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 살구꽃은

가지가지가 봄빛이요.

곳곳의 푸른 산은

보리밭 머리가 풍년이다.

건청궁 앞 마당에는 놀이패들이 설치한 외줄이 높게 걸려 있고 광대들이 목청을 뽑아 부르는 어름사니의 노랫가락이 울려퍼졌다. 군왕은 민비가 벌인 놀이판에 찾아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놀이패는 당금 조선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안성 바우덕이패였다.

바우덕이는 남장 여자로 안성 남사당패의 전설적 놀이꾼이다. 바우덕이는 15세에 꼭두쇠(두목)가 되어 풍류를 알던 대원군의 눈을 만족시켜 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를 선물로 받은 예인(藝人)이기도 했다. 바우덕이는 22세의 아까운 나이로 죽었지만 속칭 남사당으로 대변되는 바우덕이패는 조선 최고의 놀이패로 군림하며 궁안을 무상으로 출입하고 있었다.

얼쑤

얼쑤.

어름사니의 노래는 바우덕이패의 상징적 노래였다.

"호호 전하도 어깨춤을 한번 추어보시지요?"

민비가 군왕의 옆에서 어깨를 움찔거리며 입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허?"

"전하, 이럴 때는 정무는 잊으세요. 그리고 즐기세요."

민비가 군왕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 놓으며 귓속말을 했다. 민비는 여우라는 별호가 있을 정도로 대인관계가 능수능란했다. 특히 남자인 군왕을 잘 챙기고 장악(?)을 해 부부생활이 20년이 넘었어도 군왕의 애정은 조금도 식지 않을 정도였다.

민비는 실제로 자신의 상궁 중에서 군왕의 후궁을 발탁하기도 한다. 민비보다 세 살 아래였던 엄비가 후궁에 발탁되어 영친왕을 생산한 것도 민비의 노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다.

"나는 창이 좋더이다."

"호호 창요? 벌써 준비했나이다. 국창이라고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그 자를 말입니다."

"오? 신재효가 왔단 말이오? 잘하셨소. 동인이란 놈 때문에 기분이 상했었는데 비께서 그걸 아셨나보오."

"호호, 부창부수 아닌지요? 동인이란 물건을 잊으세요. 재목이 못쓰게 되었다면 다른 목재를 찾는 것이 목수의 일 아닌지요. 전하는 나라를 다스리는 큰 목수 아닌지요?"

"하하, 역시 정치는 비께서 나보다 한수 위구료. 그렇지요? 못쓰게 된 목재는 새로 갈면 되겠지요. 오? 저런...저런..."

"와!"

외줄을 높게 타고 땅구름을 하던 광대가 하늘을 날아 땅위로 착지를 하자 군왕이 찬탄을 하며 말을 잊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