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왕은 이동인의 실종보고를 받고 낙심천만했다. 군왕은 12세에 왕위에 오른 후 부친 대원군 이하응의 섭정정치에서 해방(?)된 수년전부터 만기(萬旗)를 친람하는 재미를 느끼고 처음으로 의욕적으로 나선 국사가 바로 일본과의 외교였다.

군왕은 1875년 일본과 개항을 한 후 김기수(金埼秀)를 수신사로 한 사절단을 파견해 일본의 실상을 파악한 바 있다. 군왕은 일본에서 돌아온 김기수에게 일본의 군사력과 화륜선의 운용 기술력 등을 세세하게 질문한다. 군왕의 질문은 갑자기 부강해진 일본의 국력과 기타 기술력을 조선이 배워 타산지석으로 삼겠다는 바람이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김기수의 대답이 한심하다. 김기수는 일본의 기술이 과연 어떻냐 묻는 군왕에게 '일본인들이 보라고 해서 그저 보았을 뿐 자세한 것은 물어보지 않아 잘 모른다' 대답을 하다. 김기수는 문과급제자로 문장과 경학에 능한 관료였다. 그런 김기수의 발언이 이 정도로 무책임하고 한심하다. 이유는 문언문(文言文)을 사업을 삼는 것 외에는 나머지는 모두 하찮다는 교육 탓이다. 조선의 책임 있는 관료들은 기술적인 것을 천시하는 고질병으로 실사구시에는 임종 문턱에 다가선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군왕은 김기수의 가당찮은 대답에 질책도 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하긴 그런 걸 따지고 물어보는것도 나라 체신에 관계된 것이지." 이것이 '수신사일기'에 기록된 김기수와 군왕의 대담이다. 다시 말하면 군왕(고종)은 답답하고 보수적인 관료들에 둘러싸여 도무지 자신의 사업을 펼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런 환경속에 처해 있으면서도 군왕은 간혹 일본을 통해서라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선의 중차대한 과제임을 자각한다. 군왕이 김기수에 이어 김홍집 그리고 박영효 등을 연이어 일본에 보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군왕은 이동인의 실종사실을 알고 하늘이 자신을 버린다며 한탄을 했다. 그만큼 군왕의 충격은 컷다.

"전하?"

"그 자가 없으면 이번 유람단은 도로가 아니냐?"

"전하. 그 말씀은 받잡기 민망하옵니다. 나라 안에는 동인에 못지않은 인재들이 많은 줄로 아옵니다."

이원회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군왕의 상심은 생각 외로 컷다.

"조선에 그 자를 능가하는 선각자가 어디 있단 말이냐?"

군왕은 침을 튀기며 화를 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신의 사업에 차질을 가져온 이동인의 실종이 믿어지지 않을 뿐더러 한편으로는 분노심까지 일었던 탓이다.

"전하..."

"말해 보거라. 홍집이냐? 자칭타칭 천재라는 옥균이더냐? 그리고 누가 그 자를 해친 것이냐? 개화당이냐?  아니면..."

군왕은 끝말을 잇지 못했다. 끝말은 대원군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군왕은 아버지 대원군과 깊은 애증을 쌓은 관계였다. 그것은 시절인연을 얻어 일국의 왕이된 군왕 자신의 업보이기도 했다.

"젠장할...  놀이판에나 가야겠다. 너도 생각있으면 따라오거라."

군왕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궁안에는 민비의 주청으로 놀이패가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