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단 한번도 나의 것이지 않았던 죽음은

기억하지 말아다오.

살아서 단 한번도 나의 것일수 없었던

모든 그리운 것들의 거처를

(조용미의 시 종생기 중에서)

'관서평란록'은 안주목사 조종영이 편집한 홍경래난의 사건 보고서다. 이 책은 18권 18책에 3688페이지에 1844장의 방대한 분량으로 이 안에 '해영일기' '송영일기' 즉 해주감영지 송도감영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두 종의 책을 제외한 나머지 16책이 관서평란록이다. 이 책은 지금 일본 국회도서관 산하의 '정가당문고'에 소장되어 있고 국내에는 강만길 정종섭 등이 복사해온 복사본이 전하고 있다.

관서평란록은 편찬자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조선실록에 관서평란록을 조종영이 편집했다는 기록이 있어 편집자를 특정하게 된 것이다.

오포장이 섬을 나갔다. 홍경래는 그를 용천까지 배웅하고 그곳에서 헤어졌다. 수십 명의 동지들도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윤이네 기방에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홍경래를 비롯한 이희저 김사용 김창시 등이었다. 이 자리에 등장하는 김사용은 홍경래난의 절대적 존재다. 홍경래난의 주동자의 삼정(三鼎)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김사용은 선천 곽산을 무대로 뜻을 펴지 못하는 지사(志士)의 한을 품고 무엇인가를 도모하다 홍경래를 만나게 된 사람이다. 그는 홍경래보다 다섯 살이나 아래였다. 관서평란록에는 김사용의 용모파기가 들어있다.

김사용은 이름이 종각이고 자가 사용이다. 얼굴이 희고 길며 수염이 드물게 나 있고 중키에 나이는 36~37세 정도로 보인다.

(金士用子士用名宗珏面白長 髮始生 身長實中年可 三十六七歲)

기방의 뒷방은 깊은 침묵이 흘렀다. 방안에는 모두 다섯 명의 사내들이 앉아 있었다. 홍경래 이희저 김사용 그리고 총참모인 김창시와 홍경래의 개인 참모인 장봉사였다. 신도회합의 결과와 앞으로의 대책에 대한 검토를 하는 자리였다. 대본영 회의인 셈이었다. 먼저 김창시가 입을 열었다.

"일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요?"

"일을 서두른다면..."

이희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조정에서 눈치를 채고 포청을 발동하고 암행어사까지 파송하고 있습니다."

김창시가 신도까지 찾아 왔던 오포장을 거론했다. 함경도에 암행어사가 들어왔다는 것은 모두 아는 일이었다.

"김진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두 분 형님 의향은 어떠신지요?"

김사용이 김창시의 말에 동조를 하고 나왔다. 그의 아래에는 검창의 귀재라는 이제초가 있었다. 그는 하급 무인으로 담력과 용력이 남다른 범같은 인물이었다. 서북에서는 홍총각과 이제초를 일러 서북의 양호(兩虎)라 불렀다.

"끄응, 아우님은 어찌 생각하시나?"

이희저가 홍경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도 김창시나 김사용과 같이 일을 서두르자는 편이었다.

"장봉사는 어떻게 생각하나?"

홍경래가 모사인 장봉사의 의견을 물었다. 앞날은 그야말로 야밤삼경이었다. 어둠 속에서 산길을 나선 그런 경우였다.

"아직은 아닙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아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잠수를 해야할 듯합니다."

장봉사가 어깨를 펴고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말투는 단정했으나 어조는 지극히 단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