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를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홍경래와 이희저가 입을 모아 한 목소리를 냈다. 장봉사는 병법을 아는 모사였다. 김창시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본다면 장봉사는 낮은 곳에서 누항(골목길)을 살피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아직 준비가 부족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정은 어느새 이를 눈치채고 있습니다. 현실은 냉혹합니다."

"그러니까 거사를 서두르자는 것 아닌가?"

김창시가 염소수염을 만지며 반문을 했다.

"서두르면요? 머리만 있고 몸통은 없는 뱀이 아무리 강한 독을 품고 있다 해도 소를 물어 죽일 수 있는지요?"

"뭐라?"

김창시가 더이상의 말을 잇지 못했다. 홍경래와 이희저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일이었다. 신도 회합에 모인 인물들은 하나같이 막강한 사람들이었다. 강철 같은 단심(丹心)과 그들 각자가 수십 명의 장정들을 즉시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대는 관군입니다. 안주 영변 방어선에만 천여 명의 보마군(步馬軍)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겨우 수십 명의 수뇌부만 만들었을 뿐입니다. 물론 우리가 품고 있는 독은 맹독인 건 분명합니다. 한번에 조선을 물어 즉사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은 몸통과 꼬리가 온전치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은 압박을 해오고 있습니다."

"잠수를 타자는 말은 잠깐 조정의 눈을 피하자는 말인가?"

이희저가 물었다. 장봉사의 의견이 조금도 틀린 점이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자금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금은 지금도 부지런히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희저가 장봉사의 말을 계속 받았다.

"아예 사주전을 대량으로 만드는 것이 어떨는지요?"

"사주전?"

장봉사의 말에 다른 사람 모두가 반문을 했다. 사주전은 위조화폐를 말한다.

"우리들의 거사는 1만 명 이상의 군대를 속전속결로 한양에 들여 놓아야만 성공을 합니다. 지금처럼 티끌모아 태산 식의 군자금 모금은 언발에 오줌 싸기입니다. 그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진격작전을 수행키 위해서는 사주전이 필수입니다."

"대혼란이 일어날 텐데?"

홍경래가 물었다.

"사소취대지요. 바둑에도 있지 않습니까?"

"끄응 ...!"

홍경래는 얼굴에 홍조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량의 사주전을 만들어 시장에 유통시킨다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은 자명했다. 그러나 조선후기 사주전의 제조와 유통은 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