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사관에는 하나부사 공사를 비롯 우치가키(內恒) 참하관이 바둑광이었고 그들의 비호를 받는 이또우가 있었다. 이또우는 혼인보 가문에서 노름바둑으로 파문을 당하고 일본 내지를 떠돌며 방랑기객으로 살다가 일본의 조선진출을 좇아 들어와 나름 대접(?)을 받고 살고 있는 중이었다.

"자, 실컷들 들어. 그리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소식좀 들어보세."

김옥균이 연작으로 잔을 들며 도성 안의 풍문을 물었다. 세상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양군영이 엄청나게 어수선합니다."

"급료가 지급되지 않아 불만이 많다는 소리는 들어알고 있네."

"급료도 급료지만 별기군에 대한 불만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별기군에?"

"양군영의 불만이 민씨들보다도 오히려 우리 개화파로 전이될까 두려울 정도입니다."

이규완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김옥균은 깜짝 놀랐다. 구식군대의 불만이 개화당을 향하고 있다는 말은 김옥균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건 무슨 말인가? 별기군은 양군영의 미래의 모습이야. 나라의 재정이 확충되면 그들도 모두 별기군이 되는 거란 말이야."

김옥균이 혀를 찼다. 그러나 그것은 김옥균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별기군의 창설에는 개화파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별기군의 훈련교관이 일본군의 장교였고 무기와 군의 조직 등이 모두 일본 육군을 모방한 것이었다.

"별기군이 민겸호의 사병처럼 된 것은 사실이나 양군영은 그리 생각하지 않아 문제입니다."

"오? 그런 문제가 있었군. 내가 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양군영의 불만 뒤에는 그것을 부추기고 지원하는 세력이 있어 두려운 일일 겁니다."

"끄응 !"

김옥균은 이규완의 말을 듣고는 벼락이 내리치는 충격을 받았다. 조선의 정국은 민씨척족이 주도하고 그들에 반발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개화파는 이 두개의 거대한 세력에 끼어 힘을 키우는 단계라 할 수 있었다. 이 세력은 북풍과 남풍같이 서로 상존할 수 없는 기후가 만들어내는 전선이랄 수 있었다.

북풍과 남풍이 조우하면 번개가 치고 큰비가 내리게 마련이다. 조선의 개화파는 천지개벽의 불완전한 기후 속에서 아직은 미약한 힘을 키우는 씨앗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