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蠱)

아침 여덟 시를 알리는 자명종 소리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성긴 유리창 커튼 사이로 화살처럼 쏘아오는 햇살을 한손으로 차단하며 탁원제는 쇼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침상 위엔 기미꼬가 한쪽으로 몸을 튼 채 세상모르게 널브러져 있었다.

습관적으로 티브이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자 빠른 템포의 아나운스먼트(announcement)가 튀어나왔다. 중앙 티브이 방송은 <속보>라는 타이틀을 띄우며 <한국 무속학(巫俗學)의 신비>로 박사 타이틀을 획득한 아끼꼬(雪子) 양의 죽음을 긴급 뉴스로 내보냈다.

자막 처리된 화면은 어느새 사건현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카메라맨이 흥분한 탓인지 화면은 몇 차례 물결치는 파장을 일으키더니 음울한 기운이 도사린 죽음의 현장을 뒤적였다. 한동안 실내를 핥던 카메라 앵글이 죽음의 장소에 고정되었다.

시체는 침대에서 5미터나 떨어진 출입구 카펫 위에 엎드려 있었다. 외상이나 독상 흔적은 없었지만 숨이 끊길 때의 고통으로 붉은색 카펫 일부가 뜯겨나가고 바닥을 긁은 양손 집게손가락의 손톱 모서리는 떨어져 나간 채 피가 배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죽는 순간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외로 튼 채였고, 그 바람에 삼각형 이니셜이 달린 목걸이가 턱밑까지 삐어져 나온 상태였다.

화면은 몇 차례나 방영된 흔적이 역력했으나 탁원제로선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죽음의 현장은 <형사25시>에서 보여준 전율스런 현장 상황처럼 그녀의 주검은 시청자의 뇌리에 끔찍이 각인되었다.

‘한국의 무속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논문은 흔치않은 일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신문이나 학보사 인터넷에 글을 올려 ‘한국인들이 천손족(天孫族)’이라는 참신한 내용으로 벌써 3만여 회원을 확보한 신데렐라였다. 그녀의 글을 읽은 그 분야의 어느 교수님은, ‘한국인의 한이 배어있다’고 할 정도로 극찬했다.

연꽃처럼 청초하고 모란처럼 화사한 그녀의 이미지가 깨어지고 상여에 걸린 음화(陰花)처럼 우중충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살아날 때마다 그녀를 아끼는 팬들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러한 충격파는 백상구(白尙九) 박사의 소견서가 발표되면서 다시 한 번 들끓었다.

‘신경성 쇼크사.’

사인이었다. 이른바 심장마비인 돈사(頓死)였다. 급사라면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혹을 품게 돼 경찰의(警察醫)의 검시를 받고 해부하지만, 일반적인 사인은 급성심부전(急性心不全)이나 뇌출혈을 비롯해 폐렴 등의 순서로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한밤중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경우 대부분 쇼크사다. 신경성 쇼크사지만 아끼꼬의 경우 직접적인 사인이 분명치 않다는 게 그녀를 아끼는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