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에서 일행들과 헤어진 홍경래는 선아와 춘대의 밑에 있는 수하 한 명만을 데리고 배편을 이용해 충청도로 길을 나섰다. 밤을 새웠던 지도부의 의견은 복지(伏地)였다. 얼마동안 죽은 듯 엎드려 조정과 각종 기찰기관의 눈을 피하자는 작전이었다.
용천에서 한양으로 내려가는 물상선을 얻어탄 덕에 배멀미는 훨씬 덜했다. 큰배는 덩치값을 하느라 선창과 수부들이 쉬는 장소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뒷문 밖에야 시리리 타래.
바람만 불어도 날 속이누나.
물위에 계시기 물아래 살지.
할래두 두번씩 드셑물 있구나.
비야 뭐 올래면 소낙비 좋지.
실실이 늘여서 내 속을 왜 얽나.
수부(水夫)들이 부른는 노래였다. 청승맞으면서도 흥까지 돋구는 용강의 노래가락이었다. 이 노래의 제목은 '용강긴아리'다. 긴 노래라는 뜻이다. '시리리'는 시래기의 함경도 사투리다. 타래는 시래기를 묶어 놓은 것을 말한다.
내 심어놨는데 나팔꽃 심사(心思)
담넘어 남의 집 뜰에서 피네.
없는 정 있는 척 웃어 달래네.
울지도 못하는 이 마음인 것을
꽃이란 혼자사 떨어지는 걸.
구태어 보시락 비가 왠 말가.
님을 그리는 한 아낙의 애닯은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처마에 내어 걸린 시래기 타래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나면 혹시 님이 오신 줄 알고 자꾸만 문밖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집 밖의 바다는 하루에도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오고가는데 왜 나의 님은 기별이 없느냐는 것이다.
"장군님, 충청도는 어쩐 일로 가시나요?"
"언젠가 금오선생을 말한 적 있지 않니?"
"네."
"금오선생이 계신 곳에 가려한단다. 홍산에가면 무량사란 절이 있는데 그곳 주지가 우리들의 동지란다. 그 절에 금오선생이 직접 그렸다는 그 분의 초상화가 있지."
"... ...!"
"선아 너는 금오선생을 좋아한다고 했지?"
"네 저도 그 분과 같은 구름을 짓고 싶거든요."
"암. 그래야지.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단다. 꿈이 있어야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게야."
"그런데 춘대 삼촌은요?"
언제부터인지 선아는 춘대를 삼촌이라 불렀다.
"춘대는 추쇄대상이라 서북을 벗어나면 위험하다. 포청 각 아문에 용모파기가 뿌려져 있을 거야."
"그럼 저도...."
"하하, 너는 걱정마라. 너는 한참 자라는 아이고 용모파기도 불분명하여 가려내기 힘들지. 더구나 관에서 아이들까지 신경쓸 정신이 없을 거고"
홍경래는 선아의 등을 다독거렸다. 선아도 도망 노비로 추쇄대장에 올라 있었다. 조선은 한양이나 지방을 가리지 않고 전 아문에 화사(畵師)가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화사들은 조정 육조와 각 군영 그리고 지방 감영에서 수시로 하문되어 내려오는 추쇄대상의 용모파기를 수십 장씩 필사(筆寫)하여 관내의 중요 길목의 방과 형리들에게 주어 추쇄를 용이하도록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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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