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익이 개화파의 동향을 물었다.

"며칠 전에 바둑대회를 크게 열어 화합을 다진 모양입니다."

"바둑대회를 연다는 말은 들었네만 그리 크게 했단 말인가?"

"수십 명의 개화파 인사들과 호종들 기년들 하며 수백 명이 모였던 모양입니다."

"호? 개화당이 드디어 당의 면모를 보이는군. 참, 그들에게 도움을 좀 받으면 어떤가?"

민영익이 유람단의 경비를 개화당에서 일정 부분 지원 받으면 어떠냐 물었다. 따지고 보면 신사유람단은 개화파의 기대가 담긴 사업이었다.

"대감, 개화당이 말이 당이지 무슨 힘이 있습니까? 혹시 일본 공사를 움직이는데 힘이 있을지는 몰라도요."

"하긴, 그들은 말로만 당을 만든자들이니까. 일본의 지원을 받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건 개화파나 장차 우리의 행보에도 좋지를 않아. 그리고 자네는 무얼 그리 적는 겐가?"

민영익이 채동욱 옆에 앉아 작은 책자에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홍종우를 지목했다.

"포청의 막하로 하루 일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의 일은 적지 말게. 그리고 자네 이름이 뭔가? 눈매가 예사롭지 않으이?"

민영익이 홍종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성은 홍가이옵고 이름은 종우입니다."

"홍종우? 남양홍씨의 낙자로군. 그리고 일본조야의 사정은 어떤지 아는 거 없나?"

민영익이 이원회를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조선이 3차 수신단을 발행한 1882년초의 일본 정계는 메이지유신의 차세대 그룹이 전면에 나서 대일본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때다. '대장경'에 오른 마스까다마사요시, 재정외교대신에 오른 오쿠마시게노부, 그리고 문부대신 이토우히로부미(1841-1909) 등이 그들이다.

이들 중 1882년부터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이토우히로부미다. 이토우가 일본건설에 가장 큰 공이라면 '공무원법제정'을 들 수 있다. 공직의 임용과 퇴직이 번주와 막부 등 실권자들의 손에 농단되던 전근대적 관리 임용제도를 혁파하고 법과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누구나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관리를 뽑는 '공무원제도'는 일본의 근대화를 촉진한 가장 큰 동력으로 손꼽힌다.

이토우가 입안한 공무원제도는 임용 및 승진 시험제와 각부의 예산에 맞춘 관직의 수를 규정하고 서구식 교육제도에서 얻어진 학식을 시험과제로 하는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공무원제도는 일본의 강점을 당했던 우리나라가 고스란히 받아들여 아직도 만고불변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토우가 보통 인물은 아님을 알게 된다.

"저는 잘..."

"츄츄...총리기무아문의 당상이 일본 정계에 대해 할말이 그리도 없다는 말인가?"

민영익이 혀끝을 찼다. 일본과 수교를 한 지도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조선은 일본에 대해 오리무중 야밤상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