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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人3色의 바둑느낌-원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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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녀석의 까랑까랑한 울음소리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대국장으로 향하던 풋내기 기자의 발걸음을 붙들기에 충분했다. 예닐곱 살이나 됐을까. 녀석은 큼지막한 눈물덩어리를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분했을까.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 녀석 앞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한 중년남자가 녀석의 키만큼의 높이로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아니 지금까지 기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림은 녀석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는 힘껏 끌어안아주던 아버지의 얼굴이다. 녀석은 거짓말처럼 울음을 멈추었다. 모르긴 해도 녀석에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이 아니었을지….
감(感)이 빠르신 분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녀석의 이름은 원성진이고 녀석을 꼬옥 끌어안아준 중년남자는, 당시 선경바둑교실을 운영하던 원익선 씨. 이들 부자(父子)가 연출한 눈물의 사연은 대충 이렇다. 조치훈후원회에서 주최한 조치훈배 어린이바둑대회에 두 살 위의 형 원성욱과 함께 출전했는데 형은 입상했고(우승으로 기억하는데 가물가물하다) 성진은 입상권에서 탈락했다는 것.
성진은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 진 것(아이들은 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로 인해 입상권에서 탈락한 것이 분했던 모양이다. 대회가 끝나고 단상에 나가 상을 받는 형의 모습을 보는 순간 더욱 그랬을 것이 틀림없다. ‘지고도 분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승부사가 아니다’라는 조치훈의 말을 생각하면 성진은 이미 이때부터 승부사의 기질을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다.
형제
원성욱, 성진 형제가 바둑을 배우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환경의 영향이다. 아버지 원익선 씨가 바둑교실을 운영하던 바둑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프로에게 선둘 치수로 버티는 세미프로급 강자였던 아버지는 기력(棋力)만 강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 또한 탁월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입상한 큰아들 성욱보다 지고서 눈물을 펑펑 쏟았던 작은 아들 성진의 가능성을 더 눈여겨보았다. "실력이나 재능은 성욱이가 나은 것 같은데 만일, 프로가 된다면 이 녀석(성진)이 먼저 될 겁니다."
기자의 시원찮은 기억력으로 되살려낸 아버지의 말인데 이 예언은 수년 뒤인 98년 그대로 실현됐다. 형과 나란히 한국기원 연구생에 이름을 올린 성진이 형을 제치고 먼저 입단의 관문을 뚫어버린 것이다. 프로입단 ‘5분대기조’라는 연구생 1조에 있던 형이 아쉬움을 접고 입단을 포기한 배경이기도 하다.
십 수 년이 지난 2004년 1월의 어느날, 그 말을 상기시켜드린 뒤 다시 물어보았다. “그때 성욱의 기량은 강1급 수준이었고 성진은, 재주가 없는 제가 보기에도 대단치 않았는데 어떻게 입단하리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 하긴, 지금 생각도 그러니까, 다시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 해도 비슷하게 대답하게 될 겁니다. 재능은 성욱이가 나으면 낫지 못하지 않아요. 문제는 프로입단이 재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노력, 기질, 근성…. 이런 게 다 갖춰지지 않으면 프로가 되기 어렵습니다. 성욱이는 이런 점이 부족했어요.”
두 아이의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따뜻한 부정(父情)을 담은 아버지의 마음은 알겠다. 그렇지만 기자의 생각은 조금은 다르다. 아버지는 형 성욱에게 부족하다고 느꼈던 노력, 근성, 기질 같은 것들이 재능이 아닌 별개의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노력이나 근성, 기질이야말로 승부사에게는 바둑판 위의 변화를 헤아리는 수읽기나 감각적 재능 이상으로 중요한 재능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두 아이 모두 프로를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는 아버지의 말대로 나란히 바둑의 길을 걷던 형제는 성진의 입단과 함께 제각기 다른 길로 갈라섰다. 형 성욱은 학업의 길로 돌아섰고 프로의 문으로 들어선 성진은 당연히 바둑의 길로 나아갔다. 그때까지 이들 형제가 출전하는 대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던 아버지의 발걸음도 딱 끊어졌다.
“입단하기 전까진 애들이 출전하는 모든 대회를 따라다녔어요. 성진이가 프로에 입단하면서 발을 끊었죠. 프로라면 나이를 떠나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까요.”
아버지만의 뜻은 아니다. 성진 역시 입단 이후 아버지가 대국장 근처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국에 신경이 쓰인다거나 불편해서가 아니다. 성진은 ‘언제까지나 부모의 보호를 받는 마마보이가 싫었다’고 한다. 성진의 가슴 속에도 ‘나는 프로다. 언제까지 아버지의 보호만 받을 수는 없다. 이제 모든 것을 혼자서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홀로서기’의 의식이 뚜렷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프로가 된 성진은 곧 유명인사가 됐다. 박영훈, 최철한과 함께 바둑저널이 헌사한 ‘송아지클럽’의 일원이 되어 한국 프로바둑의 정상을 위협하는, 주목받는 최강의 신예기사로 꼽히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의 성적을 보면 성진이 최고의 신예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2년 연속 LG배 세계기왕전 4강 진출, 그리고 농심 신라면배 대표기사 선발전 통과. 천원전 결승 진출. LG배에선 공교롭게도 2년 연속 준결승전 상대가 세계최강 이창호였다. 강자를 피해가는 승부는 의미가 없겠지만 그 상대가 이창호만 아니었더라면 성진의 이름은 2년 전에 세계대회 결승무대에 걸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성진은 농심 신라면배 본선대국에서도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선봉부터 3장까지 줄줄이 무너져 한국의 대회 5연패(連覇)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이름만 대면 당장 알 수 있는 세계정상급의 강자 고바야시 고이치, 후야오위, 류시훈을 연파해 꺼져가던 한국 우승의 불씨를 되살려놓았다. 이 글을 위한 인터뷰에서 성진은 이렇게 말했었다(LG배 제주 4강전이 치러지기 전이다).
“큰 승부에서 지면 슬럼프에 빠지는 습관이 있는데 천원전 결승에서 철한이에게 패한 후유증은 크지 않았던 같아요. LG배 준결승전에서 또 만난(작년에 이어) 이창호 사범님은, 이기고 싶지만 어려운 상대죠.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래도 지면 후유증이 생길 거 같아요.”
 제주도에서 속개될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전 결과가 그 직후에 상하이에서 이어질 농심 신라면배 본선대국에 영향을 끼칠 것 같다는 얘기였다. 불길한 예감은 더 잘 맞는다더니 성진의 말은 고스란히 실현됐다. LG배의 리턴매치는 속절없이 밀려버렸고 중국의 희망 구리와의 농심 신라면배 대국에선 반집을 다투다가 팻감 하나 차이로 2집반을 졌다.
패배의 고통에는 면역이 없다. 늘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이겨내야 한다.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 패배는 아프지만 그건 바둑이라는 사각의 링 위에서 홀로 싸워야 하는 고독한 승부의 길을 택한 성진의 숙명이다. 승리의 모든 영광이 성진에게 쏟아지듯 패배의 아픔을 삭이는 일도,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일도 모두 성진의 몫이다.
천원전 결승시리즈에서 성진의 터무니없는 실수를 엄하게 꾸짖었던 아버지도 이번만큼은 국제전화로 격려를 해주셨다. 기자에게도 ‘졌지만 내용이 나쁘지 않았다. 잘 싸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승리보다, 패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꿋꿋하게 커가는 아들의 모습을 더 원하시는 것 같다.
가족
성진이 프로의 길로 들어선 그날부터 가족의 더 큰 관심은 바둑에만 몰두하다가 학업의 길로 돌아선 성욱에게로 쏟아졌다. '바둑만 알던 아이가 뒤늦게 공부를 해서 다른 아이들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묘약이다. 성욱은 가족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의 가호 속에서 프로의 꿈을 접는 아픔을 누르고 학업에 몰두할 수 있었고 무사히 상아탑에 입성했다.
 "성진이도 그렇지만 성욱이가 참 대견해요. 바둑만 알던 아이라 학업 성적은 사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바닥을 기었는데 프로의 꿈을 접은 이듬해 보란 듯이 상위권으로 올라서더군요. 정말, 기뻤습니다. 집사람도 걱정이 많았거든요. 대학도 별 탈 없이 들어가고…. 아이들이 알아서 잘 하니까 이제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프로의 꿈을 접었지만 바둑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니다. 성욱은 대학생이 되기가 무섭게 방송대에서 주최한 전국대학생바둑대회 최강부 개인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실로 오랜만에 학업 뒤로 미루었던 승부의 희열을 맛보았다. 아버지는 성욱의 우승을, 성진의 프로 입단만큼이나 기뻐하고 대견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인터뷰 도중 곁에서 ‘다른 대회 단체전에서도 우승했죠. 대학패왕전에서도 우승은 못했지만 5승 1패를 기록했고. 스위스리그 첫판에 지는 바람에 입상은 못했어도 좋은 성적’이라고 아들의 전공(戰功)을 한껏 키워준다. 하긴,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이렇지 않을까. 아버지의 마음이란 다 그런 것이다.
가족이 바둑 하나로 단란함을 이루어내는 데는 누구보다 어머니 윤재경 씨의 역할이 컸다. ‘바둑 잘 두는 사람치고 악하고 머리 나쁜 사람 못 봤다’는 친정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원익선 씨와 결혼하게 된 윤 씨는 바둑의 ‘ㅂ’자도 모르는 ‘바맹’이었는데 이제는 프로기사 어머니모임 ‘모아회’의 회원들을 가르치는 당당한 선생님이다.
집안을 두리번거리니 내실 옆 벽 위쪽에 걸린 액자가 눈에 찬다. 그 안에 2003년 7월 15일자 조선일보 ‘느낌’에 실린 기사가 확대돼 들어있다. 아버지는 ‘성진이를 물심양면으로 아껴주시는 장인택 박사님께서 기사를 보시고 액자를 만들어주셨어요’라며 계면쩍어하는데 기사 끄트머리에 앉은 어머니의 말 속에서 이들 가족이 행복을 일궈온 비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둑이다.
“남자들이 도통 말이라곤 없어서 바둑마저 없었으면 절간이나 다름없을 집이었을 거예요. 다른 건 둘째 치고 형제간의 우애가 좋아서 흐뭇해요.”
어머니는 이 날도 ‘무엇보다 형제간에 우애가 좋아서 흐뭇하다’고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우애가 좋길래? 슬며시 장난기가 발동해서 성진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형과는 어떻게 두는지? 또 승률은 어떤지? ‘대답하기가 좀 곤란한 질문일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은 혼자만의 수읽기였던 듯하다. 대답은 뜻밖에도 쉽게, 빠르게 나왔다.
“형이 선으로 두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형이 두 점은 놓아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형한테는 선으로도 승률이 안 좋은 편이에요. 서로 잘 알기 때문에 그런가봐요.”
 정말로? 이런 의문부호가 고개를 쳐들 틈도 안 주겠다는 듯 아버지도 말을 보탠다. ‘어려서부터 그랬죠. 성욱이가 어떤 아이에게 지면 성진이가 꼭 그 아이를 상대로 둬서 이겨오더군요. 그 반대의 경우에도 그랬고요.’라고. 네네, 형제는 정말 용감했군요. 쳇, 괜히 물어봤다…ㅡㅡ+
그런데 이집 식구들은 예나 지금이나 수줍음이 많다. 가족사진 한 장 찍자는데 좀처럼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다. ‘느낌’ 기사가 나갈 때도 가족사진 한 장 찍으려고 사진기자가 두 번이나 따로 방문할 만큼 애를 먹였다더니…. 겨우겨우 형제대국을 연출하고 그 옆에서 관전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가족사진을 대신했다.
그런데 사진 제목은 무엇으로 할까? ‘느낌’이라는 기사에는 ‘이 가족이 사는 법 프로기사 원성진 5단 네’라고 돼 있던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날 그 자리에서 느껴진 대로 말하자.
사랑해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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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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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지나면 처음의견쓴분에서 한달 일주일 지나면 마지막의견쓴분에서 한달되네요^^27일이면 볼만한분은 다 본것 아닌가요^^매일 오로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써 좋은뜻으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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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ERO6 |
｜ 2004-02-17 오전 11:20: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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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제목을 고치세요. "이 가족이 사랑하는 법" 혹은 " 따듯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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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수님 사진 어데잇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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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생각되어 집니다 참 어렸을때 사진 넘 귀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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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사범도 이야기 햇지만 원성진사범이 3연승을 하지않앗다면 신라면배 한국우승은 힘들었을거다라고 한말 기억나네요 마무리는 이창호사범이 했지만 중추적인역할은 원성진사범이 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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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진사범을 좀더 잘 알수 잇는 기회엿던것 같습니다 ㅎㅎ 담부턴 응원 많이 해야겟어여 참 그리고 가족들 보기가 넘 좋습니다 덧붙여서 농심신라면배에서 넘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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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171 |
｜ 2004-06-14 오전 11:47: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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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견에 한마디 |
무엇보다도 농심배에서 3연승을 한것은 두고두고 바둑사에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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