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가 한참 무르익자 이규완이 품속에서 서찰 한통을 꺼내 김옥균에게 전했다.

"그리고 참...  이또우가 이걸..."

"하나부사가? 음... 잠깐 술들 들게나."

김옥균은 하나부사가 보낸 서찰임을 직감하고 그 서찰을 받아들고 옆방으로 가 차 한잔을 마실 시간이 지난후 다시 돌아왔다.

"자 한잔들 더 들게."

김옥균은 술 한잔씩을 더 돌린 후 이규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또우의 바둑실력은 당금 최고다. 그와 어느 정도 대국할 수 있는 사람은 조선에 규완이 자네 정도야. 이것이 우리 조선의 현실이다."

김옥균이 이규완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며 의미있는 말을 했다.

"맞습니다. 이또우는 일본에 자신보다 고수가 수십 명이 넘는다더군요."

이규완은 청계동 대국 이후 이또우와 급격히 가깝게 지내고 있었고 김옥균은 그 두 사람의 교제를 지원하고 있었다.

"지난번 하나부사의 말을 들어보니 일본에는 호엔사라는 바둑만을 위한 단체가 생겨 고수들이 모여 친목을 다진다더군."

"호엔사라고요?"

"맞아. 일종의 시계(詩契)인 셈이지."

김옥균이 바둑이라는 하나의 취미만으로 단체가 만들어져 모임의 단결과 발전을 도모하는 일본의 사정이 부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김옥균과 이규완이 조일 간의 바둑을 비교하는 1881년은 일본바둑계도 마냥 좋기만하던 때는 아니다. 막부의 절대적 지원을 받으며 융성했던 일본바둑은 막부(1600-1868)시대가 끝나고 근대국가 개념의 유신시대로 오면서 일대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지원을 받아오던 국가의 도움이 끊긴 것이다.

질록(秩祿)이라 부르는 막부의 예능인 지원은 일본바둑의 '사안가'를 직접적으로 타격하여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른다. 일본정부는 '사안가'에 질록의 중단만을 강요한 게 아니라 막부로부터 오래전에 받아 사유재산으로 사용하던 사안가의 저택과 농토의 반환을 시도했다. 이 탓에 별다른 준비 없던 '사안가'는 경제적 파탄을 맞게 되었고 모두 몰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바둑계는 이 중차대한 비상시국을 수습하고자 혼인보가문의 적자인 슈호(秀甫1838-1886)를 사장으로 혼인보죠와(丈和)를 부사장으로 한 호엔사(方舟社)를 설립하고 일본바둑계의 재건에 나선 것이다. 이때가 김옥균 등이 술자리를 벌이는 시기에서 불과 2년전인 1879년의 일이다.

호엔사는 일본바둑계를 가문의 세습제에서 일종의 공개념의 사회제도로 바꾸어 대국제도의 관리, 위기신보라는 신문의 창간, 그리고 바둑면장의 발급 등으로 활로를 개척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