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자네 의견은 무어야?"

박종경이 못마땅한 표정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옆에 있던 박기풍도 허기침을 한번 하고는 자신도 담뱃대를 꺼내 물었다.

"호호 저같은 말단 상것의 의견도 의견이랄 수 있겠는지요."

"그저..."

"그저 뭐? 끌끌...변변치못한 인사하곤...돌아가서 할일이나 해."

박종경이 더이상 들어볼 것 없다는 듯 오포장을 내쳤다. 오포장은 뒷걸음질로 기방을 나섰다. 문밖에 가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되셨는지요?"

"호호 된바가지 좀 썼다. 김재찬 집으로 가자. 그 곳을 감시하던 다모에게 인수인계 받았지?"

"받긴 했는데요. 참, 포장님?"

가희가 오포장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김재찬이 복상사라도 한 게야?"

"복상사요? 어멋 오라버니!"

가희가 오포장의 한쪽 팔을 꼬집으며 농담을 했다. 어느때는 친 오누이 이상으로 오포장을 섬기는 그녀였다.

"그럼, 뭔 말인데?"

"육종사관이 아침부터 포장님을 찾았거든요. 청을 떠날 때도 돌아와서도 자기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방방 뜨고 있어요."

"호호, 지놈이 임금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하직인사를 받게..."

오포장이 하직(下直)을 말했다. 하직인사란 조선시대 외직으로 나가는 신하들이 군왕을 대면하고 발령지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조선의 모든 외직 관료들은 발령지로 나갈 때 왕에게 인사를 하고 한두 마디 덕담을 듣고 나가는 것이 상례였다. 현령 군수 목사 관찰사 등 외직 관원들은 군왕에게 공통적인 질문을 하나 받고는 했다.

수령칠사(七事)가 그 것인데 그 것은 조선 외직 관원들의 업무지침이다. 경국대전은 조선 외직 관원들이 꼭 지켜야할 일곱가지 임무를 기록하고 있다. 농업 잠업의 부흥. 호구의 증가. 학교의 중흥. 군정의 정비. 소송의 간명. 간사 교활의 시정 등 일곱가지의 임무를 말한다. 이 간단한 즉답이 나와 있는 수령칠사를 답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파직되는 관원이 종종 발생하는 코미디 같은 일도 있다.

"똘아이라는 소문도 있는데 자칫 오라버니 작살 한번 나시겠어요."

"작살?"

"네. 그러니 그냥 한번 져주면 어떨까요?"

가희가 오포장을 달랬다. 상급자와 맞서봐야 손해를 보는 것은 하급자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호호 그놈에게 기어들어가라고?"

"기어들어가는 게 아니라 한번 죽어주는 척 하는 거죠."

"이년아 니년이나 한번 죽어줘라. 그놈 힘도 좋겠더라."

"포장님?"

가희가 오포장의 등짝을 있는 힘껏 때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