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는 작은 섬이 아니었다. 섬안에는 여러개의 마을과 황해수영의 최북단 영(營)이 설치되어 있어 십여 명의 군졸과 한 척의 비선(飛船)이 배치되어 국경 해안을 감시하고 있었다. 오포장은 다음날 점심 무렵에야 홍경래를 만날 수 있었다.

홍경래를 위시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음주가무를 하고 있었다. 폐사지의 공터에 커다란 장막을 쳐 놓은 것이 한양의 노대신들의 연회장 같았다.

"허? 내가 홍경래외다. 나를 보겠다고 이 먼길을 오셨다고요?"

홍경래는 장막 안의 좌장 자리에 앉아 오포장을 맞았다. 붉은 상의에 비단끈으로 묶은 상투에 옥구슬로 장식을 한 머리띠가 멋졌고 하얀 얼굴과 한쪽 눈 위에 나있는 검은 사마귀가 인상적이었다.

"호호, 그렇네요."

"좌포청의 포장이라 이 말씀이지요?"

"호호, 그 말도 맞고요."

"하하, 오시느라 고생을 좀 하신 듯 하외다. 몰골이 말이 아니구료?"

"호호, 배멀미에 고태골 가는 줄 알았네요. 어쨌든 반겨주시니 고맙네요."

"하하, 고맙다...자 일단 앉으시요?"

홍경래가 오포장과 자리를 내주었다. 그의 주변에 앉아있는 사내들은 하나같이 부티가 나는 사람들이었다. 장막 뒤에서는 섬의 아낙들이 동원되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호호, 고맙고 반갑지요. 서북의 용을 뵙기가 쉽지 않더군요."

"잠깐, 지금 서북의 용이라 하셨소이까?"

홍경래가 손바닥을 펴 오포자의 말을 끊고 물었다.

"호호, 용이지요. 본관이 살펴본 홍대인은 능히 용의 면모셨네요."

"하하하, 내가 본 포장나으리는 서시구료. 웃음소리도 살갑구요."

홍경래의 말에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서시'는 고사(古事)에 나오는 미인의 이름이다.

"호호,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요. 대인?"

오포장이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고 홍경래를 쏘아보며 말했다.

"아, 미안하외다. 농담이었고 그래 나를 보고자한 이유가 무엇이요?"

"......!"

"잠깐 바람 좀 쏘입시다."

홍경래가 오포장을 대동하고 장막을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섰다. 여름바다였다. 시원한 한줄기 해풍이 바다 위에서 섬쪽으로 빗자루질을 했다.

"이유를 말해보시요?"

"호호, 말씀드리지요. 홍경래 당신은 도대체 누군지요?"

"뭐라...?"

"당신의 정체가 뭐냐 물었네요?"

오포장은 바다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홍경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나는 홍경래외다."

"호호, 우문에 현답이군요. 그러나 댁은 조정의 주목대상이니 개인이 아닌 나라의 근심이기도 하지요. 무엇을 도모하나요?"

"도모라니 그건 무슨 말이시오?"

"무엇을 도모하기에 이렇게 크고 넓게 움직이시나요? 나는 조정을 보위하는 기찰포장으로 참으로 그것이 궁금하군요?"

오포장은 시선을 바다에서 거두고 홍경래를 잡아 먹을 듯 쏘아 보았다. 눈빛이 먹이감을 노리는 시라소니의 그것을 방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