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은 동국혁보(東國奕譜)를 놓아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국혁보는 최남선도 언급했던 '기보'로 실전된 책이다. 필자는 얼마전 이 책의 실체를 보았다. 삼십여 점의 기보로 구성되어 있는 책인데 범서병 시양하의 기보 몇점과 대국자 미상의 기보들로 상당한 수준의 책이었다. 범-서 중국의 양 고수의 기보가 실려 있는 이유는 조선 고수들의 수준을 비교해 보자는 의미인 듯했다.

동국혁보는 김옥균도 언급을 한 적이 있기에 벽상검 독자들은 김옥균 최남선 이후 실전되었던 이 책의 실체를 이청을 통해 조우하게 된 셈이다. 동국혁보는 김옥균의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 할 정도였다. 이때 찾아온 사람이 이규완이었다.

"이공의 일은 저의 불찰입니다."

이규완이 이동인의 일이 자신의 책임이라는듯 몸둘 바를 몰라했다.

"실없는 소리...밤낮으로 그를 호위할 수는 없었잖나? 그런데 저자들은?"

김옥균이 이규완을 따라온 젊은 사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두 명이었다.

"아우들입니다. 이번에 제 밑에 들어온..."

"오, 그런가?"

"인사드려. 우리들의 영수시다."

이규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말했다. 두 사내가 벌떡 일어나 김옥균에게 큰절을 올렸다.

"용택이옵니다. 성은 황가이고요."

"경순입니다. 파평 윤가입니다."

그들은 황용택과 윤경순으로 갑신정변시 연회장을 습격하여 수십 인을 살해하는 작전에 참가하게 된다.

"오, 앉게. 내 심난하던 차에 동지들을 보니 절로 힘이 나는군. 앉아. 규완이 오늘 술 한잔 해야겠군."

김옥균이 황용택과 윤경순의 손을 번갈아 잡아주며 이규완에게 말했다.

"술을 내려주시면 마다할 인간들이 아닙니다. 술배는 능히 영주를 감당할 인간들이지요."

"하하, 주량이 영주의 넓은 호수라 이 말이지? 좋지. 여봐라?"

김옥균이 호탕하게 웃으며 부리는 하인을 불러 술상을 들일 것을 지시했다. 김옥균의 집은 오늘날 정독도서관 자리에 있었다. 안동김문의 유력가문의 집인만큼 백 칸이 넘는 규모였고 특히 상랑방이 크고 넓어 방문객들이 들끓는 곳이기도 했다.

"자네들은 특기가 무엇인가?"

김옥균이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김옥균이었다. 특히 김옥균은 인재를 좋아했다. 인재는 금기서화의 예능인들은 물론 검객, 가객 또는 광대패들을 가리지 않았다. 김옥균은 세상의 모든 재주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맹상군'을 꿈꾸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