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인의 장점이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도 입속의 혀처럼 생각하셨으니까요."

"허 그거 참..."

"그런데 이동인의 단점은 한번 이용한 사람은 나 몰라라 하는 겁니다. 재주가 넘치는 사람들의 특성이지요."

이원회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사람이 완전할 수야 없겟지. 그나저나 전하께서 상심을 하신다니 큰일이군."

민영익이 기다란 장죽을 꺼내들며 말했다. 서안 위에는 서양식 담배 파이프가 놓여 있었으나 민영익은 주로 장죽을 이용했다. 

"수일 내로 그 자를 찾지 못하면 낭패입니다."

이원회가 낭패를 입에 담았다.

"낭패라니?"

"일본 시찰에 많은 준비를 했는데 그 자가 없으면 효과가 크게 떨어질겁니다."

"으음, 딴은 그렇겠군.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신사유람단을 겨우 발행했는데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큰 낭패겠지. 참 예산을 전하께서 내셨다고?"

민영익이 신사유람단의 예산을 물었다. 이번 유람단의 총경비는 군왕의 내탕금에서 조달되었고 모자라는 상당액은 일본공사 하나부사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하나부사는 개화파의 가장 유력한 후원자였지만 민영익 등 민씨척족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나부사는 민비의 생일이나 왕자의 탄신일 등 궁안의 대소행사를 빠짐없이 챙겨 민비가 일종의 호구(?)로 여길 정도였다. 하나부사는 민영익과 특히 사이가 좋았다.

민영익은 민승호 민태호 민겸호로 이어지는 민씨 삼악(?)과는 품격이 다른 인물이다. 민비의 총애 하나를 믿고 한껏 국정을 농단하던 민씨삼악은 개인과 벌족의 이익만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민영익을 위시한 민영환등의 영자 돌림 민씨들은 나름대로 나라에 충성하고 애국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나라가 망하자 자결을 한 민영환이나 충청도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크게 싸운 민종식 등은 민씨 가문이 일방적으로 나라를 들어 먹었다는 오명을 조금이라도 더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큰일일세. 조정이 사신단 하나를 꾸릴 만한 재정이 없다니... 츄츄."

민영익이 혀끝을 차며 장죽을 깊게 빨아 파란 연기를 내뿜었다.

"작년의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재정이 더 어려운 거 아닌지요?"

이원회가 민영익의 말에 장단을 쳤다. 민영익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어 말했다.

"요즘 개화파 근황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