말과 마른생선 한 축을 사 짐꾼에게 들려 장표교의 집으로 들어갔다. 지붕이 땅과 붙은 허름한 초가였다.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인 초가삼간이었다. 매년 사 개월마다 한번씩 받는 포교의 녹봉은 쌀 한 섬에 콩 한 섬, 거기다 면포 종이 등 약간이 전부인 살림으로 다섯 식구가 입에 풀칠하기도 벅찬 것이었다.

"어머? 포장어른?"

오랜만에 남편이 집에 들어온 탓인지 일을 나가지 않은 장표교의 아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반갑게 뛰어나왔다.

"호호 낭군이 주무시나 보지요? 저 부억에 부려놓게."

오포장이 짐꾼에게 쌀과 마른생선을 가져다 놓으라 말한 후 마루에 앉았다. 열어놓은 방안에서는 장표교가 배를 걷어붙이고 자고 있었다. 코까지 드렁드렁 고는 것이 여독이 심한 모양이었다.

"여보? 돼지 아버지?"

"호호 됐어요. 내가 조금 기다리지요. 아 날씨 덥네."

오포장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부채를 펴 부치며 말했다. 장포교 아내가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한 대접 가져다 주었다.

"저 이거라도..."

"호호 고맙군요."

오포장은 물대접을 받아 한모금 마시고는 대접을 마루 위에 놓았다. 매미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집 뒤에 커다란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머가 이리 시끄러운 게야?"

"옹? 저 인간 깼나 보네?'

"아이고 포장님?"

장표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오포장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나왔다.

"호호 조금 더 자지 않고? 휴망인데..."

오포장은 잠이 깬 장포교에게 미안한 듯 휴망을 들먹였다. 휴망은 휴가를 말한다.

"청에 뭔 일이라도...?"

"아냐 그런 건... 그리고 장포교하고 탁주나 한잔하게  술하고 고기 몇 칼 끊어 오시죠?"

오포장이 전대에서 엽전 대여섯 닢을 꺼내 장포교 아내의 손에 들려주며 말했다.

"아이고 포장님? 술은 제가..."

"호호 됐어. 우직한 장포교 밑찔 못하는 거 내가 잘 아는데... 어서 다녀와요?'

오포장은 장포교의 등짝을 때리며 장포교 아내를 재촉했다. 밑찔은 포교들 사회에서 말하는 뇌물을 말한다.

"냉큼 다녀오지요."

장포교 아내가 엽전을 받아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얼굴이 환했다. 쌀과 마른생선... 거기다가 고기까지 생겼으니 오늘 일진이 좋은 날이다.

"호호 장포교, 이건 아내에게 주고 집안 건사 좀 해놓고 서북을 다시 다녀와."

"네에?"

장포교는 오포장이 전대 속에서 내놓은 은 한 덩이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족히 쌀 열 섬은 살수 있는 것이었다.

"호호 반은 살림에 보태고 반은 여비를 해 다녀오란 말이야. 다모 한 명만 데리고 비밀리에..."

오포장은 씨익 웃음을 지으며 물대접을 들어 물을 한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